노트르담 대성당 앞에서
산티아고 순례길로 향하는 길(까미노 데 산티아고)을 앞두고 나에게 파리를 둘러볼 시간은 단 하루. 정처 없이 떠나기로 마음먹고 온 나이기에 '에브리바디 원츠' 파리명소를 둘러보는 일은 접기로 했다. 일부러 자제한 게 아니라 마음이 시킨 일이다. 이번 기회에 파리는 그냥 멍하게 부담 없게 둘러보고 싶다. 스스로에게 어떤 부담도 지워주지 않도록 말이다.
까미노 준비가 덜 되어서 멍한 걸지 모른다. 최근 건염이랑 근육통 기운이 사라지긴 했지만 조금만 무리하면 언제든 날 괴롭힐 태세인 데다 20km 이상 걷기를 훈련한 적이 아예 없었다. 까미노 가이드북을 보면 하루 평균 30km는 족히 걸어야 하는데 말이다. 나와 체력 상태가 비슷한 수연선배와 격주로나마 북한산 둘레길을 걸었던 게 거의 전부. 10km를 걸었던 적은 지난 한 달 동안 고작 2번 뿐. 마음은 까미노 준비를 하고 있다손 쳐도 몸은 준비가 안 됐을지 모를 일.
그렇다. 체력에 한계를 느끼게 될까봐 그게 가장 겁난다. "스페인 가겠다"는 굳은 의지를 페이스북에 드러냈던 날, 한 달간 2012 런던 올림픽을 취재할 현준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네 몸으로 어찌 가느냐며 조용히 영국이나 오라고 꾸짖으신다. 나도 안다. 부모님은 물론 가까운 친구들이 이번 여행을 격려해주면서도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걸. 내 몸상태를 잘 알고 있으니깐. 오늘도 걱정이 담긴 카카오톡 메시지들이 눈물 겨울 만큼 쌓여 있다.
다들 걱정할까봐 씩씩한 척 했지만 솔직히 무섭다. 무리하게 걷지는 않을 예정이나 800키로 넘게 걸을 만한 체력을 갖추지 못한 건 사실이니깐. 그래도 난.. 오기를 부려 먼 나라까지 온 것이다. 원래 나처럼. 나라는 사람은 퇴사하고도 달라진 게 없다.
성당 내부도 종탑도 다음 여행으로 미룬 채 허무하게 카메라와 노출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하늘을 빼곡히 차지한 시커먼 구름이 몇 분 간격으로는 완전히 걷혀서 사람을 당황시킨다. 노출값 조정은 둘째치더라도 "뭐 이런 게 다 있노(경상도 사투리 버전)" 싶은거지. 난 싫증도 잘 내고 쉽게 질려하기도 하지만 웬만해선 한결같은 게 좋다. 어떤 공간에 대해서도 그렇고, 친구도 남자친구도, 심지어 날씨마저도 그렇다.
# 노트르담 대성당(클릭:) 지나치기
프랑스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발걸음하는 곳. 파리에서도 가장 훌륭하다는 노트르담 성당에 도착했다. 나폴레옹 대관식(1804), 파리 해방을 감사하는 국민예배(1944) 등등 5세기 동안 많은 역사적 사건이 묻어 있는 대단한 대성당인데 별 감흥이 없다. 에펠탑보다 두 배 이상의 사람들이 찾을 정도라고 하는데 그럼에도 이 성당을 둘러보지 않고 무심결에 지나쳤다.
『노트르담의 곱추』를 읽을 적만 해도 주인공인 콰지모도가 목숨을 걸고 지켰던 종을 보고 싶었는데 지금은 발발거리며 구석구석 다닐 마음은 온데간데 없다. 지금보니 성당 앞에 한참을 서 있었는데도 사진 한 장 안 찍었다. 나 참 기가 찬다. 정말 나답지 않은 행동이다. '원래의 나'라면 한 곳이라도 알차게 다니기 위해 한국에서 미리미리 여행정보와 일정을 정리하고 왔겠지. '그래, 이런 날도 있어야 한다'고 정당성을 부여하면서도 '부디 오늘만 이렇기를..'이라고 주문을 건다.
머릿속엔 순례자길(이하 까미노) 걱정으로 가득차 있다. 잘 걸을 자신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마냥 심란하다. 이래저래 잡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고딕양식의 화려함 만큼은 눈에 조금은 들어온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다음 번 파리를 찾을 땐 노트르담 성당의 명물, 탑과 종소리는 경험해야겠지? 종에서 흘러나올 파 샵(#)의 옥타브를 들으러, 그리고 종탑에 올라 파리의 여유를 감상하러 반드시 오리라.
근데 노트르담 성당을 왜그리 냉담하게 지나쳤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냥 정처없이 걷고 싶은 욕구가 그 시점엔 특히 강했다고 해석을 할 수밖에. 그래 앞으로 걸을 날 많으니깐. 그래 그래. 경원아, 조금만 참아 보렴. 너의 소원대로 원없이 걸을 날이 머지 않았어.
#콰시모도의 눈물겨운 사랑 만큼은 떠올라
시청 앞 그레브(greve;옛 이름) 광장에 한참 서 있었다. 콰시모도가 노트르담 성당 꼭대기에서 줄을 타고 내려와 사랑하는 여인 에스메랄라를 처형대에서 구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에스메랄라의 사형이 집행된 곳이 바로 이 광장이구나라고 애써 줄거리를 생각은 해본다. 그리고 사랑에 대한 소견을 꺼내보기도 한다.
콰시모도는 버려진 자신을 키워준 클로드 부주교로부터 그녀를 구출하고 보호했고, 에스메랄다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결국 클로드를 죽였다. 클로드 말이라면 완전한 복종을 했던 그였는데.. 그만큼 클로드는 나쁜 놈이었으니 콰시모도가 잘했다. 덕망과 학식을 갖췄다고 해도 위선 덩어리인 클로드를 나 역시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에스메랄다를 향한 콰시모도의 눈물겨운 노력에 당시 여성도 환호성을 질렀던 건 그의 진심이 고스란히 전달 되어서였을 것이다. 콰시모도가절름발이건 꼽추이건, 심지어 애꾸눈이와 벙어리라고 할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이 아름답게만 보인다. 그래서 내가 그저 감사한 마음이다. 남자의 진심은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에나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21세기에나 어떻게든 드러나게 돼 있나 보다. 시간문제일뿐이겠지.
한결같은 사랑, 그리고 매 순간의 진심어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간사한 마음따윈 예전이나 지금이나 취급하고 싶지 않다. 그녀를 '운명의 반쪽'이라고 변명하면서도 그녀를 요사스러운 마귀로 부각시키며 사형을 받게 한 클로드 부주교나 에스메랄다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데도 교수대에 있는 그녀를나 몰라라 하고, 결국엔 그녀를 배반하고 좋은 집안 규수를 선택해 버리는 기사 페뷔스와 같은 사람을 평생 경계할지어다.
아우, 자신의 품 안에 안긴 에스메랄라를 바라보는 애잔한 콰시모도의 눈빛이 떠오르는데, 내 옆에는 지금 아무도 없다. 카메라마저 들고 오지 않았다면 외로워서 어쨌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