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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러캔스 Jun 11. 2024

25화. 미국 영주권을 잃어버리다

시애틀 쿨가이 - 25

캐나다 밴쿠버. 밴쿠버는 추억과 맛있는 먹을거리를 주고 동시에 시련을 준다.


작년 5월, 우리는 처음으로 시애틀에서 밴쿠버로 갔다. 국경에 아침 8시에 도착해서 기다리는 줄도 없었고 캐나다 환율 적용 시 시애틀에 비해서 모든 것이 비교적 저렴하고 맛있는 먹거리들이 많은 밴쿠버는 환상적이었다. 웨스틴 베이쇼어 밴쿠버 호텔 (The Westin Bayshore Vancouver)에서 묵었는데 호텔 위치도 안전한 곳에 자리했고 마음에 들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때마침 밴쿠버에 있던 아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연락이 오기 전까지. 바로 코로나에 걸렸다는 연락. 그 뒤 아내와 나도 코로나로 1주일을 고생했다.


작년 9월, 다시 밴쿠버로 향했다. 이번에는 메리어트 피나클 호텔 (Marriot Pinnacle Downtown Vancouver)에 묵었다. 산불로 공기가 좋지 않았다. 마스크는 워낙 익숙해서 크게 문제 되진 않았지만 여행하는데 그렇게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하지만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음식들을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였다.


올해 5월 25일, 2박 3일 일정으로 밴쿠버로 향했다. 호텔은 다시 웨스틴 베이쇼어 밴쿠버 호텔이었다. 가는 동안 비가 내렸다. 여행 기간 동안 비가 조금씩 내렸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5월 27일, 모든 일정을 마치고 금고에 보관해 두었던 여권과 영주권을 꺼내려고 할 때 금고는 열리지 않았다. "Ser"이라는 에러와 함께. 그래서 사람을 불러서 금고를 열었다. 그리고 여권과 영주권을 확인했는데 내 영주권만 보이지 않았다.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차에도 가보고 모든 짐을 확인했지만 영주권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때부터 속이 뒤집어졌다.


캐나다 미국 대사관에서 제공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미국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https://ca.usembassy.gov/visas/transportation-letter/). 절차는 이랬다.


1. 지역 경찰서로 가서 사건을 접수하고 경찰 보고서 사본을 두 부 만들어라.

2. I-90 양식을 작성하고 사본을 두 부 만들어라.

3. I-193 양식을 작성하고 사본을 두 부 만들어라.

4. 가능하다면 여권 사본을 두 개 만들어라.

5. 가능하다면 영주권 사본을 두 개 만들어라.

6. 여권 사진을 네 장 만들어라.

7. 가장 가까운 국경 (Port of Entry to the USA)에 준비한 서류를 가지고 가라. 거기서 영주권 재발급 신청을 하라.


먼저 호텔에 도난 사실을 알리고 가장 가까운 경찰서 위치를 물어봤다. 호텔 측은 굉장히 미온적인 태도로 교본에 나와있을 듯한 말로 설명해 주었다. 경찰서도 구글맵에서 검색해서 알려주는 정도였다. 호텔에는 체크아웃을 좀 더 연장해 달라고 한 후 결국 밴쿠버 경찰서를 직접 찾아서 그곳으로 향했다.


밴쿠버 경찰서. 분실 또는 도난 상황을 설명했다. 경찰서 측은 기계적인 대답을 해준 후 QR코드를 통해서 사건을 접수하라고 알려줬다. 경찰 보고서는 24-48시간 내에 나올 것이라는 대답과 함께. 이때 또 한 번 심장이 무너져내리는 느낌이었다.


호텔로 돌아왔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분실된 영주권을 보관하고 있는지 물어봤다.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호텔을 하루 더 연장했다. 경찰 보고서와 이것저것 준비하려면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호텔방에서 먼저 경찰에 분실/도난 신고를 하였다. 신고는 간단했다. 온라인으로 상황 설명과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를 적으면 됐다. 그리고 호텔 비즈니스 센터에서 필요한 서류를 출력했다. 다행히 영주권 사본을 찍어놓았기에 영주권 사본도 출력하고 여권도 복사한 후 나머지 서류를 방에서 작성했다. 이제 남은 건 사진뿐이었다.


다행히 근처에 여권사진을 찍어주는 곳이 있었다. 거기서 사진을 급하게 찍은 후 점심을 먹었다. 밴쿠버에서 맛있는 쌀국수를 발견했지만 속이 좋지 않아서 제대로 먹지 못했다. 계속 위가 뒤집어지는 느낌이었다. 점심을 먹은 후 사진을 찾았다. 그리고 다시 호텔로 향했다.


호텔에서 쉬는데 쉬는 게 아니었다. 오후 3시가 다 되어갈 때 경찰 보고서가 완료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 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서에서 20분 기다리면 경찰 보고서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한 시간이 넘었다. 그리고 경찰 보고서를 받았다. 오타가 보였다. 우편번호 끝자리가 9가 아니라 @로 되어있었다. 수정요청을 했다. 보고서를 작성하는 사람들이 다 퇴근해서 내일이나 다시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난 그냥 가져가겠다고 말한 후 경찰서를 나왔다.


호텔에 다시 도착했다. 시간은 이미 오후 5시를 향해갔다.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지금 출발하냐 아니면 다음 날 출발하냐. 만약 국경에서 혹시나 통과 못하고 캐나다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바로 출발하기로 결정했다.


국경에 도착했다. 오후 7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보통은 굉장히 이른 시간에 국경을 통과하기에 대기는 없었는데 이번에는 늦은 시간이라 대기가 길었다. 줄이 줄어들수록 초조해졌다. 30-60분가량의 대기 끝에 마침내 내 차례가 왔다. 모두의 여권과 영주권을 제출했다. 그리고 난 영주권을 잃어버려서 경찰 보고서 등의 서류를 준비했다고 했다. 난생처음으로 주황색 종이를 차에 부착한 후 추가 검문을 하러 갔다. 그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장 긴 줄에 서게 되었다. 그렇게 있으니 뭔가 엄청나게 신분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참을 대기한 후 내 차례가 왔다.


준비한 모든 서류를 제출하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들이 말하길 미국 영사관에도 신고를 했어야 한다고 했다. 난 그저 캐나다 미국 대사관 홈페이지에 나온 대로 준비했다고만 말했다. 차마 미국 현충일로 영사관이 하지 않는다는 말은 보태지 않았다. 다행히 통과되었다. 하지만 영주권 재발행은 되지 않았다.


국경을 드디어 넘었다. 늦은 시간이었기에 여는 식당은 맥도날드 같은 패스트푸드점 뿐이었다. 간단하게 맥도날드에서 저녁을 해결한 후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 반이었다. 하루 종일 스트레스로 인해서 너무 피곤했다. 씻고 그대로 뻗었다.


다음 날, 5월 28일. 영주권 재발행 신청을 하였다. 시스템 상으로는 대략 18개월이 걸린다고 나왔다. 원래 영주권 카드를 재발급받을 때 USCIS에 방문해서 지문 및 사진 등을 다시 찍어야 하는데 다행히 예전에 등록한 지문과 사진을 그대로 쓴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제 남은 건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USCIS 공지에 의하면 5월 31일, 다행히 카드를 다시 발행 중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6월 7일, 카드 재발행이 완료되었다고 하였다. 6월 10일, 영주권 카드를 수령하면서 비극(?)은 끝이 났다.


사건의 재구성 및 의문점

자, 영주권 분실 또는 도난 사건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어디까지나 정황상의 증거일 뿐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말 그대로 의문점들이다.


1. 캐나다 국경을 넘을 때 그날 따라서 국경수비대가 질문을 많이 했다. 그리고 하필 그때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말들이 조금 있었다. 그리고 여권과 영주권을 돌려받았다. 이때, 그들은 과연 우리 모두의 영주권을 돌려줬을까? 돌려주지 않았다면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내 잘못이 크다. 나중에 아내가 국경에 전화를 했었는데 그들이 가지고 있는 영주권은 없다고 했다. 물론 있더라도 제대로 관리를 해줬을까 의문이다.


2. 호텔에 들렀을 때 방은 준비되지 않았었다. 짐을 맡기고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점심을 다 먹고 커피를 한 잔 하는 사이에 방이 준비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호텔에서 체크인을 한 후 방에 짐을 내려놓고 언제나 그랬듯 여권과 영주권 등은 금고에 넣었다. 휴식을 취한 후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방에는 방해금지 (Do Not Disturb) 사인을 걸어두었다. 그날 따라서 청소하는 사람이 지금 나가는 거냐고 룸서비스 필요하냐고 물었다. 보통은 인사 정도만 하지 굳이 지금 나가냐고 룸서비스 필요하냐고 묻지 않는다. 체크인을 방금 해서 필요 없다고 대답했다. 생각해 보면 그때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


3. 집으로 가려고 금고를 열었을 때 열리지 않았다. 에러코드는 "Ser"이었는데 인터넷에 찾아보니 비밀번호를 계속해서 틀리면 나오는 코드라고 했다. 매번 사용하는 비밀번호를 사용했고 호텔에서 단 한 번도 잘못된 비밀번호를 입력한 적이 없었다. 금고에서 필요한 물품을 꺼냈을 때도 잘 동작했었다. 그런데 에러와 함께 하필 영주권이 없어졌다. 이것이 과연 우연일까? 그리고 왜 하필 딱 내 영주권만 사라졌을까?


그래도 정황에 미뤄서 비싼 교훈을 얻었다. 금고에는 중요한 물품을 두고 가지 말 것. 중요한 물품은 항상 소지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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