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과 집안일

by 나무

2월은 아침에 아이들이 먹을 음식과 점심 도시락을 준비 후 출근하며 보냈다. 3월이 되면서 아이들은 학교를 가고, 나는 새로운 아이들과 동료를 만났다. 2월은 익숙한 것을 마무리하며, 새로운 것을 준비하는 시기라면 3월은 나뭇가지에 새싹이 움트듯 내 일에 있어서 움트는 시기다. 그래서 3월은 시작도 길고 더디게 여겨지며, 몸과 마음도 온 힘을 다한다. 싹이 움트고 초록을 내밀면 그때부터 잎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건 일도 아니다. 그걸 알기에 나는 3월의 꽃샘추위와 봄볕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앓이'를 하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나는 주기적으로 3월이 되면 바깥일과 집안일의 과부하가 오며, 집안에서 큰 전쟁을 일으킨다. 마음 앓이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3월이 끝날 무렵 몸도 앓고 나면 전쟁이 끝나감을 알 수 있다.

이번 주 나는 식구들보다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하고 나의 도시락을 챙겼으며, 씻고 일하러 나갈 준비를 마쳤다. 그 사이 아이들과 남편은 내가 차린 아침을 먹고 학교 갈 준비를 한다. 내가 아침 시간을 가족에게 많이 쓴다면, 남편은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에게 쓴다. 늘 잔소리를 하지만 크게 개선되진 않기에 나는 살면서 내려놓으려고 애썼다. 평일은 내가 바쁘게 아침을 준비하지만 주말은 남편에게 아침을 준비하게 하거나 평일 아침에는 적어도 커피를 내리는 일만은 하라고 지시하며 타협했다. 그래서 그는 내 말을 충실히 이행한다. 하지만 열두 달 중 3월만 되면 나는 유독 그의 이런 모습에 예민해진다. 나는 집안일을 인식하고 관리하는 사람으로, 그는 집안일을 요청받고 요청된 일을 수행하며 그 범위 안에서만 일처리를 하는 사람으로, 유독 3월만 되면 집안일 인식에 대한 차이가 불거진다. 이는 움트는 시기 바깥일의 정서적 피곤이 집안일로 번지며 내가 버겁다고 여기는 것이다. 나는 원인을 알고 이미 알고 있다. '과부하'가 걸린 것이다. 매해 나는 큰 전쟁을 반복하며 보냈는데 올해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칼집의 칼을 뽑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생각을 정리하며 글을 썼다. 글을 쓰다 보니 한쪽으로 쏠린 내 마음이 보였고, 그 마음들을 툭툭 두들겨 가운데로 모아봤다.

하나. 소진된 체력을 내버려 두지 않기. 1년째 미루던 운동을 하고자, 운동 상담 문의를 했다. 한 발 질질 끌고 나가기로 한 것이다.

하나. 내 마음을 감정을 빼고 정리하기. 글로 정리하고, 3월 첫 주 주말, 1. 박. 2. 일. 놀러 나간 그에게 전달했다.-참 간 큰 남자지, 여기서 돌아온 그에게 잔소리를 멈추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건 내게 신의 영역이라-그리고 스스로의 문제를 인식하기

하나. 집을 쓸고 닦고 봄맞이 대청소하기. 아이들은 도서관으로 보내고, 주말 내내 아이들 책상과 책장을 정리, 베란다 청소며, 여기저기 구석구석 쓸고 닦으며 보내고 있다. 손 끝이 시리고 손가락이 부었다. 집안의 먼지를 비우듯 내 마음의 먼지도 비워지길 움직였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쓰레기 배출과 분리수거를 맡아서 하고, 빨래를 개고, 옷을 정리했다.

하나. 이 모든 걸 혼자가 아니라 함께하길. 제일 중요한 건 한쪽으로 취우 친 생각과 감정으로 자폭하지 않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싹이 움틀 수 있도록 함께 마음과 생각을 나누는 것을 외면해선 안된다.


쉴 새 없이 울리는 바이올린 선율을 들으면 나는 이만 집안일을 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