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그 어린 나이부터 나는 나를 표현하고 싶었다.

by 나무

고등학교 때, 사진집에서 본 나무 사진 한 장을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사실적인 나무 사진이 아닌 셔터속도를 느리게 해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듯한 빛으로 터치한 나무 사진 한 장이 내 삶을 이끌었다. 그렇게 사진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는 그 나무 사진을 찍어보거나 시도해 보지 않았다. 앞으로도 시도할 생각이 없다. 사실 그때 나는 사진보다 그림이 더 그리고 싶었다. 그걸 대신한 게 카메라였고, 그 카메라를 대신한 게 펜이었다.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것, 표현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 되었든 상관없다는 사실을 안다. 카메라는 나를 표현하는 수단일 뿐. 그 어린 나이부터 나는 나를 표현하고 싶었다.

왜 하필 나무였을까? 나무의 싱그러움, 을씨년스러움, 풍성함, 바싹 마름, 다양한 빛깔을 가지고 있는 그 모습, 숲을 이룬 그 모습에 함께하고 싶었다.

혼자이고 회색빛인 내 삶이 싫었을까? 그때 내 삶은 죽음과 너무나 가까웠다. 친했던 친구가 자살하고, 복학생 언니가 백혈병으로 죽고, 늘 어떻게 살래, 뭐 하고 살겠느냐며 자신의 불안과 걱정을 나에게 투척하는 아빠로부터 나는 죽어 나가는 기분이었다. 자주 싸우는 부모님, 폭력을 행사하는 아빠 밑에서 내 자아를 온전하게 지키기엔 너무나 버겁고 왜 사는지, 왜 태어났는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아빠의 외적인 질문에 나는 내적인 질문을 던지며 죽어가는 내 자아를 살리고자 애썼다.

그런 나를 엄마는 잡초라고 표현했다. 잡초처럼 강인하다는 뜻에서 말했겠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난 잡초 말고, 온실 속 화초의 삶을 살고 싶었다. 어렸을 때는 그 잡초처럼 아무 데서나 잘 자란다는 소리가 좋은 말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그 말이 슬프다. 나는 왜 잡초처럼 자랐어야만 했는가.

아마도 그래서 나무가 좋았나 보다. 굵은 뿌리를 내리고 군집을 이루면서도 자기 색을 내는 그 나무, 나는 그 나무 속에 함께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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