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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Jun 06. 2024

정신 건강 병원 상담 2. 결핍의 승화

교사가 된 이유

 "어렸을 때 이상적인 어른을 만나지 못하거나 본인이 결핍이 있다면, 어른이 됐을 때 결핍된 부분을 채우려고 하고 교사라는 직업을 통해서 실현하려고 하죠."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어른은 어떤 존재였을까? 공부를 잘하거나, 예쁘거나, 모든 걸 잘 갖춘 아이보다 공부를 못하거나, 못난 구석이 있거나, 결핍이 있는 아이를 바라봐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어른, 겉모습이 초라하고 볼품없는 아이라도 따뜻한 눈길을 보내주는 어른.

 내가 너무 이상적인 걸 바랐던 걸까? 나는 그런 어른이 내 곁에 있길 바랐다. 하지만 난 그런 어른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엄마는 3교대의 공장을 다니며 집안일과 바깥일을 하느라 자기 잠을 줄여야 할 정도였기에 나를 챙기지 못했다. 아빠는 굉장히 가부장적이며, 늘 표정을 살펴야 하는 존재였다. 아빠가 집에 오는 시간쯤이면 늘 긴장하고 텔레비전은 끄고, 방을 치우며, 공부하는 척을 해야 했다. 나는 그런 아버지에게 한 살 어린 남동생보다 더 많이 맞고 자랐다. 아버지 말에 대꾸하며, 이의를 제기한다는 이유로, 순종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나는 다양한 방법으로 맞았다. 그런데 그런 나는 밖에서 이런 나의 모습을 내색한 적이 없다. 그러며 큰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그래서 학교에서 나는 늘 조용하고 어두운 표정을 하고 앉아 있는 학생이었다. 그런 나에게 관심을 는 어른은 없었다.

 고2 때 공부도 잘하지 못하고, 특출  것 없는 나에게 학기 초에 하는 의례적인 상담에서 담임선생님이 마주 앉아 내 두 손을 꼭 잡아줬다.

 "넌 어디서든 뭐든 잘할 거 같아. 선생님은 널 믿어."

 나에게 그 말이 평생 가슴에 새겨져 있으며, 내 삶에서 힘이 되는 말이다.



 얼마 전 말썽꾸러기 녀석이 사고를 쳤다. 선배가 시킨 대로 다른 학생에게 욕을 한 이다. 

 그리고 자신은 친한 친구들이 반티에다가 써서는 안 되는 말들을 써서 그 반티를 입지 못해 복잡한 상황에 연루되었다. 어머님을 불러 면담하고 아이 옷은 내가 버리고, 그걸로 끝내는 것으로, 그리고 녀석이 욕한 부분에 대해서는 깊이 반성하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나는 그 반티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 집에 가지고 가서 매직 지우는 방법을 검색해서 물파스로 여러 번 글씨를 지웠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글씨는 잘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흐려진 글씨 위에 좋은 말로 써서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다시 주는 게 아주 조심스러워. 그런데 새로 반티를 산다고 과거 일이 지워지지는 않아. 그래서 선생님이 좋은 말로 꾸며 봤어. 이걸 하느라 정말 고생했다. 근데 그러면서도 너한테 알려주고 싶었어. 변할 수 있다는걸. 더 좋아질 수 있다는걸. 이걸 가져가서 버려도 괜찮아. 대신 선생님이 널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 너에게 노력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

 녀석의 표정이 희미하게 웃음기가 생겼다. 그리고 다음날 옷을 새롭게 만들어줘서 감사하다는 어머니의 문자를 받고 마음을 놓았다.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묻는다면,


 "내가 마음이 가요. 정말 저의 결핍을 채우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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