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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Jul 06. 2024

이탈리아 아시시 농가 숙소(유럽16)

허브의 천국

아시시 농가에서 하루 밤을 묵으며 찍은 사진들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는 깊은 산속에 있는 농가 숙소에서, 아시시에서 사온 프로슈토와 치즈 그리고 와인


숙소를 떠나는 아침에 만난 무지개

PHOTO 2023. 04. 15-16. By김나무



 유럽 여행을 가기 전에 한 달 반 여정 숙소를 모두 결제를 미리 했다. 슈퍼 'P'인 내가 계획형 인간으로 여정을 짜려고 하니 여행지를 유럽으로 정한 게 후회가 되며 나를 탓하기도 했지만, 그 많은 숙소 중에서 기대했던 곳 중의 하나가 농가에서 민박하는 아시시 숙소였다. 차를 대여했기에 숙소 결정이 가능했던 곳, 중심지에서 조금 벗어난 곳, 꼬불꼬불한 산길을 차로 한참 올라가야 머물 수 있는 곳, 와이파이도 터지지 않아서 깜깜한 밤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곳을 향해 우린 미리 마트에서 저녁에 먹을거리를, 장을 봐서 움직였다. 그리고 도착한 숙소에서 제일 먼저 나를 반기는 것은 여러 종류의 꽃과 허브들이었다. 그리고 가장 나를 놀랍게 한 것은 내가 사랑하는 로즈메리가 나무처럼 군집을 이루고 있으며 보랏빛 꽃으로 나를 반기고 있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아 이 녀석도 자기의 서식지에서는 날개를 펴는구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며 그동안 내가 많이 죽였던 로즈메리들에 미안해졌다. 그래도 나는 로즈메리를 집착하는 뇨자이다. 그래서 숙소에 들어가기 전부터 나는 로즈메리를 사진으로 남기고도 아쉬워했다. 이 녀석들을 다 데리고 집으로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왜 로즈메리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내가 왜 허브 종류에 집착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들이 주는 향이 나를 안정되게 해서이다. 나는 오감 중 특히 청각과 후각이 발달하여 있다. 그래서 나는 자연의 향기인 로즈메리와 여러 허브를 옆에 두고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곳에서 만난 허브는 나에게 천국이었다. 입꼬리가 올라가고 들뜬 내 맘이 내 몸을 춤추게 만들자, 우리 가족 펭귄들은 그런 나를 보며 '아, 엄마 펭귄이 좋아하는 허브를 만나서 신났구나!' 말하지 않아도 알아차렸다.

 우리는 숙소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했다. 빵과 아시시 로컬 마트에서 사 온 프로슈토와 남편이 고른 현지 와인, 그리고 그 와인과 어울리는 치즈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해서 사 온 치즈로 처음으로 이탈리아에서 프로슈토와 치즈를 도전했다. 그리고 별것 없는 상차림에서 행복을 느꼈다. 아마 그 시점을 시작으로 남편 펭귄은 와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나는 치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현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여행의 묘미를 느끼며 여유롭게 밤을 즐겼다. 사실 현지 마트에서 나보다 의사소통이 자유로운 남편 펭귄에게 와인과 어울리는 치즈를 물어보라고 시켰다. 투덜거린 남편이지만, 현지인인 푸드 코트 사장님이 아주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며 우리가 먹을 만큼의 양을 잘라서 판매해 주셨다. 그래서 남편 펭귄에게

 "내 말을 잘 들으니깐 이렇게 맛있는 치즈도 맛보고 좋잖아~!"  

 어이없어하는 남편 펭귄은 그런 나를 바라보며 '내가 너를 모시고 산다'는 표정으로 와인 한 모금을 삼켰다. 그런 우리를 보는 아이 펭귄들은  있는 일이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쳐다봤다. 여행의 특별함 속에 우리 일상이 겹쳐 여행이 일상이 되어감을 느끼며 하루를 마무리한 날이었다. 

  


 이 여행의 시작은 간단하게 10년 전 결혼 10년 차에 유럽 여행 가자에서 시작 되어지만, 그 이면에는 나의 공황장애로 1년 넘게 먹는 약과 반년의 상담 과정에서 내린 결과물이다. 그리고 남편 펭귄이 나의 모습에 지치고, 직장생활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두고만 볼 수 없었다. 사랑하는 나의 아이 펭귄들이 엄마 펭귄을 무서운 사람으로, 예민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내버려둘 수 없었다. 그래서 나와 기질이 비슷한 딸을 통해서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

 "어쩌면 딸처럼 선생님도 자유로운 사람일 겁니다. 어쩌면, 그 자유로움을 스스로 통제하느라 아픈 거고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생각했고,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래서 남편 펭귄에게 내년에 한 학기 휴직을 권했고, 나는 일을 쉬겠다고, 아이들은 체험 학습을 쓰고 한 달 반 유럽 행을 하자고 했다.

현재 일상에서 벗어나 조금은 자유롭게 지내면 좀 괜찮지 않을까 막연한 생각에서 시작된 여행인 것이다.

 그리고 그 여행은 지금 우리 가족에게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자양분이 되었고, 나에게 자유로움이 무엇인지 감각을 깨우쳐주었다. 우리 가족의 결단으로 우리는 지금 달라진 일상 속에서 특별한 여행을 기억하며, 엄마 펭귄은 예민하지만, 자유롭고 웃낀 사람, 아빠는 와인에 빠져 사소한 사치를 누리며 삶을 살아 가는 사람, 아이 펭귄들은 엄마가 쓰는 글과 그림을 기다리는 최애 구독자가 되어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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