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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Jul 10. 2024

기간제 교사의 구직활동

지원서를 수정하며 느끼는 바

 구직활동이 시작되면 한동안 들어가지 않았던 교육청 사이트 기간제 구인란을 하루에도 수십 번 들락날락한다. 내 과목을 구하는 공고가 올라오면 안심하고, 없으면 실망하고 이 기간에 내 마음은 널뛰기한다.

 여러 학교를 거치면서 이력서에는 경력 칸이 이제 부담될 정도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고경력자도 아니다. 쪼개기 계약, 단기 계약 등을 거치면서 정교사인 남편보다 더 많은 학교와 다양한 유형을 거친 것이다. 종종 운 좋게, 또는 합이 잘 맞아서 2년, 3년 연속으로 일하는 기간제 선생님들을 보면 나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최대 한 학교에 있었던 게 1년 반이다. 사실 더 이어서 계약할 수 있었지만, 스스로 나온 학교라는 게 내 바람과 다르게 행동하는 모순을 스스로 보여준다.

 어느 곳이나 다 만족할 수 없다. 그런데 나는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에 굉장히 취약한 사람인가 보다. 연장할 수 있었던 곳을 차고 나온 데가 지금 있는 곳까지 하면 3곳이다. 첫 번째는 동 교과 선생님의 갑질 때문에 스스로 나왔고, 두 번째는 관리자의 갑질 때문에 공황장애가 시작되어 나왔다. 세 번째 이곳은 학부모 민원과 동 교과 교사와 원활하지 못한 의사소통 상황으로 불면증에 시달려서 나오기로 했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누군가는 나의 상황을 보면 호강에 겨웠다고 표현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스스로 자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남의 시선과 나의 자책은 그냥 접어두기로 했다. 수많은 경우의 수와 생각, 태도, 행동, 가치관이 존재하는데 나는 그 무엇보다 나를 지킬 필요가 있어 내린 결정이라고 믿는다.

 "괜찮다."

 한 곳에 진득하게 있지 못해도, 버티지 못해도. 계약이 만료되어 다시 구직 활동을 해야 하는 상황도. 의미 없는 일은 없다.

 나는 여러 학교를 거치면서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과 일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약해져 깨진 것이 아니라, 나를 보호하고 지킬 수 있는 내면의 힘을 키운 것이다. 그렇기에 의미 없는 일이 없으며 내 바람과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음에 실망할 필요가 없다.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을 대면하면서 새로운 인연이 이어져 친구가 되고, 언니가 되고, 동생이 되기도 하고, 나와 결이 다르거나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을 만나면서 결이 다름에서 배움을 얻고, 상처 주는 것에서 스스로 받지 않으려고 노력하거나, 상대에게 측은지심을 가지고자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나쁜 X이라고 욕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면 그만인 것임을 알았다.

 매번 비슷한 듯 다른 지원서 양식마다 추가된 경력을 넣고, 글을 다듬고 다듬어 작성하는 일이 쉽지 않다. 뭐랄까, 비생산적인 일을 반복하고 있는 느낌? 나의 형식적인 글로 한 장의 지원서에 표현하고, 그 얼마나 봐줄지도 모르면서 다듬고 있는 나를 보면 어려운 일은 아니나, 그렇다고 흥이 나는 일도 아님을 느낀다. 보낸 메일함에 쌓인 지원서들과 마주하고, 1차 서류 합격자 발표가 났을 때, 연락 없음에 하염없이 기다리다 실망하거나, 연락이 왔음에 안도하거나 그 과정을 다 거치기도 전에 진이 다 빠진 느낌이다. 그래서 지금 1차 서류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는 힘을 다 소진한 기분이다. 이 단계가 어떻게 진행되고, 내 마음의 동요와 준비 과정을 너무나 잘 알기에 더 그런 것 같다. 어제, 오늘 이틀을, 지원서를 정리하고 관련 서류를 준비하며, 쌉싸름한 맛이 내 입안에 도는 듯한 착각도 이미 경험한 일에서 오는 불확실성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태도로 구직활동을 진행해야 하는 걸까? 혹자는 '일 안 구해지면 쉬면 되지.'라고 말하나, 그건 우리 집 아이들 학원비며, 생활비를 생각했을 때 똥줄 타는 일이라 어렵겠다. 혹자는 '걱정 마. 어디든 일하게 되어있어.'라고 낙관적 전망으로 나의 불안감을 잠재우려고 한다. 나는 생각과 걱정이 많은 사람으로 낙관과는 유감스럽지만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나답게 전전긍긍하란 말인가? 그게 병이란 소리를 들을 만큼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건 나도 안다. 언젠가 DDP뮤지엄에서 진행하는 워너브라더스 100주년 셀레브레이션 전시에서 만난 문구가 스쳐 지나갔다.

 그렇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내면이 강한 사람이다. 그걸 잊고 있었다. 이 구직활동에서 나는 내가 강한 사람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과정과 결과와 상관없이 나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입안의 쌉쌀한 맛이 어떤 맛인지 구체적으로 떠올랐다. 다크 초콜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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