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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현 Nov 20. 2023

(시위하지 않으면)"1차원적 인간이야"

비판철학이 대두된 철학적 배경(1945년 이후)

다시 1945년으로 잠깐 돌아가 보겠습니다.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떨어짐과 동시에 많은 사람이 죽었고, 2차대전은 결국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공교롭게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손 잡고, 전체주의 세력인 독일, 이탈리아, 일본을 이긴 것이지요. 미국과 소련은 전 세계에 마지막 남은 두 마리 호랑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겠죠? 승전국의 수장은 자국 내에서 수많은 사람을 숙청하고 권좌에 오른 스탈린이었다구요!


1945년에 전쟁은 끝났지만, 여전히 세계는 시끄러웠습니다. 일단, 전쟁이 끝난 후 식민지 국가들의 거취 문제가 남아있었습니다. 마르크스가 그토록 비판했던, 제국주의(imperialism)의 유산이었죠. 이건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가 아주 적합한 사례에요.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광복’을 했지만, 불행히도 2차대전 종전과 동시에 국가를 수립하진 못했어요. 한국 내에도 ‘사회주의’로 국가를 세워야 하는지, ‘자유주의’ 국가를 세워야 하는지 의견이 분분했거든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수많은 식민지 국가에서 이러한 문제는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시한 폭탄 같은 것이었어요. 


다른 한 편으로는 전쟁의 가능성도 남아 있었어요. 이미 언급했지만, 2차대전까지 일어났는데, 3차대전이라고 없으리란 법은 없잖아요. 냉전(cold war)이라는 표현이 이런 불안한 평화의 상황을 잘 보여주죠. 그리고 위 문제와 관련하여 ‘민족문제’ 즉, 어느 나라에서 시작된 갈등이든, 미국과 소련이 맞붙기만 하면 사상 초유의 세계대전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엄청 위험한 상황이었어요. 나중에 이런 우려는 결국 현실화되는데, 한국전쟁을 통해서 미국과 소련은 정면으로 맞붙을 뻔 했지만, 사실 이 때는 소련이 아닌 중국이 참전했기 때문에 미소의 정면 대결을 피할 수 있었죠. 


경제는 어땠을까요? 다 아시다시피 1929년 대공황으로 자본주의 경제는 최악의 위기를 맞았고, 그 이후 세계 2차대전이 일어났어요. 물론 미국은 케인즈 경제학을 일찍 받아들이고, 루즈벨트 대통령이 뉴딜정책 등을 잘 수행한 덕분에 그럭저럭 잘 지나갔지만, 독일의 경우에는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어야만 했죠. 이와 같은 경제의 불안정성이 2차대전의 직접적 원인 중 하나였음은 분명했죠. 자본주의란 녀석은 언제 어디에서 이런 공황을 만들어낼 지 모르는 녀석이라는 것이 밝혀졌거든요. 그런데 또 공황이 왔을 때 또 케인즈 이론이 먹힐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어요. 


조금 잔인한 사실은 2차대전이 대공황을 돌파하는 방법이기도 했다는 거에요. 자, 그럼 어떤 결론을 얻게 되죠? 1. 세계에는 전쟁의 불씨가 남아 있다. 2. 민족문제는 언제든 세계전쟁 도화선이 될 수 있다. 3. 자본주의는 전쟁을 필요로 한다. 그럼 언제든 최악의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너무 당연한 말이겠지만, 2차 대전은 끝났지만, 세상은 여전히 불안했어요. 사람들은 불안하면 무엇을 할까요? 내가 왜 불안한지, 그리고 도대체 뭐가 잘못되었는지, 생각하는 이론이 힘을 받기 시작해요. 전후 소위 말하는 비판철학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건 이런 맥락에서에요. 전쟁이 끝나도 우리가 불안한 이유는, 자본주의냐 공산주의냐 하는 체제의 문제라기 보다는 근대를 만들어낸 서구 이성 자체를 비판해봐야 한다고 말하는 세력이 나타난 것이죠. 이들은 나중에 68혁명의 이론적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 사실 이 말은 조금 조심스러워요. 왜냐하면, 68혁명이라는 사건 자체가 엄청나게 많은 나라에서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도대체 어느 시위의 어떤 부분만 비판철학의 영향을 받았는지 콕 찍어서 말하기가 곤란하거든요. 


비판철학은 막스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Adorno), 허버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 에리히 프롬(Erich Fromm),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등의 사회비판적 사상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그 중에서도 막스 호르크하이머와 테오도르 아도르노가 철학적으로는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것 같고, 마르쿠제는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1차원적 인간’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이들의 철학적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할 수는 없지만, 말하자면, 17세기 과학혁명의 자신감으로부터 비롯된 서구 이성 자체를 근본적으로 비판해봐야 한다는 것이에요. 아도르노와 막스 호르크하이머가 공저한 『계몽의 변증법』은 근대 서구사회를 혹독하게 비판합니다. 저자들은 계몽주의가 이성을 절대화함으로써 신비주의와 무리한 비판을 배제하고, 결국 자연과 인간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도구로 이성을 전락시켰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성은 인간 해방의 수단이 아니라, 억압과 통제의 수단으로 변모했다고 주장하죠.


또한, 이 책에서는 계몽주의가 어떻게 합리성과 과학적 사고의 이름으로 비인간화와 소외를 초래했는지를 설명합니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나치즘의 등장과 홀로코스트와 같은 극단적인 인류의 잔혹 행위가 계몽주의 이성의 왜곡된 결과라고 분석합니다. 이들은 계몽주의가 자연을 지배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반영하면서, 궁극적으로 인간 자신을 억압하고 파괴하는 역설에 빠졌다고 지적합니다.


비판 철학의 근대 문화 비판은 1960년대 대학생들에게 정서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크게 영향을 미친 작품은 마르쿠제의 “1차원적 인간”이었습니다.  마르쿠제는 자본주의 사회가 개인의 자유와 비판적 사고를 억압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 사회를 '일차원적'으로 묘사하며, 이는 사람들이 주어진 상태에 만족하고 기존 체제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관점은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강력한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말하자면, 시위하지 않으면 1차원적 인간이라는 식의 말이 설득력을 가지게 된 것이죠. 


마르쿠제는 소비주의와 물질주의가 인간의 참된 욕구를 억누르고, 자유와 창의성을 제한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1960년대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대중 문화와 소비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강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소비문화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없으신가요? 케인즈 경제학에서는 소비를 강조합니다. 자본주의 문화는 대중문화마저도 ‘소비’로 만들어 이윤창출의 도구로 활용하는 경향이 있죠. 비판이론가들은 전후 근대성(modernity)를 비판하면서 사회변화를 촉구하고, 이와 같은 분위기는 68혁명의 분위기로 이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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