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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현 Nov 26. 2023

데이비드 하비 글을 딱 하나만 읽는다면?

The Urban Process under Capitalism 

지금까지 우리는 1973년 『사회정의와 도시』를 발간하게 될 때까지 하비의 저작과 사상의 흐름을 살펴보았어요(그러고 보니 이 원고를 쓰고 있는 이 시점에 『사회정의와 도시』가 발간된지 50년 되는 해네요.). 요약하자면 1969년 하비는 존스 홉킨스 대학에 와서 볼티모어 사회에 대한 보고서를 쓰면서 맑스의 사상에 심취하게 되었고, 그 1차 결과물로 『사회정의와 도시』를 출간하게 됩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하비의 문제제기는 굉장히 과감하고 신선했어요. 그런데 문제가 있었어요. 


전 세계는 마르크스주의 학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각자 자기 시선에서 마르크스를 이해하고 분석하죠. 말하자면, 데이비드 하비는 마르크스의 이론으로 도시를 분석하겠다고 과감하게 나오는데 성공했지만, “이론적으로 튼튼한가?”는 좀 다른 문제에요. 


『사회정의와 도시』의 결론부에서 하비는 마르크스가 최종 대안이라고 소개합니다. 라이프니츠, 스피노자, 칸트, 헤겔을 다 지나서 결국 마르크스에 의해서 서양철학이 대통합을 이룬 것처럼 묘사합니다. 그러면서 기존 마르크스주의자들을 혹독하게 비판합니다. 


기존 소위 맑시스트(Marxists)가 마르크스 저작에서 얻을 수 있었던 가장 소중한 도구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결론 두번째 페이지).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소위 정통(orthodox)한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이 데이비드 하비를 보는 시선은 그렇게 곱지만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전 세계에는 자기가 마르크스의 최고 권위자라고 생각하는 수많은 학자들이 있거든요. 그 학자들은 마르크스의 본령에 대해서 자신이 더 잘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누가 뭐라고 해도 마르크스 이론의 본질은 자본주의 모순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며, 노동자의 승리에 대한 확신입니다. 『공산당 선언』은 결국,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메시지로 끝나게 되죠. 그런 학자들에게 하비의 저작이 인정받기는 아직 좀 어려웠어요.


『사회정의와 도시』에서 또 하나 짚고 넘어갈 점은 이미 이 시점에서 데이비드 하비는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겁니다. 아마 이 시기는 이미 언급한 것처럼 1968 혁명이 끝난 시점이고, 앙리 르페브르는 ‘도시’와 ‘공간’, 그리고 ‘마르크스’를 연결하는 지적인 작업을 왕성하게 하게 됩니다. 1970년에 ‘도시혁명’(La révolution urbaine), 1972년에는 ‘마르크스주의 사상과 도시’(La pensée marxiste et la ville)를 출간합니다. 그리고 1974년에는 그 유명한 ‘공간의 생산’(La Production de l'espace)을 출간합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앙리 르페브르는 ‘68혁명 당시 낭테르 대학의 존경받는 교수였어요. 데이비드 하비가 볼티모어의 폭동 이후 마르크스를 ‘발견’했다면, 앙리 르페브르는 30년 동안이나 공산당 생활을 하다가 스탈린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쫓겨난 ‘찐 공산주의자’였어요. 하지만 그는 당에서 쫓겨난 이후 보수주의자로 변신하지 않고, 도시와 공간, 마르크스주의를 연결시키는 지적 작업에 골몰하게 됩니다. 여담이지만, 그는 평생 70권에 가까운 책을 썼습니다. 90년의 인생 동안 70권의 책을 쓰다니 스무 살 이후부터는 매년 한 권 씩 책을 쓴 셈입니다. 존경스럽네요.


  다시 하비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하비는 『사회정의와 도시』에서 멋지게 마르크스주의를 가져옵니다. 그리고 그의 변증법적 사고를 가져와야 도시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사례로 완벽하지는 않지만, 앙리 르페브르의 사고를 빌려왔습니다. 돈 미첼은 2023년에 나온 논문에서 자신도 『사회정의와 도시』를 이제서야 처음 읽었다면서(출처), 신선함과 동시에 ‘조잡함’(crudeness)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너무도 당연하지요. 왜냐하면 그 때까지만 해도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거든요. 돈 미첼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그의 생각은 그 책에서도 ‘진화’(evolve)하고 있었습니다.  


『사회정의와 도시』의 문장을 보면 엄청나게 과감한 대안을 제공합니다. 아마 이 구절은 이 책에서 가장 충격적이며, 또 많은 사람들이 인용하는 구절일 것입니다. 제가 인용하려고 했던 구절을 돈 미첼(Don Mitchell) 교수님도 똑같이 인용하고 있더라구요. 


우리의 목표는 게토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목적과 관련하여 유일하게 유효한 정책은 이론의 진실성을 야기하는 조건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도시 토지 시장에 대한 튀넨의 이론이 사실이 아니기 를 바랍니다. 여기서 가장 간단한 접근 방식은 이론을 생성하는 데 사용되는 메커니즘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p.137)


앞서 알론소의 입찰지대곡선이 어떻게 게토의 형성을 설명했는데, 여기서는 ‘입찰지대곡선’이 가능케하는 조건을 제거하자고 합니다. 말하자면, 자본주의적 토지이용을 제거하지 않는 이상 게토는 없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좀 과감하게 말하자면, 자본주의적 토지이용이 아니라 계획주의적, 혹은 사회주의적 토지 이용을 해야지 보다 사회정의에 다가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 주장은 꽤 과감해요. 그렇다면 하비는 이제 “자, 그럼 이제 자본주의적 토지 이용이 왜 나쁘고, 어떻게 공간을 사회적으로 만들어내야 하는지 한 번 얘기해봐.”라는 말을 들어야 겠죠? 말하자면, 마르크스를 주장하고 지리학의 새로운 문을 박차고 나온 것까진 좋았는데, 그 다음 설명은 무엇이냐는 거에요. 아마도 70년대 하비는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을 거에요. 한가지 다행인 점은 그에게는 같이 마르크스를 읽을 대학원생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가끔 그는 당시 대학원생들에게 고맙다는 인터뷰를 하곤 합니다. 그는 마르크스를 강독하면서 이론을 다져 나가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하비는 ‘자본의 한계’(Limits to Capital)로 가기 위한 초석이 되는 역사적 논문을 발표합니다. 그 논문이 바로 IJURR에 1978년에 발간된 ‘자본주의적 도시과정: 분석을 위한 틀’(The Urban Process under Capitalism: A Framework for Analysis)입니다.이 논문은 너무나 유명하고 하비의 여러 책에 다시 등장할 정도로 중요한 논문입니다.


이 논문의 내용을 누구나 알기 쉽게 요약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일단 ‘소비기금’, ‘잉여자본’, ‘이윤율 저하’, ‘착취율’, ‘산업예비군’ 등 이 책의 각 개념들이 각각 엄청나게 심오한 뜻을 담고 있거든요. 하지만, 제가 이해하는 선에서 대략 설명해 볼게요.  


대략적인 스토리는 이래요. 자본주의 상황에서 자본가는 항상 멍청하게 과잉생산을 하는 버릇이 있어요. 예를 들어 누가 티셔츠 100장을 만들어 100만원을 벌었어요. 다음에 이 사람은 100장만 더 만들지 않고, 사람을 더 고용하고, 기계를 들여서 10,000장을 만들어버려요. 티셔츠가 부족했을 때는 100장이 금방 팔렸는데 만장 팔기는 쉽지 않죠. 그리고 재고가 쌓이게 되어요.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자본가 입장에서 이윤율은 하락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식민지도 개척하고, 기계도 들여보고 온갖 노력을 해보죠.


말하자면 자본 축적의 위기가 발생하는 것이지요. 이 때 자본가는 주로 국가와 결탁하여 인프라(인프라 자체가 마르크스 용어입니다. Infrastructure, 즉, ‘하부구조’라는 뜻입니다)에 투자를 하게 됩니다. 우리가 케인즈 이론에서 많이 보아왔던 해결책이죠. 이걸 하비는 여기에서 건조환경(built environment)이라고 불러요. 이걸 소위 2차 순환이라고 합니다. 1차 순환(티셔츠 판매)에서 위기가 발생했을 때 2차 순환 즉 건조환경 투자에 의해서 위기를 극복하려고 해요. 이것은 일시적으로 작동합니다. 케인즈주의에 기반한 개발 투자가 얼마나 멋지게 대공황을 극복했는지 보셨잖아요. 그 유명한 뉴딜정책이 바로 2차 순환 투자로 자본이 위기를 극복하는지 보여주는 기가 막힌 사례에요. 1차순환에서 문제가 생기는 동안 2차 순환에서 건설 붐이 일어나고 많은 노동자들이 투입되기 때문에 경제가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요. 


그런데 건조환경 투자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거에요. 그리고 그 효과는 나중에 천천히 나타나죠. 그래서 자본가들은 금융 시스템을 통해서 마르크스가 ‘가짜 자본’(fictitious capital)을 만들어냅니다. 지금 돈이 없어도 신용시스템과 금융기법을 동원해서 건설 투자가 일어나게 하는 것이죠. 여기에 소비기금(소비자 신용, 주택 모기지, 지자체 부채) 등 시스템을 동원합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경제가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이것 역시 영속적이지 못해요. 왜냐하면 도로는 어느 순간 포화상태가 되고, 아파트도 지을 만큼 지으면 여기서도 이윤율은 다시 떨어지거든요. 자본은 이 때 3차 순환을 준비합니다. 바로 과학 기술에 대한 투자이지요. 이제 건설이 충분히 일어났다면, 그 다음에 먼 미래에 우리에게 가져다 줄 번영을 땡겨 와서 미리 투자를 만들어 냅니다. 또 한편으로는 노동에 필요한 사회적 투자(교육, 이데올로기)에 대한 투자도 해야 하죠. 

이런 과정은 마치 19-20세기 자본주의 역사를 한 눈에 요약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결론에서 하비 교수는 ‘만성적 과잉생산’을 지적해요. 만성적 과잉 생산은 결국 이윤율 저하, 그리고 위기 돌파라는 공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지요. 이 과정은 당연히도 감가(devaluation)을 동반합니다. 감가라는 것은 가치를 적극적으로, 혹은 소극적으로 파괴하는 행위에요. 적극적으로 가치를 파괴하는 행위는 전쟁 같은 사례가 있고, 소극적으로 가치를 파괴하는 행위는 가난과 기아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과잉생산 문제는 결국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감가로 이어지면서 불안한 상태를 지속합니다.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 점은 2차순환, 즉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도시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는 겁니다. 이것을 지칭하는 말이 그 유명한 ‘공간적 조정’(spatial fix)입니다. 사실 fix를 어떻게 번역하는 것이 좋은지 학자들 간 말이 많아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하비 교수가 이미 해명을 했던 바 있습니다. Fix는 ‘고치다’는 뜻과 ‘고정하다’는 뜻이 둘 다 있어요. 하비는 그 두가지 뜻을 중의적으로 썼다고 합니다. 즉 spatial fix는 자본의 문제를 공간적으로 ‘해결하다’는 측면과 도시공간을 ‘고정시킨다’는 뉘앙스가 모두 들어있는 것이지요. 


2008년 부실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인해 미국의 주식시장이 붕괴되죠. 이어서 유럽에서는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포르투갈을 중심으로 재정 위기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 때 하비의 이론이 또 엄청나게 주목을 받게 됩니다. 그동안 잘 작동하는 것 같았던 건조환경(주택시장)에서 과잉축적의 문제를 의제자본(서브프라임 모기지론)으로 해결하다가 탈이 난 것이지요. 덕분에 많은 사람들은 집을 잃고,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평생 모은 주식, 그리고 어떤 사람은 연금을 날립니다. 이 과정은 영화 크리스챤 베일, 라이언 고슬링, 브레드 피트 주연의 ‘빅쇼트’에 아주 자세히 묘사되어 있어요. 이것은 나중에 “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시위의 발단이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서 하비의 1978년 논문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비의 이론의 정수는 ‘자본의 한계’이고, ‘자본의 한계’의 정수는 바로 이 논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시간이 되실 때 이 논문을 한 번 읽어보신다면, 데이비드 하비가 지리학에 마르크스를 어떻게 접목시켰는지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어 원문으로 읽으면 가장 좋겠지만(인터넷에서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영어가 조금 어렵다면, 최병두 교수님이 번역한 ‘데이비드 하비의 세계를 보는 눈’에 논문 번역본으로 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 논문을 한 번 읽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두 세번 읽어보면서 20세기 역사를 떠올려보는 것도 아주 재밌는 시간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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