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한계(1982)를 읽기 위한 준비
드디어 우리는 『자본의 한계』(1982)에 도착했습니다. 지난 시간까지 우리는 ‘분석틀’을 이미 다뤘습니다. 1978년 출간된 이 논문의 내용은 약간 수정되어 『자본의 한계』 12장 ‘공간 편성의 생산: 자본과 노동의 지리적 이동성’ 내용의 원천이 됩니다. 사실 하비가 ‘급진지리학’으로서 마르크스를 도입한 첫 저작은 『사회정의와 도시』(1973)이었습니다.
최근 『사회정의와 도시』(1973) 발간 50주년을 기념하여 문화지리학자 돈 미첼은 그의 저작을 한 편으로는 ‘조잡하다’(crudeness)면서도 그럴 수 밖에 없는 사정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하비는 막 급진지리학의 문을 연 상태였고, 세상에는 수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존재하니, 이제 하비는 스스로를 마르크스 이론으로 무장할 시간이 필요했어요.
이 책은 마르크스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서 모두 깊이 있게 다룰 수는 없어요. 하지만 마르크스가 남기고 간 쟁점은 정말 수도 없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노동가치론의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노동가치론은 루소로 거슬러 올라가서 리카아도의 신고전 경제학의 기초가 됩니다. 사실상 지금 경제학은 효용가치론(utility value)으로 대체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특히 노동 시간에 의하여 가치가 형성된다는 마르크스의 주장은 나중에 도전을 받게 됩니다.
철학적으로는 유물론적 관점이 비판 대상이 됩니다. 마르크스는 “사회의 경제 구조가 법적·정치적 상부구조 형성에 필요한 진정한 바탕이 된다” 하고 썼어요. 즉, 경제가 정치구조의 원동력이 된다는 주장이죠. 이 주장은 간단하게 다루기는 심오한데, 여하튼 마르크스 사상의 핵심을 관통하는 주장이에요. 이 관점은 나중에 ‘안토니오 그람시’에 의해서 혹독하게 비판을 받습니다. 그람시의 관점에서 경제적 하부조건보다는 그것을 이루고 있는 ‘관습’과 ‘문화’를 혁파해야 그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마르크스의 사상이 어디에 초점이 있는지도 중요해요. 마르크스는 『자본』을 쓰기 위해서 『정치경제학 요강』(Grundrisse, 이하 요강)을 먼저 썼어요. 말하자면, 습작 노트 같은 것이었죠. 마르크스가 유명해진 것은 엥겔스와 함께 집필한 메니페스토, 즉『공산당 선언』이었죠. 그리고 『자본』은 마르크스의 사상을 뒷받침 하기 위한 경제학 개설서 같은 느낌이었어요. 자본은 총 4권이 출간되어 있는데 1권부터 3권까지는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유고를 모아 편집했고, 4권 『잉여가치 학설사』는 카를 요한 카우츠키가 출판하게 되죠. 이쯤 되면 사실 『자본』을 쓴 것은 마르크스이지만, 편집한 사람은 엥겔스와 카우츠키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난해하기로 유명한 『자본』의 진짜 의도, 의중이 무엇이었는지 헷갈려요.
학교 다닐 때 철학 쪽 수업을 들으면, 많은 교수님들이 『자본』보다 『정치경제학 요강』(Grundrisse, 이하 요강)을 읽어보라고 강조합니다. 『요강』은 마르크스가 『자본』을 쓰기 위한 준비작업으로 쓴 책이에요. 이 책은 두말할 나위 없이 마르크스의 가장 중요한 책 중 하나이지만, 아직 생각이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채 쓰여진 책이기 때문에 난해하기로도 유명합니다.
더욱 중요한 건 『요강』에서 다루기로 했던 쟁점이 『자본』에서 다 다뤄지지 않은 것입니다. 또 하나 포인트는 가끔 『자본』에서의 사상과 『요강』에서의 서술이 다소 다른 점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두 가지 포인트를 또 읽을 수 있어요. 첫째, 마르크스의 사상은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도 변화하고 있었어요. 둘째, 그 말을 거꾸로 하면 마르크스의 사상 자체가 일관성을 얻는데 실패했다는 겁니다. 마르크스의 저작이 지속적으로 재해석되고, 재조명 되는 이유는 저는 여기에 있다고 봐요.
그래서 사람들은 나중에 발견된『경제학 철학 수고』(1844)를 읽습니다. 이 책은 마르크스가 스물일곱살 될 무렵에 썼던 책으로 마르크스 철학이 형성되는 시점이라서 의미가 있습니다. 이 책은 경제학이 아니라 철학에 집중하고 있어요.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서 노동이 소외되는 과정에 대해서 다룹니다. 말하자면 이런 거에요. 마르크스가 보기에 자본주의 노동은 그 전 노동과 다른 노동이에요.
노동 과정에서 주체를 소외시킴으로써 구체적 노동을 추상적 노동으로 만들어버린 거죠. 옛날에 대장장이는 노동을 통해 자연물을 인공물로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감독이자 주연이었다면, 현대 노동자들은 분절화된 노동을 하면서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주도하지도 못하고 엑스트라 조연으로 쓰여지고 있다는 의미에요. 이런 마르크스의 ‘인간적’ 면모는 나중에 재조명됩니다. 거친 혁명을 주장하고 싶은 사람은 이런 ‘인간적’ 마르크스의 모습을 외면하고 싶어 했고, 부드러운 혁명을 주장하고 싶은 사람은 ‘거 봐! 마르크스는 휴머니스트라니까.”라고 말하게 되었어요.
다시 『자본의 한계』(1982)로 넘어와 봅시다. 제가 마르크스 이야기를 길게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변죽을 울리려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의 제목 자체가 『자본의 한계』로 『자본』에 관한 책이라서 그래요. 이 책의 제목은 The Limits to Capital이고, The Limits of Capital이 아니라는 점도 좀 특이해요. 나중에 또 얘기하겠지만, 하비는 중의적 표현을 쓰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책의 제목도 오묘하죠. 순수하게 Capital을 ‘자본’이라고 해석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자본주의에 관한 책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조금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이 책을 마르크스의 『자본』에 관한 책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책의 첫 문장부터 마르크스가 나와요. 이 책은 그냥 마르크스에 관한 책이라고 봐도 좋을 만큼 마르크스의 이론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책이에요.
마르크스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경험에 대해서 책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Harvey, 1982).
『자본의 한계』는 바로 이 문장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서 곧바로 하는 말이 『사회정의와 도시』(1973)를 쓰고 나서 몇 가지 오류와 부족한 점이 있어서 그 뒤로 마르크스를 더 심도 있게 공부했고, 그래서 이 책이 나오게 되었다고 소개합니다. 이미 제가 앞 장에서 서술했던 내용과 완전히 일치하죠. 그리고 도시화 과정과 관련하여 마르크스가 남겨 놓은 ‘빈 상자’(empty box)를 채워보겠다고 합니다.
과연 그 빈 상자는 무엇이었을까요? 다음 시간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