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창현 Dec 06. 2023

자본의 한계, 번역의 한계

데이비드 하비의 가치론을 다루기 위해 

이 글은 "데이비드 하비 가장 쉽게 이해하기"(가제)라는 원고의 일부입니다. 추후 책으로 출간될 내용이니 인용은 하지 말아주세요. 감사합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지난 글에서 우리는 가치론(value theory)에 대해서 다뤘습니다.


사실 이 글은 '데이비드 하비'에 관한 시리즈이기 때문에 가치론에 대해 깊이 다루는 것이 과연 괜찮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데이비드 하비는 가치론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학자는 아니기 때문이에요. 데이비드 하비의 장점은 어디까지나 마르크스를 40년 강독한 내공과 변증법에 의한 지리적 상상력이에요. 그리고 마르크스의 사고방식을 이어 나가서 '공간'과 '도시'라는 화두로 확장한 것이 하비의 커다란 강점이었죠. 이 사고방식은 나중에 다루게 될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에서 크게 주목받게 됩니다.


이 글에서는 조금 다른 화두를 다뤄보려고 해요. 한국에서 '마르크스'는 아직도 조금은 쉬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데이비드 하비의 사상은 세계적으로 유명하지 않은 것 만큼 유명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 데이비드 하비의 글을 영어로, 또 한국어로 읽어보면, 그렇게까지 인기가 없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첫번째는 데이비드 하비의 글 자체가 좀 어려워요. 이건 아무리 하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거에요. 물론 하비의 글 이전에 마르크스의 글도 어렵기로 유명하죠. 데이비드 하비의 글은 두 가지 점에서 어려운데, 첫째로 너무 많은 배경지식을 꺼내고 있어요. 우리는 파리 꼬뮨에 대해서도, 오스망의 도시행정에 대해서도, 뉴욕의 재정위기에 대해서도, 보들레르에 대해서도 그다지 잘 알지 못해요. 하비의 글은 이 모든 배경지식을 한 번씩 훑고 지나가죠. 그리고 마르크스에 관한 그의 글은 비교적 명쾌한데, 가치론에 대한 글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요 (하비, 2018) . 하비 교수에 대한 책을 쓰면서 그를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원하는 설명은 '명쾌한 해명'이지, 신체에 대한 비유가 아니에요.


또 하나의 난점은 번역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 글을 전개하기 전에 저는 어떤 번역가도 비판할 생각이 없으며, 번역가들을 모두 존경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 『자본의 한계』를 읽은 사람이 2000명 정도 있다고 했을 때, 최병두 교수님이 그 책을 번역하지 않았다면, 몇 명이나 읽을 수 있었을까요? 게다가 번역본과 원본을 대조해본 저의 입장에서는 아주 작은 단어의 의미 하나도 놓치지 않고 번역하려는 정성이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역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AI시대에 앞으로 조금은 더 공부하기가 쉬워졌다는 논지를 전달드리고 싶을 뿐이에요. 그러니까 참고 한 번 들어보세요.


마르크스, 하비, 푸코, 르페브르 등 철학적인 이야기를 읽다보면 꼭 나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표상'이라는 단어에요. 여러분 '표상'(表象)이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 감이 오시나요? 한자어로 풀면, 겉으로 나타나는 모양이라는 뜻이에요. 하지만 한자 교육 주장하시는 분들이 한자를 몰라서 뜻을 모른다고 하는데, 한자만 알아서는 이 단어의 뜻을 절대 알지 못해요. '재현'(再現)이라는 단어는 어떤가요? 한자로 "다시 나타나다"는 뜻이죠. 이 둘은 모두 'representation'이라는 영어 단어의 번역어입니다.


표상이든 재현이든 represent는 '가리키다'는 한국어로 훌륭하게 표현될 수 있는 말이에요. 예를 들어 "A는 B를 가리킨다"는 말을 영어로 쓴다면,


"A represents B."


이렇게 표현할 수 있어요. 그림으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이 사고는 매우 중요해요. 옛날에 어떤 유명한 사람이 한 말이 있는데, '서양 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각주'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저도 예전에 참 플라톤을 싫어했는데(이상론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지금은 보면 볼 수록 플라톤의 관념론은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서양 사람들 관념에서 세상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데아가 있고, 현실은 이데아가 비춰서 형성되는 것이에요. 여기에서 이데아(idea)는 우리가 쓰는 '아이디어'와 같은 단어에요. 그러니까 서양 철학의 사고에서 거의 모든 상황에서 "A는 B를 반영한다"는 문구가 형성이 되는 것이에요. 심지어 마르크스조차도 여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이 사고는 민주주의의 시스템과도 연결됩니다. 우리의 의견은 누군가 대표(representation)해서 전달하게 되는 것이죠. 여론 혹은 민심이 이데아(idea)라면, 그것의 대표(representation)이 정치인인 셈이에요. 그러므로 represent는 '대변하다'(represent)라고도 번역할 수 있죠. 민주주의 시스템을 요약하자면, 모호하고 정리되지 않은 '여론'이라는 것을 선발된 정치인을 통해서 재현(representation)이라고도 말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글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 우리가 공부해야 할 것은 한자가 아니라 철학이에요. 지금까지의 설명을 읽고 나면 '재현의 위기'와 같은 표현이 더 잘 읽힐 것이에요. 재현의 위기란 원래 아이디어(idea)가 제대로 표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나중에 '재현의 위기'란 개념이 등장할 때는 위 그림을 떠올려보세요.


자, 가치론(value theory)로 넘어와 봅시다. 여기서 저는 다른 사람들은 좀처럼 다루지 않는 포인트를 하나 다루려고 해요. 가치(value)라고 했을 때 여러분의 머리 속에는 무엇이 떠오르나요? 물론 자유, 평등, 노동, 민주주의, 양심 이런 것들인가요? 가치라고 했을 때 이 단어들이 떠오르는 건 이상하지 않지만, 가치 이론의 가치는 밸류(value)에요. value는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라는 뜻도 있지만, '값'이라는 뜻도 있어요. 아니, 어쩌면 값이라는 용어로 굉장히 많이 사용되요. 함수 값은 the value of function 이죠. '가치'라는 말에는 '수치'라는 뉘앙스가 없지만, 밸류(value)라는 표현에는 수치라는 뉘앙스가 있어요.

그러니까 가치론(value theory)는 그 자체가 '물건의 가치가 어디서 오느냐'라는 논의인 동시에 "물건 값(value)를 어떻게 매길 것인가?"라는 의미이기도 하다는 것이죠. 저는 대학원 다닐 때부터 '가치론'에 대해서 사람들이 많이 오해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1996년에 킷 심즈 테일러(Kit Sims Taylor)란 분이 이 글을 참고해볼 필요가 있어요.


요약하자면, 경제학자가 구하려는 가치(value)는 '상품이 주는 유용성'이 아니고, 이 상품이 무엇과 교환될 수 있는지 '참 값'(value)을 추정하는 것이에요. 말하자면 시장가격이 아니라 장기균형가격이죠. 왜냐하면 가격(price)라는 것은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왔다 갔다 하는 것으로 물건의 '참 값'(value)와는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참고로 시장가격이 이렇게 튀고, 저렇게 튀는 것을 영어로 휘발성(volatility)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둘을 구분해내기 위해서 경제학자들은 교환가치, 자연가격(natural price), '생산의 가격'(prices of production, 즉 시장가격이 아닌 것이죠)이라는 용어로 가격(price)와 가치(value)를 구분합니다. 이 둘의 공통점은 어쨌든 '정량'적으로 표현될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에요.


자, 여기까지 읽고 '노동가치론'이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면 어떤가요? '노동'이 상품의 '미덕'이라는 뜻이 아니라, "노동으로 상품의 참 값을 계산할 수 있다"라는 뜻이 되는 거에요. 이것이 가능한지, 또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지는 아주 지난한 논쟁이기 때문에 별도의 공부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가치의 문제(특히 경제학에서)는 절대 숫자와 별개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혹시라도 수치로 '가치'를 일관되게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조금 맞지 않는 얘기일 수 있으니까요.


번역을 하시는 존경하는 모든 분들이 이러한 설명을 다 구구절절 달아놓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번역가들 사이에서도 용어가 통일되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embededness라는 단어가 있는데, 그 단어는 사회학에서는 '배태성'이라고 번역하는 경향이 있고, 지리학에서는 '착근성'이라고 번역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뿌리내림'이라고 한글 느낌 나게 번역하기도 하지요. 다양한 번역어가 있으면 좋지 않겠냐 싶지만, 사실 글을 읽는 독자는 한국어를 통해서 영어 단어를 추정할 수 있어야 해요. 물론 공간적 조정(spatial fix)과 같이 중의적인 표현을 완전히 일관적으로 번역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죠.


초보자들에게 '번역'은 너무 힘든 장벽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많이 좋아졌어요. 영어로 된 페이지가 있다면, 브라우져에 들어가서 오른쪽 클릭을 하면 바로 한국어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기계번역이 너무나 쉬워진 요즘에는 사실 번역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글을 번역해볼 수 있습니다. 기계번역이 아직 어색한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놀랍게 발전하고 있어요. 그리고 기계번역을 보다가 여러분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다시 원문을 보세요. 그리고 기계번역에서 사용된 용어들이 원문에서 어떻게 쓰여있는지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브라우저에서 오른쪽 클릭을 하면 순식간에 '한국어로 번역'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pdf도 자동으로 읽고 요약해주는 사이트가 있으니 참고하세요.


데이비드 하비의 이야기로 마무리를 해야 겠네요. 데이비드 하비의 생각은 이미 자본의 한계 등의 저작에서 충분히 나와 있지만, 저는 이 책을 쓰면서 하비 교수의 인터뷰나 에세이를 통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논문과 저서만 읽어서는 그가 브리스톨에서 미국으로 갔을 때의 느꼈던 생생한 긴장감이라든지, 심장이 많이 좋지 않아서 오히려 급하게 글을 써야 했다든지 하는 내용은 논문에 나오지 않거든요. 그래서 하비 교수의 사상을 알기 위해서는 '인터뷰'나 '에세이'가 중요했습니다. 여러분이 직접 찾아볼 여유가 없으시다면 제 시리즈를 보시면 되겠네요. 제가 그 작업을 하고 있으니까요. 


다음은 진짜로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르크스가 주식투자를 장려했다니, 그게 무슨 말이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