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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현 May 19. 2018

나에게 지리학이란 무엇인가?

원글: 2007년 

 사람들이 내 전공을 물을 때 자랑스럽게(?) 지리학과라고 대답하기가 머쓱해진다. 앞선 대화에서 보듯이 대체로 지리학이 무엇이고, 무엇을 연구하는지 대체로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리학을 전공한다고 하면, 나이 많은 아저씨들은 "풍수지리 한번 연구해 봐라"는 온고지신적인 충고를 해 주시기도 하고, "집값이 왜 그렇게 비싸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아니면, 노골적으로 경부운하에 대해서 견해를 밝혀보라는 사람도 있다. 그나마 이렇게 되물어주는 사람들은 양반이다. 대부분의 경우, 내가 지리학을 전공한다고 말하는 순간 대화가 끊긴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재빨리 화제를 다른 곳으로 넘겨버린다. 어떤 사람들은 묻는다. 지리학이 뭘 공부하느냐고? 나는 이렇게 대답하기를 꽤 좋아했다.


 "지리학은 지질학과는 달라요. 지질학이 땅 그 자체의 역사, 가령 100만 년 전 지구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도 관심이 있다면, 지리학은 땅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연구하는 것이지요. 모든 활동은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잖아요. 그 공간과 사람과의 관계를 연구하는 분야가 지리학입니다."    

 

 지리학을 전공한다고 몇 번이나 강조를 해도, 나중에는 내 전공을 지질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기계과"라고 기억하는 사람도 많다. 서울대 도서관에 가서 보면, 지리학 서적은 역사학 분야에 속해 있으며, 그마저 역사서의 1/10정도의 도서 밖에 소장하고 있지 않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지리학이 역사학의 하위 분야의 하나 쯤 되나 보다, 하고 여길 수 있을 것이다. 이쯤 되면 지리학이 무엇이고, 어떻게 사람들에게 지리학을 설명해야 할지 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러니까, 교과서의 힘이 무섭다. 고전소설=구운몽, 단편소설=소나기, 시=진달래꽃, 이런 공식이 생긴 이유는 무엇인가? 적어도 국어교과서에 있었던 소설과 시는 누구나 접한 기억이 있기 때문에 사회에 나와서 본격적으로 문학을 접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청소년기를 함께 보낸 국어교과서의 문학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지리학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배우던 시절의 지리학 교과서가 어렵다거나 따분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어쨌든 지리학은 암기과목이었고, 지리학을 제대로 접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은 평생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지리학이 "지리한" 암기과목이라는 편견은 지리학에게 칭찬이라기보다 저주이다. 나는 지리학과 가장 대조되는 학문을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철학에는 공간성이 없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철학의 목표는 "궁극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기 때문에, 서울과 뉴욕, 베이징, 호치민시 등 모든 공간에서 동등하게 적용되는 원칙을 찾아내려고 한다. 맑스의 자본론은 읽어보면, "자본"이 주어가 되는 문장을 꽤 자주 발견할 수 있는데, 과연 모든 "자본"이 다 맑스가 묘사한 대로 움직일까? 물론 공통적인 속성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공통적 특징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자본이 있을지 모른다. 지리학은 자본을 말하더라도, 어느 지역의 자본인가를 중요하게 여긴다. 서울의 자본과 뉴욕의 자본, 그리고 베이징의 자본은 어떻게 다른가? 지리학에서 자본은 주어가 될 수 없다. 현대국어에서 주어의 자리에는 "사람"이 오기를 권장하고 있고, 그 원칙은 "사람이 행위하고, 사물은 행위하지 못한다."는 철학 위에서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엄밀히 말하면 지리학의 관심사는 서울의 자본을 운영하는 주체와 다른 지역 자본을 운영하는 주체 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관심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이 말하는 암기과목이란, 축적된 지식이 좀처럼 변하지 않는 성격일 때라야만 가능하다. 대표적인 예가 법학이다. 물론 대법원에서는 하루에도 몇 개씩의 판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법 자체는 잘 바뀌지 않는다. 따라서 일단 법을 외워놓으면 쓸모가 많으며, 법학에는 암기가 필수이다.(행여나 법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이 말을 법학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에 반해, 도서관 구석에서 책만 보아서는 지리학을 한다고 말할 수 없다. 본질적으로 지리학은 장소와 공간에 대한 연구이기 때문에, 현장체험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리학이 대상으로 하는 장소는 제한이 없다. 지구에서 가장 작은 어떤 나라에서부터 땅속, 혹은 바닷 속, 심지어는 우주까지 지리학의 연구대상에 포함된다. 최근 발표된 지리학 논문 중 하나는 실제로 화성의 계곡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물론 연구자가 직접 화성을 갔다 온 것은 아니지만, 화성을 찍은 단층사진과 공간분석기법 등을 이용해서 화성의 계곡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그림을 그려볼 수 있었던 것이다. 짐작할 수 있듯이 지리학의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지리학은 거의 모든 학문과 손을 잡을 수 있고, 거의 모든 장소를 연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학문에서 만들어진 이론을 실제 장소와 연관시켜 보다 튼튼한 이론체계로 만들어 주는 것도 지리학의 역할 중에 하나이다. 


 이쯤 되면, "지리학이란 자기 자신의 분야는 없고, 남이 만들어놓은 것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학문이 아니냐?"라는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이 질문은 나도 꽤나 오랫동안 고민해온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지식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좀 깊은 이야기를 나누어볼 필요가 있다. 만약 어떤 학문에서 지식을 생산한다면, 지리학이 그것을 가공한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식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사람들이 어떤 사물의 역사, 특성, 외모 등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을 우리는 지식이라고 말한다. 컴퓨터라는 사물이 있을 때, 진공관이 언제 발명되고, 에니악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들이 지식이다. 그런데 지식은 숱하게 널려있다. 식상한 표현으로, "현대 사회는 복잡화되고 다양화되었기 때문에" 지식의 양은 늘어나고, 사용자는 무슨 지식을 선택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만들어낸 발명품이 바로 이론이다. 가령 피타고라스의 정의를 보자. 직각삼각형에서 직각을 낀 두 변의 길이의 제곱을 합하면, 빗변의 제곱과 같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론인가? a2=b2+c2이라는 간단한 공식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직각삼각형의 특성이 완벽하게 설명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이론"이라고 부르지 않고 "정의"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직각삼각형이란 유클리드 기하학이 정의한 추상적 평면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삼각형은 다소간의 오차를 가지고 있으며, 피타고라스의 정의가 적용된다 하더라도 오차를 무시할 수는 없다.  


 지리학이란 세상을 간단한 원리로 설명하고자 하는 이론과 실제 우리가 맞선 현실 사이의 괴리감을 축소시켜주는 학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같은 의미에서 지리학은 수많은 이론들 사이의 교각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학문적 진실과 일상적 세계와의 화해를 도모하는 학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리학 자체에는 이론이 드물다”는 공격은 별로 강력하지 않아 보인다. 때로는 오케스트라에서 아무런 악기도 연주하지 않는 지휘자가 가장 중요하기도 한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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