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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현 Jul 23. 2018

노회찬의 어록

안타깝게 우리를 떠난 정치인 노회찬을 추모하며

법은 만인 앞에서 평등해야 하는데, 1만명만 평등한 것 아니냐!


노회찬은 항상 웃을 줄 아는 정치인이었다.

상대와 치열하게 싸울 때조차도 그는 좌중을 웃게 만듦으로써

상대를 무장해제 시켰다.

50년 동안 같은 판에다 삼겹살을 구워먹으면 고기가 시꺼매집니다. 판을 갈 때가 왔습니다.

- 이 한마디가 대중들에게 그의 이미지를 강력하게 심어놓었다.


그렇다고 해서 노회찬이 과연 '웃기기만 한' 정치인이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삼성의 X파일을 공개한 정치인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삼성의 X파일에는 떡값검사들의 이름이 들어있었으며, 실명을 공개한 혐의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유죄선고를 받았다.

덕분에 그는 국회의원직에 상실했고, 안철수가 그 자리에서 국회의원을 하게 된다.


말하자면,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따로 있는데, 증거를 공개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은 것이다.

당시 X파일 유출이 불법소지가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그는 공개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를 생각하면 항상 생각나는 토론이 있다.

참여정부 연정제안에 대한 토론으로, 유시민, 김문수, 조기숙, 노회찬이 패널이었다.

특이하게 유시민과 조기숙이 한편, 김문수와 노회찬이 한 편이었다.


아마 토론 역사상 전무후무한 편먹기였을 것이다.

그 영상이 너무 좋아 나는 여러 차례 다시 보았다.


노회찬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연정제안'을 한 것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야당 반대때문에 정책을 못하겠으니 대연정하자는 노무현 전대통령의 제안에 대한 노회찬의 평가이다.

학생이 성적이 낮으면 공부할 생각을 해야지, 성적이 낮으니까 공부 못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


당시 노무현의 무리한 연정 제안에 대해서 했던 노회찬의 일침이었다. 여기에서 당시 "싸가지 없이 바른 말 하기"로 유명했던 유시민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노회찬의원님 말씀 들으면 참 재밌어요. 그런데 이게 그렇게 재밌는 문제가 아니에요.

라고 비꼬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대목은 나중에 정신과의사 정혜신이 "천하의 유시민을 어찌 당하랴마는"이라는 글에서 유시민을 비판하기도 했던 대목이다.

정혜신 역시 유시민의 반박이 적절치 않았다고 지목하면서, "노회찬은 절대 본질을 피하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덧붙이기까지 했을 정도이다.

아무리 그 영상을 다시 돌려보아도, 노회찬이 좀 더 상식에 맞는 이야기를 했다. 적어도 내 귀에는 그랬다.


당시 수석을 맡고 있었던 조기숙 교수는 다소 감정적이었고, 유시민은 당시 김문수를 '파빌로프의 개'라고 표현할 만큼 예의가 없었다.


그 때 상대를 끝까지 웃게 만들면서도 토론을 '재미있게' 이어나가게 한 위인은 바로 노회찬이었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어쩌면 정치인에게 필수덕목이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독이다.


말을 잘하는데 그 사람의 진면목이 가려지기도 하고,

말이 비수가 되어서 돌아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노회찬이 전자였다면,

노무현은 후자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최근에 적폐를 청소하는 것에 대해 정치보복이 아니냐는 JTBC의 인터뷰에서 노회찬은  

청소를 할 때는 청소를 해야지, 청소하는게 먼지에 대한 보복이다. 그렇게 이야기하면 됩니까?


좀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국민의 당이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의 의혹제보 조작사건에 당원 이유미씨의 단독범행이라고 밝히자 뉴스공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름에 냉면집 주인이 "균이 나를 속였다. 대장균 단독 범행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즉 그는 진보정당의 정치인이지만,

필요할 때는 슬쩍슬쩍 민주당의 편을 들어주기도 할 만큼 유연한 정치인이었다.


그 외에도

강북에 루이비통 매장 많이 세우면 강남 되냐? (오세훈과의 토론에서)


그리고 "한나라당은 왜 진보당은 민주당 욕하면서 한나라당에 맞서서 같이 싸우냐, 말이 안된다"고 하자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면 일본하고 사이가 나빠도 지구를 지키기 위해 같이 싸워야 한다.

고 말하기도 했다.


정부가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를 신설하려 하자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니 노회찬의원은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모기들이 반대한다고 에프킬라 안 삽니까?


2017년 9월 6일 김장겸 전 MBC 사장이 곤경에 처하자 자유한국당이 국회일정을 보이콧한데 대해

학교 앞에 자기들이 잘 다니던 분식집 가게 주인이 구청에 소환됐는데 수업을 거부하는 셈

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복지정책을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복지국가를 만들라고 했더니 복지원 국가를 만들었다.


그의 일갈은 하나같이 식상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본질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뼈가 있었다.


사실 이유야 어찌됐든,

사랑했던 정치인을 잃은 슬픔을 조금이라도 달래보려고 시작한 글인데,

그의 어록은 하나씩 살펴보다보니, 외려 웃음이 피식피식 났다.


그러면서 깨닫게 되었다.


좋은 사람은 좋은 영향력을 미친다.

심지어 그 사람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도 말이다.


편안히 잠들기를.

Rest in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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