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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현 Jul 16. 2020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니...

태어나서 가장 슬펐던 일, 가장 기뻤던 일 

이 글은 페이스북에서 페친께서 제안해주신 주제로 작성된 글입니다. 업로드 후, 10일 안에 좋아요 20개가 넘고, 공유 10개가 넘으면 연재할 예정입니다.  


글 써주는 남자에 올라온 난감한 질문

페이스북에 호기심에 "글 써주는 남자"라는  프로젝트를 걸고 페친들에게 "혹시 제가 썼으면 하는 글 있으세요?"라고 여쭤봤는데, 제법 많은 분들이 댓글을 주셨다. 전공에 관한 글도 있었고, 영어공부에 관한 글도 있었다. 

내가 내심 기대한 것은 "부동산 시장 분석 해주세요" 혹은 "파이썬을 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이런 것들이었지만, 페친분들께서는 내 생각을 뛰어 넘는 질문들을 해주셨다. 


그 중에 한 분이 제안한 주제가 바로 이것이다. 

"태어나서 가장 슬펐던 일"과 "가장 기뻤던 일"이다. 이 주제에 대해서 글을 쓰기까지 용기가 필요했다. 왜냐하면, 내 글에서 나라는 캐릭터가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것에 대해서 좀 생각해봐야 했기 때문이다. 


글이란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다. 하지만 자신을 까발리는 도구는 아니다. 

사진가가 자신에 대해서 표현하고 싶다고 가정하자. 자신의 나체 사진을 올리는 것이 과연 자기를 잘 표현하는 것일까? 그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자신이 선택한 옷, 자신이 선택한 모자, 자신이 좋아하는 포즈 등을 표현하는 것, 역시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무엇보다 망설여지는 것은 "가장"이라는 단어였다. 문과출신이지만, 나는 "가장"이라는 말을 쓰려면, 뭔가 수치로 확인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가장 슬펐던 일을 적으려면, 그 일을 떠올리면서 운 횟수라든가, 가장 기뻤던 일이라면, 그것을 떠올리면서 미소지었던 횟수 이러한 정보가 있어야 하지 않나, 이런 의심이 계속 든다.


나 자신에게 반복적으로 물어본다. 

정량적으로 답이 안 나올 때 쓸 수 있는 방법은 "나 자신에게 같은 질문을 계속 물어보는 것"이다. 너 언제 가장 슬펐어? 언제? 사실 수많은 후보가 떠올랐다. 할아버지가 우리 곁을 떠났을 때(할머니, 외할머니 다 떠나셨지만, 유독 할아버지가 떠났을 때 더 많이 영향을 받은 것 같다.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일어난 일이라 그런 것 같다. 당시 내 나이 24살), 내가 아는 유명인(노무현, 신해철, 노회찬)이 떠났을 때, 석사 논문 발표하고 엄청나게 깨졌을 때, 사람들 앞에서 누가 나에게 소리 질러서 창피하고 분했을 때...


생각해보니, 어떤 일을 떠올리면서 실제로 눈물을 흘리고 그것에 대해서 말하고, 심적으로 충격을 받은 것을 "슬픔"이라 정의할 수 있다면, 친인척분들이 세상을 떠났을 때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등졌을 때였던 것 같다. 


* 분명하게 말하지만, 나는 노빠가 아니다. 그가 한 정치적 선택의 일부는 좋아하지만, 어떤 선택은 좋아하지 않는다. 입이 너무 간지럽지만, 여기에서는 정치적 선호에 대해서 다루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슬픈 일이 모두 29살 언저리에 일어났다(할아버지 빼고). 위에서 언급한 사건들이 우연찮게도 정말 2009년 전후에 다 있었던 일이다. 설마 그래서 다들 아홉수 아홉수 하는 건가? 


생각해보니 지금 내 나이가 신문나이로 아홉수...? 꺄앆!


가장 슬펐던 날: 2009년 5월 23일

2009년 5월은 모든 상황이 별로였다. 

내 삶은 아주 일정하고 빡빡했다. 

자존감이 떨어지고, 왜 나는 이것 밖에 못하는가라는 생각을 매일 할 때였다. 


월-금까지 최소 9-10시까지 대학원실에서 연구한다. 주말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대치동 논술학원에 가서 첨삭 일을 했다. 거의 쉬지도 않고 몇 달동안 그렇게 살았다. 휴일은 가난한 대학원생에게 사치일 뿐이었다. 물론 술을 안 먹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지만, 술을 마셔도 아무리 늦어도 아침 9시 이전까지는 연구실 나와서 연구를 시작했다. 


중간발표가 4월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는 처참히 깨졌다. 대학원 생활을 7년 정도 했지만, 내 석사논문처럼 교수님들이 혹독하게 당하는 건 본 적이 없었다. 아마도 내심 남들보다 대단한 것을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충격이 더 컸다. 


나중에 다시 한 번 다루겠지만, 발표는 심리전이다. 상대가 "나 이만큼 잘났어"라는 태도로 말하면, "그래 내가 한 번 짓밟아주지"라는 심리가 발동하게 된다. 대신, "저는 자료도 없고 졸업이 하고 싶은 불쌍한 대학원생입니다"라는 스탠스를 취하면, 그래도 뭐 편하게 집에 갈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도대체 왜 선배들이 저렇게 겸손하다 못해 교수님들을 벌벌 떨면서 대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 날 알게 되었다. 아, 이래서 선배들이 교수님들에게 그렇게 대했던 거였구나. 


아무튼.. 그건 지난 일이고, whatever, 상관 없다.


그래서 충격을 가라앉히고 딱 논문에 매진하고 있는데, 5월 23일 사건이 딱 터진 것이다. 그 때 슬픔과 충격이 아직도 생각난다. 지금도 그 때와 유사했다. 밝혀지지도 않은 "뇌물" 운운하며, 공소권 없음에도 수사를 더 해야 한다고 목에 핏대 세운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 때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공지영의 소설 제목을 항상 떠올렸다. 


출근길에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학생들에게 웃으면서 첨삭강의를 했다. 돌아오는 길에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지금은 아내가 된 당시 여자친구와 이야기 하면서도 "분하다"면서 자주 눈물을 흘렸다. 그 뒤로도 어떤 특정한 사건 때문에 그만큼 두고두고 회상하면서 분하고 슬펐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2009년 5월 23일은 토요일이었다. 나는 그 날도 학원에서 일해야 했다. 돌아오는 길에 갈 곳이 있어 택시를 탔는데, 기사 아저씨가 그렇게 말했다. "오늘 어떤 손님을 태웠는데, 미안하다면서 막 울더라"고 했다. 사실 나도 말은 안했지만, 어둠 속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일 때문에 울었던 횟수나 심적 충격 여러 가지를 고려해보았을 때 그 날이 가장 슬펐던 것 같다. 


가장 기뻤던 날: 모 대학의 합격 소식을 들은 날? 

생각해보니, 20대까지는 어디에 원서를 써서 불합격해본 일이 별로 없었다. 이 때 더 여러 번 깨져봤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가끔 든다. 더 시도해볼 걸.. 더.. 더..


1999년 10월 26일 정도 였던 것 같다. 합격자 발표가 나는 날이었는데, ARS 발표가 1시부터 되기로 되어 있었다. 4교시는 체육시간이었고, 시간은 12시 30분 정도였던 것 같다. 체육을 마치고 올라가는데 누가 나를 붙잡고, "야! 너 합격했대"라고 했다. 그 이후로도 수 많은 축하를 받았다. 생전 얼굴도 잘 모르는 친척들로부터도 전화가 빗발쳤다. 


예전에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자, 어떤 학생이 장난기 품은 얼굴로, "와! 딸이 태어날 때가 아니고 모 대학 합격했을 때?"라면서 놀랐다. 아마 본인도 '딸'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아버지가 밖에서 저렇게 말하면 서운할 것 같다는 감정의 표현처럼 느껴졌다. 


참고로 아이가 세상에 나왔을 때, 그 행복은 10억짜리 아파트를 하나 살 때의 느낌이었던 것 같다. 이자가 부담되면서도 기대가 되면서도 한 없이 아이에 대한 애정이 피어오르던... 반면, 모 대학 합격자 소식을 들은 날 이후의 기분은 페라리 스포츠카를 산 기분이랄까? 와! 쌩 하고 달려봐야지... 행복의 총량으로 보면 당연히 아이가 태어난 기쁨이 크지만, 쌈빡한 충격을 기준으로 본다면 그래도 대학 합격자 발표 소식을 들은 날인 것 같다. 참고로 10억짜리 아파트와 페라리, 둘 다 안 사봤다.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 모두 고생했지만, 어디 혼자 가서 소리지르고 싶을 정도로 기뻤던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 때는 19살이었다. 아홉수...?


과연 그것은 기뻐할 일이었을까 생각해보면, 뭐, 인생이 다들 그렇듯이... 뭐, 그닥이다. 


별 생각 없이 글을 적다보니, 19살 29살 때 인생의 변곡점이 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던 것 같다. 친애하는 모 페친님 덕분에 인생을 회고해본 것 같아 뿌듯하다. 페친님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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