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나답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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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자신감이 있어 보이고 말을 잘하는 한 동기가 있었다. 안경 사이로 항상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던 친구였다. 그녀는 어떤 자리에서든 누가 말을 시키면 어떠한 경우에도 막히지 않고, 엄청난 문장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 모임에서 그녀가 만들었던 문장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이렇게 여러분 앞에 서고 보니, 지난 1년 동안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클리쉐다. 그런데 클리쉐도 그녀의 선명한 발음을 통해서 발음 되면 뭔가 진짜 주마등이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녀가 말할 때는 모든 사람이 그녀에게 집중했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청중을 관찰하는 것을 즐겼다.
귀속말로 다른 친구에게 "쟤는 진짜 말을 잘한다"라고 했더니, 그 친구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심 부러웠다. 어떻게 저렇게 집중이 쏙쏙 되게 말을 잘 할 수 있지? 정정한다. 지금도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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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과방'이라는, 같은 과 학생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잡기장"이라고 표지에 씌여진 노트 한 권이 있었다. 요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인터넷카페 게시판 같은 역할을 했는데,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쓰는 것이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누군가는 노트에 교환일기처럼 자신의 내면을 적었다.
(생각해 보니, 그 때 우리는 글씨체만으로도 누가 썼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종종 "유리 멘탈"이라는 표현을 썼다. 자신은 '외강내유'형(겉은 강해보이지만, 속은 부드럽다)이라며 밖으론 강해보이지만, 내면이 약하다고 했다.
그녀의 글을 읽고 나는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 진짜?
둘, 에이, 설마.
이 쯤 되면, 그녀와 내가 무슨 사이인지 궁금해 하실 분이 계실 것 같다.
그냥 동기 사이였다. 그렇게 친하지도 않고, 그렇게 안 친하지도 않은 그런.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지금보다는 그렇게 친하지도 않고, 그렇게 안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끼리도 내면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하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나이 때문인지 시대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달팽이 껍질 안에 있는 듯, 내면을 들키기 싫어하는 지금의 나와는 좀 많이 달랐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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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그녀가 시험기간이 힘들다면서 푸념을 털어놓았다. 차라리 가만히 있을 걸, 나는 한 마디를 했다.
"에이, 너답지 않게 왜 그래?"
조금 더 친해지고 싶어서 던진 말이었다. 그녀는 대뜸 받아쳤다. 화나지도 않고, 그렇다고 화가 안 나지도 않은 그런 말투였다.
"나 다운 게 뭔데?"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정면으로 받아치는 말에는 대꾸하기가 조금 힘들다. 지금도 그렇다.
"그냥 말도 잘하고, 너 스스로 정리가 잘 되어 있는 것 같아서..."
사실 이렇게 쓰고 있지만, 정확히 어떤 바보 같은 말을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한가지 확실한 건 '바보 같은 말'이었다는 거다.
그 뒤로 특별한 이야기를 더 나눈 것 같지는 않다. 그녀의 말은 "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렇게 '너답다'는 말을 쉽게 쓰냐"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줬다는 생각에 미안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누구 다운 것이란 말을 남에게 하면 안되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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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나다운 것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고 살았다.
사실 남들에게는 "나 다운 것"을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되지만, 나 자신에게는 끊임없이 물어보았어야 할 질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김 아무개씨 다운 것이 뭘까요?"
현실세계에서 아무도 이런 질문을 하지는 않겠지만, 누군가 이렇게 물어본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벌써 여기서부터 막힌다.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나 다운 것"에 대한 힌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인생을 잠깐 돌이켜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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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년 간 세어 보니 세 번의 이직을 했다. 사실 이 세 번의 이직보다도 더 특이한 것은 학위를 받자 마자, 덜컥 전공과 관련 없는 회사에 취직했다는 것이다.
참고로, 나는 국내 희귀한 전공자로서 '지리학 박사'라는 학위를 가지고 있다. '지리학 박사'는 그 가치를 떠나서 희귀한 사람들이다. 여러분 주변에 '지리학 박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잘 해주길 바란다. 외로운 종족들이다.
지리학 박사는 지리학 근처에 있어야 한다는 시선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루 아침에 시장에 나왔다. 그리고 세 번의 이직을 했다.
돌아 돌아 나는 지금 한 대학에서 교육 관련한 연구원 생활을 하고 있다. 나는 왜 이렇게 이직을 많이 했을까? 물론 외부적 요인도 있었다. 흔히 우리가 이력서에 "경영 상의 위기"라고 표기하는 것들. 그러나 "나 다운 것"이 있다면, 그것이 나를 이직하게 하는 요인은 아닐까, 하는 무서운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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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 친구들, 20대 중반에 다들 열심히 살았다. 20대 중반 7개월 동안 훌쩍 여행을 떠났다. 잠깐 갔다 온다고 해놓고 7개월 동안 돌아다녔다.
한 도시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자, 이제 떠나야겠네"하면 짐을 싸서 떠나고, 또 잠시 정착했다가 또 떠나는 생활을 7개월 동안 반복하는 것, 좀 특이한 경험이었다.
한 가지 재밌었던 것은, 처음에 여행 중 만난 사람들에게는 "꼭 연락합시다. 제 연락처는 ***에요."라고 하다가, 나중에 그것이 요식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되어 정말 친해지기 전까지는 연락처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숙련된 여행자는 연락처를 달라고 하지 않는다.
여행 때 만났던 사람들을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만났을 때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세상 멋있어 보였던 형은 노량진 만화방에서 숙식을 해결한다고 했다. 아르바이트 해서 돈을 모아서 아제르바이잔을 한번 가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순간, 나는 내가 그 형처럼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바로 역마살DNA 때문이다.
바로 역마살DNA야 말로 '나 다운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때마다 등골이 서늘해진다. 이뤄놓은 것도 없지만, 지금 내가 가진 것을 다 버리고 또 어디로 훌쩍 떠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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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끔 떠나기를 좋아하는 버릇 때문에 인생이 꼬였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군대 다녀와서 한창 의욕적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 훌쩍 여행을 떠났다. 돌아와서는 다시 방황이 시작되었다.
지리학 바닥에 10년 넘게 있다가 갑자기 떠났다. 그리고 이제 웬만한 그 희귀한 지리학자들 사이에서도 나는 완전히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3번의 직장을 옮기면서 정말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졌다. 아직도 집에는 내가 만난 사람들의 명함이 수북히 쌓여있다. 메뚜기처럼 직무분야를 완전히 뛰어넘으면서, 이제는 도저히 일로는 만날 일이 없게 되었다.
한 직장에서 10년 남짓 일하면서, "예전에 무슨 일 할 때 저 사람을 만났다"라고 인연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 부럽다. 떠나기를 좋아하는 역마살DNA 때문에 나는 과거와 단절되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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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다운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나는 항상 글을 썼다. 글쓰기는 나의 종교이자, 명상이자, 안식이었다.
여행을 다니면서도 항상 노트북을 들고 다니면서 매일 일기를 썼다. 여행할 때 만났던 폴란드 친구가, "너는 여행 와서 학교 온 것처럼 글을 쓴다"고 말할 정도였다.
글 쓰기를 좋아한 덕분에 책도 몇 권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낸 책들 역시 역마살DNA를 잘 보여주듯, 하나는 여행기, 하나는 팟캐스트 제작법, 다른 하나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사용법, 서로 거의 상관이 없어보이는 영역을 다룬다. 심지어 내 전공이라고 하는 지리학과도 별 관련이 없다.
최근에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는데, 글을 쓰는 재주보다 더 좋은 재주는 남이 내 글을 읽게 만드는 재주라는 것이다. 누군가는 30일동안 블로그에 글을 쓰고 부업이 생기고, 새로운 직장을 가지고 돈을 잘 벌어서 퇴사를 했다고 하는데, 고등학교때부터 20년 넘게 어딘가에 꾸준히 글을 써온 내 글은 정처없이 인터넷 공간 어딘가에 떠돌고 있다.
내가 아니라 내 글에 역마살DNA가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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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살DNA라는 용의자는 아직 검거되지 않았다. 하지만 역마살DNA가 공범이라면 아직 주범은 누군지 감 조차 오지 않는다. 역마살DNA라는 말 그대로 DNA가 문제라면, 생물학적인 내 기질이 나를 만든다는 결론에 도달하겠지만, 그러한 방식의 결론에는 도달하고 싶지 않다.
이런 고민을 하다가 11살이 된 나의 딸에게 툭 질문을 던져보았다.
"아빠가 어렸을 때, 여행을 오래 다녀와서 한 곳에 정착을 못하나 봐."
"그래? 얼마나 오래 갔는데?"
"7개월"
"에이~ 엄청 오래 살았으면서 7개월 때문에 그렇게 됐단 말이야?"
마...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겨우 7개월이다. 7개월짜리 여행 덕분에 인생이 바뀐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사실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뭔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그냥 기분 탓이지, 사실 나 말고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오직 바뀐 것이라곤, 내가 여행이 나를 바꾸었다는 '의심'이 생겨났다는 것 뿐이었다.
딸 덕분에 나는 역마살DNA가 내 본질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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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
그것은 좋은 의미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의미일지도 모른다.
왜 나는 이렇게 대단해졌을까? 도대체 어떤 특성과 장점이 있었기에 나는 이렇게 될 수 있었을까?
이런 방식의 질문도 가능하지만, 다음과 같은 질문도 가능하다.
왜 나는 이렇게 밖에 되지 못했을까? 도대체 어떤 특성과 장점 때문에 나는 이렇게 밖에 되지 못했을까?
후자의 생각에 사로잡혀 살 만큼 자존감이 낮아진 사람에게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이라는 질문은 너무 아픈 질문이다. 네가 왜 못난 사람인지를 스스로 증명해 보이라는 의미로 읽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스스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또 사람들도 내 옆에서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아주 가끔씩 조용히 내면을 마주할 때는 어린 아이가 길을 잃고 울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면의 아이가 울고 있을 때, 나는 가만히 있지 않고, 컴퓨터를 켜고 키보드를 두드렸다. 혹은 스마트폰을 켜서 어디엔가에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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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라이터쿠스'
나는 글 쓰는 사람이다.
어렸을 때 꿈이 "글을 써서 먹고 사는 것"이었으니, 알려진 프로페셔널 작가는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조그맣게 꿈을 이루고 사는 셈이다. 아주 가끔씩 나에게 사람들이 비아냥대는 투로 말하기도 한다. "이것 저것 잡다하게 쓰는 것을 좋아한다", 혹은 "쓰기만 좋아하지 팬이 없다"고 한다. 둘 다 맞는 말이다.
고등학교 때는 교환일기에, 대학교 때는 잡기장과 게시판에, 대학원 때는 논문과 레포트를 썼고, 일하면서 보고서를 쓴다. 책을 쓰고, 동시에 소셜미디어에 잡다한 글을 쓰고, 브런치에는 장문의 글을 쓴다. 읽는 사람이 많지 않아도 그냥 쓴다.
글 쓰고 반응이 없으면, 상처 받지 않아요?
이렇게 물어보는 분이 한 분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답변했다.
더 이상 받을 상처도 없어요.
남이 뭐라고 하는 말에 상처 받고, 무관심에 토라질 것 같았으면, 10년, 아니 20년 전쯤에 글쓰기를 중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고 있는 한, 나는 쓴다. 논문 편수로는 동료 학자들에 비해서 부족하고, 작가라고 하기엔 전업 작가에 비해서 턱없이 모자라지만, 나는 쓰고 고친다. 그 글들은 지금 블로그에, 소셜미디어에, 브런치에, 책에, 논문에, 흩어져 있다.
좀 비장하게 말하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나는 쓴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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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다시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하실 분이 있을 것 같다.
'그녀'는 학부 4학년 마치고 곧바로 취업을 했는데, 내가 당시 지원하고자 했던 직군에 있는 회사 중에서도 가장 탑클래스에 있는 회사에 들어갔다.
당시 나는 군대 제대 후, 아르바이트 하면서 공부해야 할 복학생이었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나도 같은 직군을 지원하려고 했기 때문에 넌지시 면접 팁을 좀 달라고 했다.
그 친구는 대답했다.
"동네 어르신 분들과 재밌게 수다 떤다는 생각으로 편안하게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라고 답했다.
그 친구가 면접관 앞에서 말하는 모습이 머릿 속에 그려졌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아마 면접에서 그녀가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면접관들은 그녀의 말에 초집중했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같이 했던 수많은 모임에서 그녀가 말할 때 청중을 보면, 정말 귀신에 홀린 것처럼, 빤히 그녀를 쳐다보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안 되겠구나....
나는 글이나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