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도서관 / 정은주&해랑, <기소영의 친구들>
★ 원래 나 같으면 혼자 고민하지 않고, 소영이에게 문자라도 보내 당장 물어봤을 거다.
'야, 기소영. 우리 절친이니, 아니니?'
그런데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앞으로도, 다시는.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눈을 감아 버렸다. (p.11)
★ 그러나 소영이는 뜬금없이 꾸게 되는 꿈 같았다. 완전히 잊었다 싶었는데, 한마디 말이나 작은 물건 하나가 계기가 되어서 온종일 아이들 사이에 화제가 되곤 했다. (p.63)
★ "미사는 돈을 주고 사는 게 아니야. 그 돈은 하느님께 드리는 봉헌금이야. 성의껏 준비하면 돼."
"그럼, 천 원만 내도 돼?" (p.76)
반장 '채린'이는 일요일 저녁에 엄마로부터 부반장 '기소영'이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국화 꽃다발을 사가면서도 채린이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 당황하는데요. 소영이의 장례식에 학생들이 가지 않도록 교장선생님이 방침을 정하자, 소영과 어울려 다녔던 나리, 연화, 영진은 채린이와 함께 소영이를 애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분신사바, 49재, 미사 등등 다양한 방법을 접해나가는 과정에서 채린이는 친구들과 소영이에 대한 추억을 공유하게 되는데......
정은주 작가님의 소설 <기소영의 친구들>입니다. 살면서 친한 누군가의 죽음을 겪는 일이란, 흔하지 않은 일이면서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어린 나이에 이런 일을 겪는다면, 그 죽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가다듬어야 할지 어려움을 겪을 듯한데요. <기소영의 친구들>에서는 기소영의 죽음을 겪은 친구들이 소영을 애도하기 위해 떠나는 모험을 섬세하게 그려냄으로써, 어린이 독자들에게 죽음과 애도의 과정을 자연스럽게 학습시켜주고 있습니다.
특히 이 작품에서 그려지고 있는 '죽음'은 마냥 어둡지도, 마냥 유쾌하지도 않게 균형감을 유지하며 다뤄지고 있습니다. 마냥 슬픔을 극대화함으로써 읽는 독자를 부담스럽게 하거나, 그렇다고 고인과 너무 거리를 둬서 괴리감을 느끼게 하거나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읽으면서도 이 책을 상당히 매력적으로 느꼈습니다. 이러한 균형감이 있기 때문에 친구의 죽음을 마주하는 아이들의 심리가 좀 더 개연성 있게 그려질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내가 슬픈지 어떤지도 알 수 없었다. 이럴 땐 저절로 눈물이 나야 하지 않나?' (p.8)라는 채린이의 말은, 작품이 '죽음'을 겪은 어린아이들의 감정을 결코 극적으로만 다루려 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또 다른 볼거리는 단순히 채린이라는 화자의 이야기뿐만이 아닌, 기소영과 함께 어울려 다닌 다양한 친구들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되고 있다는 지점입니다. 이 친구들이 소영이를 애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다니며 여러 궁리를 하는 과정은, 소재의 특성상 어두워질 수 있는 작품의 분위기를 한껏 밝게 전환시켜 주는 역할도 동시에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소영이가 천주교 신자라서 49재를 치를 수는 없다는 말에, 나리가 "아니야, 얘들아! 천주교는 제사 다 지내. 우리 고모는 천주교 신자인데, 제사도 지내고 절도 해."(p.71)라고 당차게 대답하는 부분은 아이들의 순수함을 드러내면서도 큰 웃음을 주는 대사였습니다.
이러한 재미있는 대화들이 오가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우정과, 친구를 애도하고 싶다는 진솔한 마음이 잘 드러났습니다. 미사를 드리는 장면에서 봉헌자의 이름에 각자의 이름이 아닌 '기소영의 친구들'이라고 써낸 부분에서는, 성당 사무실의 아저씨가 그것을 보고 "참 좋은 친구들을 뒀네."(p.82)라고 얘기하는 모습이 마치 저의 모습 같았네요. 어른들의 이해타산과는 일절 관련 없이, 그저 순수한 우정으로 죽은 소영이를 애도하고자 하는 마음이 상당히 지켜주고 싶을 정도로 훈훈했습니다. 124면에서 '점심시간쯤엔 끝날 줄 알았던 롤링페이퍼 작업은 마지막 교시까지 이어졌다.'는 묘사에서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지점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술했듯, 소영이의 친구들은 어떻게 해야 진심으로 소영이를 애도할 수 있는지 방법을 찾아나갑니다. 어른들이 으레 하는 여러 방법들을 모방해 보지만, 그것들의 형식적인 면이 잘 와닿지는 않습니다. 초점화자에 해당하는 채린이는 찝찝한 기분을 느끼며, 소영이를 진짜로 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합니다. 다양한 친구들의 서사를 전달하다 보니, 채린의 내적 고민은 좀 갑작스럽다는 인상도 있었습니다만, 어른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고민을 해결해 나가려는 마음가짐은 상당히 인상적으로 남았습니다.
사실 초점화자인 채린이의 감정선은 이 작품을 긍정적으로 읽게 하는 데에 상당 부분 기여를 했는데요. 처음에 소영의 죽음에 대해 채린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꺼내는 말은, 사실 매정하다는 말을 듣더라도 별 수 없을 정도로 차가운 말들 뿐이었습니다. 애도하고 싶고, 슬퍼하고 싶은 마음이 한편에 있는데도, 친구들에게, 또 독자들에게 내비치는 감정은 마치 그것을 숨기듯이 서술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후반부에 나름의 답을 찾고 난 뒤, 채린이는 친구의 죽음에 대해 솔직하게 눈물을 흘릴 수 있게 됩니다. 이후의 독백에서 이제는 '괜찮을 것 같다.'(p.138)고 말하는 채린이를 접한 독자라면, 채린이가 그간 무덤덤하고 태연한 척 행동했을 뿐 사실 '괜찮지 않았던' 상태였음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기소영의 친구들>은 친구의 죽음에 순수하게 슬퍼하지 못하던 채린이 점차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고 후련해지는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냄으로써, 어린이 독자들 또한 친구가 죽고 난 뒤의 감정을 미리 체험할 수 있도록 몰입감을 선사해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 나는 다른 사람의 기억에 살아 있는 소영이를 만나도 괜찮을 것 같다. 웃으면서, 그리워하면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p.138)
이 책은 살면서 언제든 겪을 수 있는 친구의 죽음에 대해, 스스로의 감정을 어떻게 가꾸어 나가야 하는지를 섬세한 애도의 여정을 통해 알려준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어린이들이 스스로의 감정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거나 애써 슬픔을 숨기거나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건네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인상적입니다.
애도하는 모험을 한 차례 끝낸 친구들의 발걸음이 점점 또 괜찮아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나저나 마지막에 가서야 얼굴을 일러스트로 배치하는 구성은 어떤 분께서 생각하셨는지, 이런 섬세한 장치가 참 감탄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