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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여우 Apr 26. 2022

<목소리 순례>, 사이토 하루미치

푸른여우의 냠냠서재 / 빛나는 문장에 담긴 ‘진짜’ 목소리

추천 지수는 ★★★★☆ (9/10점 : 말과 글에서 빛이 반짝반짝)

   ★ 당시 내게, 말이란 쓰고 버리는 일회용이었다. 지금은 안다. 말을 쓰고 버리는 것은 마음을 쓰고 버리는 것이라는 걸. 마음을 쓰고 버리다 보면 점점 터진 곳이 드러난다. (p.17)


   ★ '의미 있지만, 의미 없는 잡담'을 깨끗하게 정리한 다음 건네는 '말'에는 생기가 깃들지 않는다. (p.109)


   ★ 그저 잠만 자는 아직 이름 없는 생명이 작은 공간을 더욱 맑고 깨끗하게 만들었다. (p.256)


   선천적인 감음성 난청을 겪고 있는 저자는 농학교에 진학하여 현재는 사진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청각장애로 인해 겪어왔던 차별과 폭력, 그리고 행복을 발견하기까지 저자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목소리'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서술되고 있는데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과 글'에 대해서 저자는 갈고닦은 문장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들려줍니다.


   ★ 담백하게 담아낸 '들리지 않는' 이야기

   사이토 하루미치의 <목소리 순례>입니다. 처음 읽었을 표지만큼이나 편안하게 읽히는 에세이라는 인상이 강했는데요.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수어의 매력과 그 동작을 담아낸 사진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부드럽게 페이지를 넘길 수 있는 그런 에세이였습니다.

   물론 이야기가 담고 있는 내용들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사진'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자신의 행복을 발견해나가는 저자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담기는 한편, 어려서부터 청각장애를 겪은 저자가 학교와 사회에서 받아야 했던 차별, 그리고 폭력 또한 책에서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결코 가벼운 책은 아닙니다만, 자신의 경험에 대해서 저자는 오히려 담백하게 서술해나감으로써 술술 읽히면서도 가볍지만은 않은 에세이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 '나'의 감정을 따라가며 '말과 글'을 다시 바라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아르바이트를 하던 도중 조리장이 자신을 바라보고 '귀머거리'라는 말을 한 데에 대해 저자가 화를 내지 못하는 부분이었는데요. 저자는 분노를 느끼면서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데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조리장의 말을 처음으로 알아들은 것에 불쾌하게도 '기쁨'을 느'(p.103) 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때 기쁨과 증오가 뒤섞인 복잡한 감정에 대해 독자들은 새롭게 접하게 되며, '나'의 처지가 되어 그 감정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인터넷의 발달로 저자가 의견을 자유롭게 주고받는 과정에서 겪은 일에 대해 언급한 부분도 인상적입니다. 저자는 처음에는 만능감에 빠졌으나, 점차 '주목이 사라지는 걸 쓸쓸해서 참지 못'(p.239)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에 반성하고 실패를 거듭하면서 '진짜 말'이란 텍스트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우리가 한 번쯤 비슷하게 경험해 보았을 사건들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나'의 시선에서 '말과 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것이 가능합니다.


   ★ 빛나는 문장으로 보여주는 새로운 '목소리'

   무엇보다도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목소리', 즉 말과 글에 대한 세계를 저자가 새롭게 고찰하여 서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홋카이도의 설경 속에서 저자가 고요를 '운다'라고 표현한 부분, '소통은 의미 있는 말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p.108)'라, '쓸데없다고 여기곤 하는 잡담이 쌓여야'(p.109) 생기가 깃든다고 이야기하는 부분, 여러 대화 끝에 '진짜 말'에 대해 자신 나름의 결론에 다다르는 부분(p.123), '정적만큼 소리로 가득한 것이 없었다'(p.216)고 표현하는 부분 등 서평에 다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빛나는 문장들이 많았습니다. '들리지 않는 사람'으로서 저자가 자신만의 관점에서 새롭게 '목소리'를 낸 이 책은, '들을 수 있는' 사람이지만 여태껏 '생각하지 않은' 우리들에게 좀 더 큰 울림을 선사합니다. 이에 대해 저자가 자신에 대해 서술한 부분은 참으로 인상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이란 행동이나 자연현상처럼 말이 없는 침묵 속에서 번뜩인 무언가를 '목소리'로 들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 (p.91)


   ★ 내게 가장 기쁜 순간은 다양한 존재들과 만나서 '귀가 듣지 못하니, 이야기를 나눌 수 없어.'라는 소극적인 생각을 가볍게 뛰어넘는 '목소리'를 알게 될 때였다. (p.282)

   이해, 공감, 이런 단어들에 대해서는 언제나 주의해서 사용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타인에 대해 알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거든요. 이 책을 읽고 나서 저는 '들리지 않는 것'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또한 '진짜 말과 글'에 대해 많은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고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만을 주제로 삼은 책은 아닙니다. 오히려 저자가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말과 글'이야말로 이 책의 주제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도 쉴 새 없이 대화하는 우리들에게, 갈고닦은 문장으로 쓰인 이 책은 담백한 맛을 간직하면서도 독자에게 보다 큰 울림을 선사해 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꼭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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