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같은 삶 Mar 08. 2020

영화 '기생충'이 불쾌하지만 훌륭한 이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과 칸 영화제에서 연달아 상을 받았다. 완벽한 만듦새와 각본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꼽은 이유는 대중성과 예술성 사이의 줄다리기를 훌륭하게 해결했다는 점이다. 말하려는 주제(빈부격차, 양극화)가 선명하지만, 관객이 이 메시지를 프로토콜대로(약자에게 감정 이입) 처리하려는 순간 균열을 낸다.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주제의식을 드러내나 싶더니 어느 순간 선악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겠는데, 누굴 탓해야 하는 건지, 누가 나쁘다는 건지 모호한 채 끝이 난다. 영화가 끝나고도 뒷맛이 한참 동안이나 씁쓸하다. 누군가를 대상으로 감정을 쉽게 배설할 여지를 주지 않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영화적 상상력은 극대화 된다. 

줄거리를 쫓다 보면 기택(송강호)네 가족은 주인공이지만 결코 이입하기 쉬운 인물들은 아니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갑'을 상대로 지어내는 거짓말, '을'을 내치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병'이자, 더 밑의 존재인 '정'이 내미는 도움의 손길은 차갑게 외면하는 인물들이다. 부자인 박사장네 가족은 어떤가, 어수룩 세상 물정 모르는 연교(조여정)는 기우에게 속아 기택네 일가족을 자신의 집에 들인다(주말에 파티에 부르면서 과외수당에 주말수당까지 다 쳐준다.. 갑질이 일상인 요즘 기준으로 보면 매우 훌륭한 갑 되시겠다). 연교 딸 다예는 기우(최우식)를 사랑하게 되고, 아들 다송은 기정(박소담)을 친누나보다 따르게 된다. 박사장(이선균) 역시 젠틀한 사업가다. 이 영화에서 이 가족은, 말미의 방송뉴스에서 묘사 되듯 피해자에 가깝다.



전형적인 선악 구도를 전복시키는 설정 속에  부지불식 간에 박사장네서 배어나오는 대사나 표정은 그래서 더 섬뜩하다. 계획대로 일이 풀리자 들뜬 기택이, 실수로 처음 선을 넘는 질문("사모님 사랑하시죠?")을 했을 때 박사장이 짓는 표정,  차 뒷자리에 앉은 연교가 기택의 냄새 때문에 창문을 내리면서 보이는 태도, "일하는 사람이 선을 넘는 걸 아주 싫어해요", "사람은 선을 지키는데, 자꾸 냄새로 선을 넘잖아", "지하철 타는 사람들한테 나는 냄새가 나"... 극중 누구에게도 폐를, 해를 끼치지 않는 '쿨하고 심플'한 사람들의 입에서 악의 없이 이런 대사가 흘러 나온다. 


영화 내내 기생충 같은 모습을 보이는 기택네 가족은, 반면에 대사로 진한 페이소스를 자아낸다. 자신들 때문에 잘린 윤 기사를 걱정하는 기택을 나무라는 기정, "이 집 만큼 부자면 난 훨씬 더 착할 수 있다"는 충숙. 계획과 실패가 반복되는 삶일 바에야 무계획을 계획인 셈 치고 사는 게 낫다는 궤변에 가까운 논리를 펴는 기택. 쿨하고 심플한 태도는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의 전유물일 뿐, 삶의 저변으로 밀려날수록 구구한 변명과 해명을 풀어놓을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걸 기택네는 대사로 보여준다.  완벽한 연기와 디테일한 연출이 어우러지면서 듣는 사람이 도저히 공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상황은 부조리한데 영화를 보는 내내 누구에게 맘 놓고 이입할 수도, 누구를 맘 놓고 미워할 수도 없다. 관객의 불쾌감은 갈 곳을 잃는다. 발산되지 못하고 응축된 불쾌감은 영화가 끝나고 내용을 곱씹으며 더욱 진해진다. 이 영화를 돋보이게 하는 예술성이자, 묘미이기도 하겠다.



빈부격차라는 주제를 드러낼 때도 감각을 활용한 은유적 접근을 한다. 관객의 감정 이입을 노골적으로 강요하지 않는다. 많은 곳에서 언급됐지만 이 영화는 대표적으로 물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다. 물은 부드러움과 모성, 속죄, 순결, 파괴력(하강)과 같은 여러 가지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여기선 계급에 따라 물의 그 속성마저 다르게 향유된다는 걸 영화적으로 연출한다. 



높은 곳에 있는 박사장네 집에서 물이란 '순결'과 '부드러움'의 상징이다. 최고급 냉장고에 정갈하게 꽂혀 있는 노르웨이산 생수, 박사장네가 없을 때 기정이 즐기는 거품 목욕 같은 장면이다. 기택네가 빈 박사장네 집을 차지할 때 카메라가 가장 먼저 담는 건 "물 필요한 사람 없냐"며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드는 기우와 거품목욕을 하는 기정의 모습이다. 이때 기택네는 잠시나마 물을 컨트롤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극 중후반부 쏟아지는 비 역시 박사장네에겐 미세먼지를 쓸어 보내주는 '정화'의 상징이다. 



반면, 기택네에게 물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파괴적인 존재다. 영화에서 도드라지게 묘사한 계단 씬. 윗동네에서 울컥울컥 쏟아져 내리는 물을 도저히 피할 도리 없이 무기력하게  맞고 있는 기우의 운동화 클로즈업 씬이 대표적이다. 물에 잠긴 아랫동네 부감 씬과 똥물 뿜어내는 변기에서 기정이 담배를 피는 씬은 영화의 주제를 물의 이미지를 빌려 너무나 영화적으로 그려낸 아름다운 장면이다. 거대한 장대비 뿐 아니라 기택네는 취객의 소변줄기에도 속수무책이다. 참다 못한 기택이 취객에게 물 한바가지를 퍼붓지만, 그 마저도 취객이 아닌 기우의 얼굴로 쏟아진다. 영화는 박사장네와 기택네를 차례로 보여주면서 물의 상승과 하강의 이미지를 절묘하게 교차시킨다.


기생충이 가진 또 하나의 미덕은 자신이 놓인 곳에 따라 영화적 해석의 여지가 다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질서 안에 안착한 사람과, 질서 밖에서 부유하는 사람에겐 공감 가는 대사와 인물, 마음에 남는 장면들이 다 다를 수밖에 없게 연출 돼 있다. 선악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상상력의 외연이 확장된 덕분이기도 하겠다. 고백컨대 질서 순응적인 나로 말하자면, 기택네의 행동이 시종일관 불편하고 불편하고 또 불편하다가, 문광네의 절박함을 약자의 뻔뻔함으로 독해하다가, 끝내는 박사장네를 옹호하는데도 실패하면서 씁쓸한 뒷맛만 한바가지 먹고 영화관을 나섰다. 


많은 면에서 훌륭한 이 영화를 나는 당분간은 다시 볼 엄두가 나지는 않을 것 같다. 

(19년 6월 3일 작성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