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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같은 삶 Mar 08. 2020

배움의 발견, '학대 아닌 학대 이야기'

학대에는 흑과 백만 있는 게 아니다.

흔히들 생각하는 소주병을 들고 죽일 듯이 때리겠다고 설쳐 대는 부모나, 지하철역에서 앵벌이를 시키는 부모 같은 사례는 현실에서는 쉽게 보기 힘들다.

현실에서는 학대인 듯 아닌 듯 흑과 백 사이의 회색지대에 위치한 경우가 훨씬 많다.


한참 자라나는 아이에게 새벽까지 잠 안 재우고 강제로 공부를 시키는 건, 

원하는 점수를 받아 오지 않았다고 밥을 굶기거나 때리는 건 학대일까 아닐까.

부모가 원하는 직업을 초등학생 때부터 강제하는 경우는,

본인 스스로 가치관과 세계관을 정립하기 전 특정 성별로서의 정체성을 강요하거나, 특정 종교에 대한 헌신을 종용하는 경우는 어떨까.

대부분의 가정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지만 "사랑하기 때문"이란 이름으로 용인되고, 용서되고, 후에는 "이렇게 해준 부모 덕에 성공했다"며 미화되는 일들이다. 때문에 밖으론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학대인 듯 학대 아닌 학대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맘놓고 부모를 증오하고 미워할 수도 없어 자녀가 스스로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여기고 스스로를 상처 입히는 경우도 많다. "성공하려면 쉬지 않고 공부해야 한다"는 부모의 논리를 체화해 성인이 되어서도 끊임없이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한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이뤄지는 학대가 그래서 제일 무섭다.

이 책에 나오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나오는 학대는 '회색지대'라고 하기엔 다소 극단적 사례로 보이지만 어쨌든 가족들이 서로를 사랑한다는 점에선, 그리고 부모 입장에서 '옳은' 방향으로 자식을 기르려고 한다는 점에선 여전히 회색지대에 놓여 있는 학대다.


때문에 주인공도 가족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삶을 꾸리는 과정에서 가족을 배신했다는 자괴감과 자신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열패감에, 어렸을 때부터 주입 받았던 사이비 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랜 시간 분투하고 괴로워한다. 소설이나 드라마가 아니라, 직접 겪은 일을 묘사하는 만큼 주인공의 괴로움이 너무나 손에 잡힐 듯 해서, 그 학대의 현장이 눈 앞에 그려지는 듯 해서 심장이 너무 빨리 뛰는듯한 기분에 여러 번 책장을 덮고 심호흡을 해야 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기까지의 고통스러운 여정을 500페이지에 담았다. 오바마 전 미국대통령, 빌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의 추천 도서다. 읽는 동안 주인공의 삶을 한번 살고 온 것 같다. 주인공은 남은 가족들과 끝내 화해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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