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딱지 같은 나의 일상
세희의 하루
“어느새 빗물이 내 발목에 고이고.”
“참았던 눈물이 내 눈가에 고이고. I cry.”
알람을 들으며 눈을 뜨는 아침은 어제처럼 힘들다.
그나마 감성적인 목소리의 좋아하는 곡을 들으며 깨어나지만..
세희는 핸드폰의 날짜를 확인하며 오늘이 화요일이라는 것을 보고 한숨이 나온다.
세안을 하고 출근 준비를 마친 후 집을 나섰다.
7월의 공기는 후텁지근하다.
6년. 벌써 이렇게 시간이 지났구나.
여러 계절을 지나오며 이렇게 똑같은 골목을 지나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큰길가의 건물에 들어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큰 기복은 없는 직장이 그나마 고맙다.
그치만.. 난 그 사이에 나의 시간들을 잃어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걸까?
6년이라는 시간동안 난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퇴근을 했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누워서 뉴스를 보며 깜박 졸기도 하였다.
늦은 시간에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한 후에 핸드폰을 보며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팔로우한 사람들의 게시물을 보고 있으면 한 시간이 금방 지난다.
익숙한 디제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친구삼아서 자려고 자리에 누웠다. 내 베개 한쪽 작은 양 인형에 손을 올리고 “순둥아, 잘 자”이야기 하고 눈을 감았다.
나의 하루는 이렇게 지나간다.
그런 하루, 하루들이 모여서..
난 나이만 먹었다.
무의미하고 지루하며 하찮은 나의 하루에, 그 언제 설레이며 가슴이 뛴 적이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난 마음의 상처가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 상처는 보이지 않았고 타인이 알지 못했지만
나는 내 상처가 잘 보였다.
그 상처를 감추려고 하였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에 새살이 차오르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빨리 딱지가 생기기만을 바랬다.
나는 나의 상처를 돌보지 못했고 그 아픔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상처에 또 다른 상처가.
그리고 딱딱한 딱지가 생긴 나의 마음은 감정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미리 나에게 상처를 줄 것처럼 보이면 난 막아냈고.
점점 딱딱하게 굳어지는 나의 상처딱지는 무감각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보내는 나를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나에게도 꿈이 있었을까?
이렇게 살아가는 것 말고 지금과는 다른 삶을 욕심내어 볼 수도 있었을까?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물음표는 답이 없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보다 나 자신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나다.
이 세상에서 나만큼 나를 사랑해주는 존재는 없으며 나를 이해해주는 존재도 없다.
나는 나를 보호했고,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외로웠다.
외가쪽 친척언니가 놀러 온건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이었다.
지금 터미널이니 한 시간 후에 우리집으로 바로 오겠다는 언니의 톡을 보며 살짝 기분이 들떴다.
금요일 오후 사장님은 이미 퇴근하였고 박부장님이 남아 있다.
시계가 오후 6시를 가리키는 것을 보고 세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응 그래. 수고 했어”
형식적인 짧은 이야기를 나누고 사무실을 나서는 세희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미진언니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고 우리는 샐러드 바가 있는 샤브샤브 가게에 갔다. 야채들을 먼저 넣어서 살짝 익힌 후에 먹으며 수다를 떠는 우리는 즐거웠다.
너무 많이 먹었나보다.
배가 빵빵한 기분이다.
커피로 입가심을 하며 종이컵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오늘 자고 내일 점심때쯤 내려간다는 언니가 곁에 있어서 좋았다.
그날 밤 작은 나의 방에 이불을 한 채 더 꺼내어 깔았다.
친언니인 소윤언니가 결혼 한 후 몇 년째 혼자 쓰던 방이었다.
미진언니와 베개를 나란히 하고 누워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희는 결혼은 안하니?”
“....”
“결혼하면 좋은점도 있고 나쁜점도 있는 것 같아.”
“그런데 내 새끼들이 있는 게 가장 좋아.”
핸드폰을 꺼내어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주는 미진언니는 밝게 웃는 모습이다.
세희는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 한다.
“나는 그 누군가가.. 이렇게 곁에 나란히 누워있었으면 좋겠어.”
“그 사람의 낮고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팔베개에 머리를 기대고 싶어.”
“좋은 사람 만날 거야”
“좋은 인연이 나타났으면 좋겠다!”
“우리 세희도 결혼해서 이쁜 아이들 낳고, 나중에 우리 어릴 때처럼 형제계하면 좋겠다.”
“그럼 애들끼리 크면서 서로 얼마나 챙기고 재밌게 놀까?”
“우리도 어릴 때 재밌었는데”
“응~”
가만히 웃으며 미진이 언니의 머리칼을 만지작거린다.
그 밤.
세희는 꿈속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큰 소리로 웃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유년시절의 모습이었다.
외가 친척 아이들이 모여 있었고 동휘 오빠는 자신의 동네에서 뭔가 재밌는 일을 알려주기 위해서 아이들을 몰고 다녔다.
큰 개울가에 짓고 있는 다리위로 가보기도 하고, 덤불속을 헤치며 산길을 걸어보기도 하였다. 바다 가까이에 띄워놓은 수확을 마친 짚더미 위를 뛰어보며 세희와 어린 동생들은 무서워하고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하였다.
꿈속에서 세희는 그 작은 몸집의 아이로 되돌아간 것만 같았다.
나에게 호의적인 우리 친척들.
놀이할 때 나는 깍두기.
숨이 차게 뛰고 신나게 이야기하고 큰 소리로 웃었다.
지금은 마음안의 돌덩이를 가지고 살아가는 세희의 현실이지만 어릴 땐 보드랍고 말랑말랑한 연약한 피부를 가진 자신을 내보일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었다.
크게 두렵지 않았다.
상처가 나면 쉽게 치료약을 바르고 다시 웃었으니까.
그때는 내 마음 안에 축적된 상처가 크지 않았나보다.
어린시절의 자유로움이 그립다.
미진이 언니가 돌아 간 후..
주말 동안 세희는 내내 잠을 잤다.
자유롭고 하늘을 날 것 같은 꿈을 꾸고 싶었다.
유년시절.
그 반짝이고 설레이던 기억들을 다시 마음 안에 가득 채우고 싶다.
하지만 행복한 꿈을 꾸지는 못했다.
그저 머리가 아팠고 연달아 생수를 마셔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