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어린날들
가족 안에서
어린시절의 세희는 쉽게 상처 받는 샌드위치 아이였다.
공부를 곧잘 하는 언니와 우리집의 아들인 남동생의 사이에서 있으나 마나한 존재의 중간아이.
다른 집의 샌드위치 아이들이 모두 같지는 않겠지만.
세희의 집은 편애가 심한 집이었다.
일상생활의 아주 작은 것들에서 상처받고 아파하기를 반복하였다.
마음을 기댈 곳이 없이 옥상의 난간에서 잠자리를 잡다가‘이대로 떨어져서 죽어버릴까?’생각하기도 하였다.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다. 다 잊어버리고 이대로 떨어지면 모든 게 완벽할 것만 같았다. 어떤 힘이 그 아이를 붙잡았던 걸까? 아니면 아픈 삶의 시작점 이었을까?
그 이후 상처는 커져갔다. 가끔 그 순간을 떠올리며 후회를 하기도 했다.
마음안의 상처는 숨겨졌다.
밖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그저 마음 안에서 곪아져갔다.
언젠가는 언니와 남동생만 받은 새 옷을 보며 속상한 마음과 위로받을 마음에 큰 소리로 울었다. 엉엉 우는 그녀는 혼자였다. 두 시간여를 울었을까?
그녀의 엄마는 “기집애가 독하네”라는 표현으로 그녀를 단정 지었고 위로 따위, 토닥이는 손길 따위. 세희가 기대한 어떠한 위로도 없이 그저 혼자서 눈물을 그치려 빠르게 숨을 고르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상 속에 슬픈 자신을 적응 시켜야 했다.
그녀도 남동생이 태어나기 전에는 나름대로 사랑을 받았다.
언니와 나.
나는 막내였다.
아침이면 밥을 한 수저라도 더 먹이려 애를 쓰던 그녀의 엄마.
어린이 대공원이라도 놀러가는 날이면 품에서 놓지 않고 안아주었던 그녀의 아빠.
나중에 생각해보면 그때는 그녀의 언니가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세희는 그런 언니를 보면 마음이 아파서 저도 모르게 혼자서 걷는 언니의 곁으로 가서 일부러 손가락을 스치며 걷기도 하였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세희의 마음과는 다르게 소윤이는 “부딪히지마!”
소리치며 빠른 걸음으로 앞을 보며 가버렸다.
세희의 생각과는 다른 가족의 모습에 그 아이는 혼란스러움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렇게 차갑기도 한 언니였지만, 가끔은 살뜰히 동생을 챙기기도 하였다.
외가쪽 친척들은 형제계를 하였다.
매년 겨울이 되면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서로의 집에 모여 몇 일을 보냈다.
엄마의 고향인 목포에서 살고 있는 큰 외삼촌의 집에 갔던 그해 겨울.
서울에서 목포까지 내려가는 차 안에서 세희는 역시나 심한 멀미를 하였다.
엄마와 아빠는 다른 차로 이동을 하여서 곁에 없었다.
소윤이는 세희가 가슴을 두드리며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가방 안에 있던 검은색 비닐봉지를 꺼내었다.
그녀의 턱 아래쪽에 봉지를 대주며 등을 두드려 주었던 언니었다.
울컥 울컥 오전에 먹은 음식을 모두 토하고도 한참을 게워내는 검은 비닐에는 시큼한 냄새와 뜨끈한 느낌이 있었다.
검은 비닐을 꼭 묶어서 다른 비닐에 한번 더 넣고 다시 묶었다.
다음 휴게소에 도착할 때까지 소윤이의 한 손에는 검은 비닐이 들려있었다.
언니는 의젓하고 야무졌다. 하지만 언니도 가끔은 외로웠을 것이다.
세희가 남동생이 태어난 후에 느꼈던 외로움들을 그전에는 소윤이가 느꼈을 것이라고 언니의 감정을 짐작해 보았다.
엄마 껌딱지이던 세희는 엄마와 떨어져 있으면 불안해하며 내내 엄마를 찾았다. 하루 온종일 곁에 같이 있던 엄마였지만 언제부터인가 밖에 자주 나가며 언니와 함께 놀고 있으라고 하였다.
새우깡 한봉지와 빵빠레만 있으면 세희와 소윤이는 둘만의 작은 파티를 열었다.
대청마루에 앉아서 마당의 분꽃을 보며 조잘조잘 노래를 불렀고 빵빠레를 모두 먹은 후에는 새우깡으로 병원 놀이를 하였다.
새우깡을 잘게 조각내어서 가루약을 만들고 의사와 환자 역할을 하며 약을 처방해 주기도 하였다.
새우깡 한봉지로 몇 시간이고 놀이를 하던 자매의 여름날은 맑은 기억이었다.
그즈음 엄마는 교회를 열심히 다녔고 신도들의 집으로 다니던 구역예배에 빠지지 않았다.
언젠가 세희의 집으로 구역예배 오신 아주머니들은 성경책과 찬송가책을 가지런하게 곁에 두었다.
무릎을 꿇고 앉아서 손을 모으고 주기도문을 외웠다.
고운 목소리를 내며 찬송가를 부르고 성경의 말씀 구절을 함께 소리 내어 읽고 그 의미를 이야기 나누었고 세희의 어머니는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미리 준비한 빵과 음료를 내었다.
서로 덕담을 나누는 가운데..
기도 제목을 이야기하며 볼을 붉히는 세희 어머니는 꿈 이야기를 하였다.
개울이 흐르는 산속에서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예쁘고 큰 과일을 주었고 그 과일을 소중하게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자.
기도를 이끌던 아주머니가“아멘”이라고 소리 내었다.
모두가 입을 모아서 “아멘” 표현하며 하나님께서 크게 될 건강한 아이를 주실 거라는 태몽이라고 말하였다.
세희의 눈에는 그 모습이 성스럽고 아름답게 느껴졌지만 엄마의 관심과 자신에게 쏟아지던 사랑이 자신을 비켜가고 있다는 걸 조금은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