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직장에세이에서 썼던 글을 보면 가장 많이 드러나는 감정이 무엇일까? 나는 망설임이 보인다. 회사를 다니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고, 그것이 태도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람인, 잡코리아, 알바몬 어플을 깔아두고 검색은 계속 해보지만 몸은 출근을 하러간다. 내가 왜 회사를 다니고 있지? 라는 물음은 나를 더욱 '현타'로 데리고 갈 뿐이어서 "이 회사를 다니면서 내가 무엇을 배웠더라?"하고 상기시켜본다. 돌이켜보면 나는 글쓰는 일을 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인터뷰하는 것이 좋고, 그 이야기를 세상에 내보이는 것이 좋았다. 선한 영향력이라고 할까. 막연하게 기자를 꿈꾸다가 정말 기자가 되었는데 내가 생각한 라이프스타일과 전혀 맞지 않았다. 일은 정말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약 3주간 백수의 시간을 보냈을까. 엄마의 눈치가 보여 다시 일을 찾다가 발견한 곳이 여기였다. 처음에는 아르바이트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정직원이 되어있었다. 처음에는 몇 개월만 하고 그만두려고 했는데, 여기 그만두면 당장 어디서 일을 구하겠나 싶었다. 하던대로 하면 되지, 별일 있겠나 싶어서 계속 근무를 하다 몇 번의 "퇴사할까?"의 고비를 넘기고, 이제 좀 손에 익었다 싶은 이때, 현타가 찾아온 것이다.
아직은 이른가 싶다가도, 여기서 뭐하고 있는가 싶어지면 사람인을 뒤적거린다. 도전해보고 싶은 직무를 스크랩 해놓고선 바라만 보게 된다. 그렇게 망설임의 시간만 길어지던 어느 날, 모든 것이 명확해지는 사건이 있었다. 이 회사를 다닌 이래 처음으로 욕을 들은 것이다. 무슨 일로 욕을 먹게 되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적지 않을 것이지만, 결국은 회사도 사람들이 모인 곳이고 각자의 이해관계와 성향, 처한 상황까지 모든 것이 다르기 때문에 그 부분을 생각해보면 이해할 법도 하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이해못할 것도 없다 싶었다. 그렇지만 그 이후로 '이럴까, 저럴까?'했던 마음은 '이거다!'로 바뀌었다. 마치 바람에 낡은 표지판이 갈피를 못잡고 방향키를 계속해서 바꾸듯, 갈대같았던 마음에 '바로 이 길이야!'라고 명확한 길을 가리키는 것 같았다.
회사를 다니면서 사실 욕먹는 일은 부지기수일 것이다. 지금까지 욕 안 먹고 회사 다녔던 것이 어쩌면 기적같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멘탈이 두부같았던 나는 초반에 그런 일이 있었다면 당장 퇴사를 했겠지만 나름 버티며 다니다가 드디어(!) 그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차분해지려고 했지만 마음은 놀랐어서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이 올라왔다. 이러한 생각을 내 어찌할 수 없어서 그럴 수 있다고 스스로 다독이다가 드라마 미생 중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자원팀 안영이가 하대리의 지시를 받고 비료포대 운반을 미리 부탁하려고 지방에 간 상황이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니 웬걸, 운반해주어야 할 분들이 파업상태였다. 이 상황을 보고하고 난뒤 안영이는 어떻게든 일을 이루기 위해 공사장 내 작은 트럭을 빌려 몇 번을 오가며 비료포대를 날랐다. 밤 12시가 다 된 시각에도 안영이가 보고도 없고 복귀도 안 하자 하대리는 전화를 했고 상황을 듣자마자 안영이에게 쌍욕을 날렸다.
멘탈 바사삭된 표정의 안영이.. 전에도 봤던 장면인데 괜히 눈물이 주륵주륵 흘렀다. 근 몇개월동안 망설임의 시간을 가지면서 충분히 생각했다. 그리고 결단을 해야될 때가 온 것 같았다. 결단 전, 망설였던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나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여기저기 깨지고 아파할까봐. 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은 내 머릿속의 바리게이트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다, 연습하는 것이고 시행착오를 겪는 것일 뿐이다. 사실 이 회사에서 새로운 업무 맡기도 두려워했었다. 그 이유도 내가 지킴받지 못할까봐, 괜히 새로운 일 했다가 감당 못할까봐 등등.. 계속 그 자리에 고인물처럼 있는 것도 어쩌면 내가 자초할 일이었다. 이제 새로운 바람이 필요해졌다. 그리고 쌍욕을 먹더라도, 새 과업에 도전해야할지라도 해보고 싶었던 직무에서 그런 경험들을 하고 싶었다.
다음 스탭을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했다. 사람인을 검색하다가 여러가지 공고를 보며 '여기 가고 싶은데, 경력이 없군....'하는 생각에 급슬퍼지기도 하고, 언제쯤 이런 이름 들어본 회사에서 멋지게 일할 수 있을까 싶은데 현실은 구리군 싶기도 했다. 하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다시 스스로를 다독인다.
세상에 회사는 참 많은데, 내가 갈 곳이 없고 굶어죽을까봐 걱정하는가 싶었다. 일단은 움직이자고 생각했다. 생각만으로 그치지 말고 행동해야 한다. 독립을 결심하고서 집을 구할 때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독립해서 멋지게 사는 것만 꿈꾸고 그 과정에 뛰어들었다가 그 지난한 과정에 지치고 마는 것이다. 세상에 집은 이렇게 많은데 내집이 있긴 한건가? 싶기도 하고 말이다. 내 현실을 직시하기보다 더 좋은 조건을 찾다가 가랑이 찢어지기도 한다. 그 지난한 과정에 지쳐서 섣부른 판단을 내렸다가 후회하기도 한다. 무엇을 했든 내 선택이다. 하지만 모르고, 경험이 부족하니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배우면 되는 것이다. 그런 경험치가 쌓이고 쌓여 감각이 되는 것이고 내공이 된다.
나도 조급해하지 않고, 차근차근히 시작해 보는 거다. 헤쳐나가야 할 것들을 하나씩 찬찬히 보면서 성실하게 임해보는 것이다. 타인을 보면 쉽게 쉽게 하는 것만 같은데 나만 이렇게 느리고 역량이 부족한가? 싶지만 각자의 속도가 있는 법이다. 내 페이스 잃지 않고 그저 내 길을 걸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