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돈을 모아, 이탈리아 피렌체의 한적한 오후.
햇살이 머무는 야외 카페에 앉아, 천천히 식어가는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말없이 여유를 음미하는 그런 순간을 상상해본다.
마음이 일렁이는 그 장면 하나로도 가슴이 따뜻해진다.
우연히 보게 된 예능 프로그램에서 피렌체가 배경으로 나왔고, 나는 다시금 그 꿈을 떠올렸다.
하지만 화면 속 피렌체는 내 마음속 피렌체와는 많이 달랐다.
출연자들은 커피를 후다닥 마신 뒤,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숨 돌릴 틈조차 없어 보였다.
나라가 넓고 시간은 부족하고, 눈앞엔 놓치기 아까운 풍경이 가득했으니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문득, 그곳에 서 있는 ‘나’를 상상했다.
오랜 시간 품어온 꿈이었지만, 정작 그 순간에도 나는 휴식을 뒤로 미룬 채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 속에서도 나는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나는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택했지만, 정작 그 여행에서도 ‘돌아갈 시간’에 쫓기듯 모든 것을 서둘러야 하는 나였다.
그건 아마도 ‘모처럼’이라는 단어에 담긴 아쉬움과,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 나의 성정이 빚어낸 결과였을 것이다.
숨을 크게 쉬며, 다시 생각해본다.
내가 피렌체에 기대하는 것.
1. 시간에 쫓기듯 식사와 커피를 미션처럼 해치우지 않기
2. 잘 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용기를 얻는 것
3. 따사로운 햇살을 온전히 느끼며, 마음 깊이 여유를 누리는 것
4.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분히 만족스러운 휴식
이 소박하고도 단단한 바람을 가장 잘 담고 있는 곳은, 멀리 있는 도시가 아니었다.
바로, 부모님이 계신 ‘본가’였다.
그곳에서는 아침 먹으라고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에
“안 먹어”라며 투정 부리고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들 수도 있다.
그건 게으름이 아닌, 허락된 안도이자 사랑이다.
향긋한 커피 향 대신, 봄나물이 숨이 죽도록 무쳐지고, 진한 참기름 향이 밥상 가득 퍼진다.
멋진 야외 테이블 대신, 오래되고 낡은 짙은 초콜릿색 좌식 식탁이 자리하고 있지만
그 위엔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손길이 차려낸 따뜻한 한 끼가 기다리고 있다.
베이글 대신 알록달록한 잡곡밥이 산처럼 쌓여 있고,
그 식탁 앞에 앉은 나는 결코 이방인이 아니다.
그 누구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 오롯이 나를 위한 자리이기에.
혹여 내가 삐죽거리며 외면하려 해도, 다리를 끌어 앉혀줄 그런 집. 그런 식탁.
부모님의 손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창문은 자주 열려 햇살이 방 안을 가득 채운다.
햇살을 머금은 이불 속에서 깨어날 때, 나는 누구보다 따뜻하게 햇살을 느낄 것이다.
내가 해야 할 빨래나 설거지는 이미 끝나 있을 것이고,
온전한 쉼 끝에 잔소리가 귀에 가득 차 한숨이 새어나올 무렵이면
“차라리 회사가 낫겠네” 싶은 마음으로 다시 일상을 꿈꾸게 될지도 모른다.
이보다 더 완벽한 피렌체가 또 어디 있을까.
피렌체까지 가려면 17시간의 비행, 비싼 숙소와 항공료를 포함해 300만 원은 훌쩍 넘을 것이다.
하지만 나만을 위한 피렌체는 길어야 5시간 남짓,
부모님께 드릴 용돈과 차비를 모두 합쳐도 20만 원이면 충분하다.
익숙한 나의 피렌체에는, 하얗고 깨끗한 화장실 대신
촌스럽지만 정겨운 옥색 타일의 화장실이 있다.
별 다섯 개짜리 후기 따윈 필요 없다.
이미 나를 위해, 오랜 시간 다듬어온 그곳. 우리의 피렌체.
이제, 그곳으로 떠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