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은 늘 일이 따라오고 일로 가는 출장은 여행과 비슷하다. 공간을 만들고 브랜드를 만드는 일과 F&B라는 콘텐츠가 일과 쉼의 경계가 늘 섞여있다. 그래서일까? 아직 봐야 할 것도 많고 경험해 봐야 할 브랜드도 많고 먹어볼 음식도 많기에 휴양지는 늘 여행 목록에서 사라진다. 커리어도 마찬가지다. 디자이너라는 경계가 모호해진 요즈음은 디자이너라고 말하기도 부끄럽고 아직은 부족하기에 브랜드 디렉터란 직함을 내밀기도 부끄럽다.
여행 중 내가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곳은 마켓이나 전통시장, 고급 식료품점, 레스토랑, 라이프스타일 편집샵이다. 마켓은 나에게 있어 놀이터이자 보물창고, 서점 같은 존재이다. 도서관은 다양한 책을 구경할 수 있지만 살 수 없다. 서점은 다양한 책을 구경하고 구매가 가능한 곳이기에 마켓은 나에게 있어 서점과 비슷하다. 그리고 놀이터처럼 신나고 늘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갈 수 있어 설레는 곳이다. 이번 여행에서도 변함없이 파머스마켓을 시작으로 홀푸드 마켓은 거의 매일 출근 도장을 찍었다. 여행의 마지막을 홀푸드마켓에서 탕진으로 마무리했다.
감성고기를 리브랜딩 하는 과정이라 감성고기에 혹시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을까 하여 리서치한 로컬 브랜드와 고급 식료품점이 있다길래 찾아갔다.
제이콥슨 솔트
포틀랜드가 속한 오리건주는 바다와 가깝다. 덴마크와 노르웨이에서 5년간 소프트웨어 회사를 운영하다 인생 소금을 맛보았다는 벤 제이콥슨. 그는 오리건에 돌아와 2년 반 정도 소금을 공부하고 전통방식을 통해 소금을 생산하는 솔트 메이커이다. 오리건주 네타츠만은 미국 서부 해안에서 가장 깨끗한 곳으로 꼽히는데 다른 지역의 바닷물보다 짠맛이 강하다고 한다.
사실 제이콥슨 솔트는 포틀랜드의 대표적인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어 어느 곳에 가도 자주 마주치는 브랜드이다. 많은 리테일 샵에서 소금을 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소금 브랜드 사이에서는 규모도 작도 역사도 짧지만 그에게 있어 중요한 가치는 혁신이라고 한다. 좋은 품질을 유지하되 새롭고 재밌는 것을 만들고 로컬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다른 소금 브랜드와의 차별성을 준다고 한다.
포틀랜드의 레스토랑, 셰프, 상인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지역 커뮤니티가 없었다면 제이콥슨 솔트도 없다는 그의 말은 다시금 포틀랜드라는 지역의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느낄만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더 메도
더 메도(the maedow)는 전 세계의 소금과 미국에서 생산되는 수제 초콜릿, 칵테일에 향미를 돋우거나 식사 전 아페리티보로 사용하는 비터를 큐레이션 한 상점이다. 오너이자 요리 작가인 마크 비터먼 또한 소금 전문가이다. 모터사이클로 프랑스 여행을 하다 만난 플뢰르 드 셀 소금은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고 한다. 소금에 대한 전문적인 책인 <salted>를 발간하기도 했다. 포틀랜드 기반으로 시작한 더 메도는 현재 뉴욕에도 숍을 운영 중이고 도쿄에도 생길 예정이라고 한다.
아담한 규모의 메도는 동네 분위기와 너무 잘 어울렸다. 아기자기한 디스플레이는 메도를 기념할 무언가를 사야할 것 같은 기분을 만든다.
올림피아 프로비젼스
포틀랜드 가기 전부터 제이콥 솔트와 마찬가지로 기대했던 곳다. 올림피아 브로비젼서의 대표인 일라이어스 카이로는 유럽과 그리스 등 세계 각국을 돌며 다양한 훈제 고기를 경험했다. 그리고 스위스에 정착해 본격적으로 샤퀴테리 기술을 연마했다. 샤퀴테리란 수제 육가공품을 말한다. 그리고 이 경험들 속에서 크래프트맨십을 느껴 올림피아 프로비젼스의 제품은 수작업으로 만들어진다.
재료는 올림피아 프로비젼스의 영감이며 신선한것을 추구하는데 특히 미국 농무부 USDA 유기농 인증을 받은, 항생제가 함유되지 않은 정육을 사용한다. 신선한 허브와 향신료, 그리고 소금을 조합하여 12가지 종류의 살라미를 만든다. 무엇보다 천연 케이싱만을 사용하고 심지어 소시지에 첨가하는 로즈마리 잎사귀 조차 손으로 딴다고 한다. 파머스 마켓이나 홀푸드, 딘 앤 델루카 등 다양한 마켓에서 만날 수 있다고 한다.
https://www.olympiaprovisions.com/
한국은 지역 커뮤니티가 매우 약하다. 동네 상권이 생기면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꼭 겪게 된다. 제이콥 솔트나 올림피아 프로비젼스는 포틀랜드를 기반으로 만든 브랜드이지만 미국 전역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도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힘을 모으고 그것이 로컬 브랜드를 이끌어주는 원동력이 된다는 점이 여전히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