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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은별 Oct 15. 2021

2화_어느 날 갑자기 팀장이 되었습니다

덕업 일치

F&B 브랜드를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겠다 결심하고 퇴사를 했다. 출발점에 다시 섰다. 쉽지 않았다. 부모님을 설득해야 했고 경제적으로 독립을 해야만 했다. K 부모님들이 그러하듯 왜 그 좋은 직장을 그만두니? 왜 어려운 길을 선택하려고 하니? 등 날마다 의견이 불일치였다.


하지만 나를 믿었다. 맛있는 음식이 있는 저녁 식탁을 나누고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삶에 관하여 일하고 싶었다. 또한 내가 브랜딩 한 제품이 얼마나 매출을 일으킬지, 사람들이 좋아할지 궁금했다. 먹고 마시는 콘텐츠를 만드는 일, 공간을 만드는 일, 그리고 그것이 하나가 되어 브랜드를 만드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겠다는 것은 흔들리지 않았다.


먹고 마시는 콘텐츠를 만드는 일, 공간을 만드는 일,
그리고 그것이 하나가 되어 브랜드를 만드는 일



나는 천재가 아니다. 나는 꾸준함이 잘 맞는 사람이다. 크리에이티브란 사람들의 눈을 번쩍이게 할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상의 본질을 탐구하고 작은 발견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크리에이티브라고 생각한다. 또한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니기에 방대한 정보를 한 번에 습득할 수 없다.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사람들의 동선을 지켜보고 객단가를 보기 시작했다. 기억해야 할 것들은 노트에 적었다. 제일 중요한 건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일이었다.  내가 고객이라면 어땠을까?


고객의 입장에서, 내가 고객이라면 어땠을까?



또한 F&B 브랜드를 만드는 것 중 중요한 것은 실무자들이다. 셰프, 양조사, 소믈리에들과 협업하면서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생각을 이해하려고 했다. 이 또한 쉽지 않았다. 책상 앞에서 생각하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는 기획자의 입장과 현장에서 불과 싸우며 고군분투하는 이들. 다른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일이 어려웠다. 하지만 a에서부터 z까지 모두 알아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교 후배들 졸업전시에 초대를 받아 참석하게 되었다. 오프닝 파티 때 눈에 띄는 맥주를 발견하게 되었다. 평소 존경하는 교수님이 디자인한 맥주였다. 너무 부러웠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맥주를 브랜딩 하는 일은 꼭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그래, 맥주 브랜딩을 꼭 해보자. 인생에서 꼭 맥주를 브랜딩 해보자.

준비된 사람에겐 기회는 늘 찾아온다. 언제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할 수 있게 노력해보자.



전 세계에 가장 많은 브루어리가 모여있는 힙스터의 도시 포틀랜드에 갔다. 호텔을 짐을 맡기자마자 가장 가보고 싶었던 브루어리에 갔다. 사워 맥주의 짜릿함이 내 몸에 퍼져갔다. 포틀랜드 사람들에게 맥주는 곧 일상이었다. 맥주의 호기심 때문에 간 포틀랜드는 더 많은 것들을 일깨워주었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삶을 살아가는 포틀랜드의 이상함이 좋았다.  참고로 포틀랜드의 도시 슬로건은 <Keep Portland Weird >이다.


다양한 캔 와인과 음료들을 만났다.


엘피의 천국이자 매주 열리는 파머스 마켓


가장 빠른 트렌드를 느낄 수 있는 뉴욕보다 느리게 움직이는 이곳이 좋았다. 주말에는 신선한 식재료를 만날 수 있는 파머스마켓에 갔고 멋진 패키지로 가득한 마트는 역시나 가장 큰 배움터였다. 그때 캔 와인을 처음 마셔보게 되었는데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점이 너무 좋았다. 한국에도 캔 와인을 팔고 있지만 더 늘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농장에서 갓 딴 식재료를 이용한 팜투테이블(farm to table) 레스토랑에서부터 지속 가능성 있는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그곳에서 겉모습에 치중하는 브랜딩이 아닌 진짜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고 결심했다.


포틀랜드에 관한 내용은 지난 브런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portlandcity


그리고 기회가 찾아왔다.


“새로운 맥주 브랜드를 만드려고 준비 중인데 같이 해보지 않을래요?”

뒤돌아 보지 않고 나는 오케이를 했다. 그리고 마침내 덕업 일치가 된 순간이었다. 오리지널 비어 컴퍼니의 맥주는 첫 기획부터 론칭 팝업 행사까지 맥주 브랜딩을 경험하게 한 프로젝트였다. 그동안 여러 나라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느꼈던 생각들을 담았다. 맥주를 만드는 양조 사의 장인정신을 담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에 OBC의 맥주가 있기를 바랐다. 아버지가 처음으로 술을 가르쳐줄 때, 베스트 프렌드의 결혼식 때, 사랑하는 사람의 생일날 특별한 맥주가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브랜드를 기획했고 팝업스토어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 하나의 산을 넘은 기분이었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오리지널 비어 컴퍼니의 맥주, 성수동 렌트에서 열린 팝업스토어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팀장이 되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기 위해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보세요. 거창한 것들이 아니어도 되어요. 일상 속 사소한 경험들이 모아져서 생각을 단단하게 만들어줄 거예요. 그리고 작은 목표지표를 꼭 설정해보세요. 제가 맥주 브랜딩을 목표지표로 삼은 것처럼 작은 목표들을 세우고 그것을 도달해봐요. 매일 5km 달리기(10km는 힘들어요…), 하루에 물 2l씩 마시기 등 소소하게 이루고 싶은 다짐뿐만 아니라 커리어에 도움이 될 목표들도 세워봐요. 저는 이번 달부터 와인 시험을 보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어요. 와인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아직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해요. 시험에 통과한다면 저는 작은 목표 하나를 또 이뤄요. 저 잘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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