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내가 살던 오피스텔에 엄마가 춘천에서 놀러 오셨었다.
복층 구조의 집이라 위층에 이불을 펼쳐, 오랜만에 엄마랑 나란히 잤다.
이른 아침, 아래층에서 들리는, 나에게는 난데없던, 라디오 소리에 잠이 깼다.
엄마가 아침을 준비하며 라디오를 켰던 것.
순간 너무 짜증이 났다.
“왜 이 시간에 사람 자는데 라디오를 켜요?”
엄마는 “미안, 미안”을 반복하며 서둘러 라디오를 끄셨다.
그냥 좋게 말해도 됐을 텐데.
나는 이 일이 두고두고 지금까지 후회스럽다.
얼마나 상처였을까, 미웠을까.
살면서 이런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었겠냐.
나는 늘 죄인이다.
엄마는 누구에게 짜증을 낼 수 있을까, 있었을까.
늘 엄마만 바라보는 순애보 같은 아빠가 욕받이 역할을 해주셨을까.
살면서 숱하게 모진 상처가 많았을 텐데.
일찍 부모를 여읜 우리 엄마는 누가 그 상처를 다독여 주었을까.
누가 바라봐 주었을까.
누가 옆에 있었을까.
내 속이 그래도 순간순간 후련할 수 있었던 건,
엄마가, 아빠가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주었기 때문인데…
속이 썩어 문드러져,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또 상처가 더해졌을 엄마.
삼킨 미안함이 쌓여, 언젠가 터져 나오기를.
입을 떼기도 전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두렵고,
쑥스러워 그동안 미뤄온 시간들.
글로 보여드리면 조금은 나을까 하는 마음.
그런데 이것도, 결국 지밖에 모르는 자식이
자기 속 편하려고 하는 일 같아
죄스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