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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리 Mar 22. 2023

다시 출발선에 서다

대량해고 위기 속 뉴욕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뉴욕에 처음 도착해 대체 내가 뭘 하고 먹고살 수 있을지 깜깜하던 시절을 지나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기적처럼 겹치는 곳에서 풀타임직 오퍼를 받았을 때, 나는 이제 내가 꽃길만 걸을 줄 알았다.

원하던 일을 하고 원하는 기술을 배우는데 덩달아 돈까지 벌 수 있으니 금상첨화라 생각했다.

그동안 뿌린 노력의 씨앗들이 결실을 맺었으니 이젠 열심히 수확하는 일만 남았다 믿었다.

시키지 않은 일들도 내 일이 아닌 일들도 적극적으로 찾아 해결해 냈고, 기한을 맞추기 위해 가끔 있는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다.


2년 차가 되자 갑작스러운 슬럼프가 찾아왔다.

내가 제공하는 서비스가 도무지 경쟁력이 없다는 불안감, 이 일 열심히 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허무함, 그렇다고 상황을 바꿀 순 없다는 무기력함이 하루하루 커져갔다.

마침 비슷한 시기 우리 회사의 성장동력이었던 주 고객사들이 더 이상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 통보했고, 공들여 일하던 프로젝트에 갑자기 제동이 걸렸다.

다행히 큰 공백 없이 새로운 프로젝트에 투입되었지만,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불안감은 도무지 떨쳐지지 않았다.

컴퓨터 로그인이 안 될 때면 불안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날들이 반복되던 차, 매니저와의 면담이 잡혔다.


긴 휴가를 며 칠 앞둔 터라 갑작스러운 면담에 오만가지의 생각이 들었다.

휴가를 못쓰게 하려고 하나, 내가 뭘 잘못했나, 혹시, 나 이대로 잘리는 건가?


‘사라, 며칠 후 대량 인원감축에 대한 발표가 있을 거야. 네가 그때 여행에 가 없을 테니 놀라지 말라고 미리 알려주는 거야. 너의 자리는 안전해.’


안도감을 느껴야 하는 걸까, 고마움을 느껴야 하는 걸까, 슬픔을 느껴야 하는 걸까 - ‘마음이 복잡하다’라는 말 말고는 달리 표현할 수 없다.

마치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고 장례식장에서 쓸쓸히 건배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2020년 후반기부터 코로나로 잠시 주춤했던 경제가 회복되고, 이른바 '코비드 특수'를 맞이한 특정 산업군들은 코비드 전 보다 몇 배, 혹은 몇십 배 성장했다.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거나 위협을 받고 있는데도 미국 주식시장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매일 최고치를 경신했다. 일이 잘 풀릴 때 우리는 앞으로 지금보다 더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되고, 그에 맞춰 비용을 늘린다. 회사는 사람을 더 고용하고, 오피스를 확장하고, 직원들의 연봉과 복지를 넉넉히 주면서 더 큰 성장을 준비한다.


마침내 연방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 인상을 하자 미국 주식시장은 연료가 떨어진 로켓 신세가 되었다. 돈이 귀해져 주식시장이 떨어진 건지, 주식 시장이 떨어지자 돈이 귀해진 건지, 치솟던 물가는 조금 진정이 되었지만 그 여파는 물가상승률을 너머 경제 전반을 뒤흔들고 있다.


은행의 금리가 오르자 회사들은 투자를 받기가 어려워졌고, ’못 먹어도 고 무조건 성장‘을 외치던 주주들은 이제 회사의 수익률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투자회사를 등에 업은 회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주주들이 만족하는 것이다. 성장의 한계에 다다른 회사가 수익률을 올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지출을 줄이는 것이고, 지출을 줄이기 위해 대량해고 카드를 고르는 게 당연하다.

미국은 카톡으로 이별통보 하는 것 보다도 해고가 쉽다. 미국의 고용법은 회사와 그 주주들의 안위를 가장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메타(페이스북) 11,000 명, 트위터 3,700명, 아마존 10,000 명, Microsoft 10,000 명, 구글에서 12,000명..

대량해고가 발표되고 수십만 명이 일자리를 잃던 날, 기업들의 주가는 반짝 상승세를 보였다. 비용을 절약한 것에 대해 주식시장이 긍정적으로 반응한 것이다.




나는 언제나 미래를 예견하고 싶었다.

그런 소망으로 타로카드도 배웠고, 새해에는 여김 없이 사주카페를 드나들었다.

미래를 알면 닥쳐올 위기를 좀 더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고, 굳이 실패가 뻔히 보이는 일이라면 (사랑이든 직업이든) 미리 알고 그만둘 수 있으니까.

지금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 지에 대한 답을 미래에서 찾고 싶었다.


문제는, 끊임없이 밀려오는 변화의 물결에 도무지 어떤 미래가 오는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일은 또 누가 직업을 잃게 될까, 지금 내가 하는 일이 5년 후에도 경쟁력이 있을까, 이대로 미국이 무너지면 세계경제는 어떻게 되는 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걱정들은 하루를 꽉 채우고도 남지만, 그 걱정 끝에는 정답이 아닌 또 다른 혼란만이 남는다.


그럼 지금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답을 찾기 위해 오랜만에 브런치를 찾았다. 글 속에서 내일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길 바라며.














https://news.crunchbase.com/startups/tech-layoffs-2022/

https://www.computerworld.com/article/3542681/how-many-jobs-are-available-in-technolog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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