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쁜 사람이 된 게 아니라 애초에 못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깨우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한때 ‘나는 어쩌다 이렇게 못돼졌을까’하고 스스로를 가련하게 여긴 적도 있었다. 심지어 원인을 찾겠다며 깊은 생각에 잠기기까지 했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촌극도 그런 촌극이 없다. 나는 변한 게 아니었다. 내 안의 악은 집 앞의 나무처럼 고요하게,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 선은 그저 바람이었다.
선과 악, 그러니까 ‘착한 것’ 과 ‘나쁜 것’이 내 눈 앞에 처음으로 얼굴을 갖추고 등장한 건 열 두살 무렵이었다. 학교 운동장, 왕따를 당하던 소년 하나, 소년을 조롱하는 무리 여럿, 그리고 고약한 무리에 맞서던 여자애 하나. 동화책이나 교과서 속에서나 보던 악당과 용사가 거기에 있었다. 이제 알았다, 악당의 생김새와 용사의 생김새. 이렇게 생겼구나. 그 장면을 회상할 때면 재생속도가 무척 느려진다. 이유는 모르겠다.
불의에 맞서는 여자애의 얼굴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누군가의 고립을 막아세우는 대가로 본인이 고립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 같았다. 아차 싶어 당황하는 게 눈에 보였다. 그런데도 그 애는 끝까지 눈을 똑바로 뜨고 대들었다. 그 확신에 찬 눈빛 앞에선 불안이니 당황이니 하는 것들은 어설프게 마련한 소품처럼 볼품없게 느껴졌다. 그 눈빛에 나는 감탄했다. 근사한 눈빛이었다. 그러나 닮고 싶지는 않았다. 굳이 내가 그런 모험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 건 니가 하는 게 맞겠다. 너가 계속 해라. 너 계속 근사해라. 나는 감탄을 할게. 속으로만.
당시 나는 학교에서 가장 힘이 세다는 홍준이와 세 번째로 힘이 세다는 지현이, 그리고 달리기가 빨랐던 석은이와 항상 어울려다녔다. 개구진 내 성정이 그들의 마음에 들었던 걸까. 내 농담을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하다. 박지영 선생님은 우리 넷의 이름을 자주 불렀다. 한번은 마대자루로 우리 넷의 허벅지에 피멍을 만들고서는 본인이 울었다. 뭐지 때리는 사람은 분명 나쁜 사람인데. 근데 우는 사람은 보통 착한사람이던데. 마음속에서 나쁜 어른 임명식이 막 이뤄지던 찰나였다. 아픈 건 우린데 우리가 달래줘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혼란스러워진 나는 판단을 보류했다. 보류라기보단 판단하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잊었다. 물론 지금은 안다. 박지영 선생님은 착한 선생님이었다.
홍준이와 지현이 덕인지 내 주변은 늘 조용했다. 따돌림을 당하는 일도, 사춘기를 목전에 둔 남자애들의 흔한 서열싸움도 내게는 논외였다. 한 학년 위의 무서운 형들은 홍준이가 아는 형들이었으며 같은 학년의 무서운 애들은 홍준이 앞에선 얌전했다. 5학년 금강산반의 구성을 그대로 6학년 소망반 연장하자는 교무회의의 결정이 결코 내 편의를 위해서는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그 결정은 내 남은 초등학생 시절을 평화롭게 만들어 주었다.
딱 한 번, 평화를 깨는 작은 소란이 있었다. 내가 잘못 민 책상이 어떤 애의 팔꿈치를 세게 쳐버렸다. 고통스러워하던 그애는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내 이름을 크게 부르며 다가왔다. 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나는 제자리에 꼿꼿이 서서 똑같이 눈을 부라렸지만(왜, 뭐, 내가 일부러 그랬냐? 하는 표정을 짓고 싶었던 것 같다.) 속으론 당황하고 있었다. 아 싸움을 해 본 적이 없는데. 맞으면 아플 것 같은데. 아 점점 가까워지네. 거의 다 왔네. 이 다음은 뭐지? 내 당황이 클라이막스에 오를 무렵 멀리서 홍준이가 그 애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그게 전부였다. 소란은 거기서 끝났다. 방금 전까지 뚜렷했던 위협이 언제그랬냐는 듯 맥없이 흩어졌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열 두살. 조원 초등학교. 5학년 금강산반. 아마 이십 몇번. 당시의 나는 선의 방관자였을까 악의 수혜자였을까. 긴 유예를 거쳐 내게 닿은 질문이다.
두 번째 기억은 열 다섯 무렵이다. 우리 학교엔 소위 말하는 ‘특수’ 아이들이 셋 있었다. 모두 여자애였다. 그 셋은 항상 붙어다녔지만 적어도 우리 또래 중에선 누구도 그들의 관계를 우정으로 보지 않았다. 그건 생존을 위해 맺어진, 일종의 불가항력적 연대 같았다. 나는 그 중 두 명이 언성 높여 싸우는 장면을 종종 봤다. 그 중 두명이 나머지 한 명을 욕하더라는 소문도 들었다.
그들의 기묘한 공생은 위기의 순간에서만큼은 우정으로 기능했다. 하루는 반에서 까부는 남자애가 그 무리를 놀리기 시작했다. 외모를 조롱하고 걸음걸이를 조롱하고 펑퍼짐한 치마자락을 조롱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금세 나머지 둘이 나타났다. 셋은 결코 마냥 당하는 쪽이 아니었다. 의기투합하여 어눌하지만 단단한 어조로 조롱에 대응했다.
남자애는 여자애들의 애처로운 대응까지 비웃음의 재료로 재활용했다. 저항하던 몸짓 손짓까지 따라하며 깔깔거렸다. 그 꼴을 본 나는 속으로 진저리쳤다. 해도 너무하네. 지도 좆밥이면서. 또래 남자들 사이에선 그저 광대인 새끼가. 놀리고 또 놀리는 일련의 과정들 앞에서 나는 모두처럼 웃지는 않았지만 나서서 말리지도 않았다. 말릴 시간이 없었다. 친구가 줄여 온 바지 밑단의 통수가 6인지 7인지 8인지 추궁 하는 게 급선무였던 시절이었다.
교복 바지를 들고 세탁소를 들락거리던 그 시절 내가 배운 건 하나였다. 사람이 사람을 조롱하는 모습은 저리도 꼴보기가 싫다는 것. 나쁜 짓은 보기가 싫구나. 천부인권이라는 단어를 알게 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사람은 다 똑같단다. 맞는 말 같았다. 내가 맨날 하던 생각이었다. 어른들 시발 지들이 뭔데. 똑같은 사람 아냐? 선생들 시발 지들이 뭔데. 지들도 목숨 하나 나도 목숨 하나 똑같은 사람 아냐? 평소에 속으로 으르렁 거려온 덕에 천부인권이라는 단어를 쉽게 받아들였다.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 논리대로라면 나 역시 저 여자애 셋이랑 똑같은 게 된다. 내가 장애를 가진 쟤네들(갑자기 그 애들에게 진짜 장애가 있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 중 한 명은 확실히 조로증을 앓았던 것 같다. 나머지 둘을 모르겠다.)이랑 동등하다고? 그 불쾌한 가설은 사춘기 소년의 유치한 우월감에 작은 균열을 일으켰다. 균열을 균열로만 남기기 위해선 빠르게 반박해야 했다. 그러나 반박이 계속 반박당했다. 나는 쟤네랑 다르지. 맞아 다르지, 근데 다른 게 뭐? 다른 게 더 나은 거야? 그런 건 아니지만. 아무튼 내가 쟤네보다는 낫지. 뭐가 나은데?
생각을 이어갈 수록 마땅한 근거가 없었다. 그네들이 내게 와 요즘말로 “너 뭐 돼?”하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해야 할지 대답이 궁했다. 줄인 바지 통 수를 내밀텐가 몇 등짜리 성적표를 내밀텐가 그것도 아니면 길에서 주운 던힐 세 까치를 내밀텐가. 그래 맞네. 나는 나고 너는 너네. 너도 너고 나도 나네. 너와 나의 정체를 끝까지 캐묻는다면, 그래 그냥 잠깐 살다 가는 사람일 뿐이네.
기분이 나빴지만 인정했다. 기분 나쁜 말이라고 틀린 말은 아니니까. 모든 사람은 동등하다. 쟤네랑 나 역시도. 가설을 수용한 이후로는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달리했다. 더이상 그 여자애들 중 한 명한테 말을 걸어야 할 때 창피한 듯 굴거나 무시하는 말투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착한 애들처럼 상냥하게 굴지도 않았다. 반에 있는 착한 애들은 그애들에게 말을 걸 때면 말투가 특별히 더 상냥해지곤 했는데 내겐 그것이 일종의 계급선언 처럼 느껴졌다. 너는 윗급인 내가 함부로 대하면 안그래도 불쌍한데 더 불쌍해지는 아랫급이잖니, 배려해 줄게, 다정한 복화술을 쓰는 것 같았다.
긴 시간이 흘러 오바마가 한 손을 주머니에 꽂은 자세로 청소부와 악수하는 모습이 전 세계의 티비 화면에 송출됐을 때 나는 감격하며 열 다섯 살 때를 떠올렸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해왔지만 그게 세계1짱 미국 대통령일 줄은 몰랐다. 나잇값도 못하고 공통점 하나 엮어서 속으로 우쭐했다. 어쨋든 내 눈엔 허리 꼿꼿이 펴고 주머니에 손을 꽂은 오바마가 시장통에서 허리 굽히는 한국 정치인보다 착해보였다. 오바마의 악수 화면을 캡처한 뉴스기사엔 ‘싸가지 없는 새끼’라는 댓글이 달렸었다.
그럴일은 거의 없었지만, 나는 특수반 애들에게 말을 걸 때 퉁명스러웠다. 안 친한 애들한테 그러는 것 처럼. 지금도 사내 청소 직원분들에겐 말투가 무뚝뚝하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흔히 그러는 것 처럼. 싸가지 없는 새끼처럼.
열 일곱엔 윤사탐이라는 강사를 만났다. 평촌 학원가의 좁은 강의실에서 그는 내 사탐등급을 올려줬다. 그러고 남는 시간엔 세상의 민낯을 보여주었다. 윤사탐은 수업 중에 가끔 격양되곤 했는데 기회의 평등이라는 수사 뒤에 숨은 무엇, 진정한 의미의 거주이전의 자유, 특히 이건희씨가 이재용씨에게 경영권을 물려줄 때 사용한 치밀한 합법 같은 걸 말할 때 그랬다.
윤사탐은 내심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공분해주길 바랐을 것이다. 동우는 확실히 공분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화가 나 있다. 다행히 내 분노코드 역시 동우와 거의 일치하는 덕에 만나면 같이 화내다 집에 간다. 하지만 그건 스무 살 이후의 이야기다. 안타깝게도 20년 전의 나는 한창 오션스 시리즈에 빠져 있던 참이었다. '똑똑한 도둑들'에 완전히 매료된 시기였던 것이다. 치밀한 계획 속에 이뤄졌을 이건희 이재용 부자의 경영권 승계 과정이 내게는 그저 한편의 하이스트 무비였다. 오션스 주인공들의 실사판 같았다. 와 새끼들 욕심 존나 많네. 애비나 새끼나 똑같네. 하지만 대도라면 응당 그래야지. 먹을 거면 크게 먹어야지. 돈 많은 이가 그토록 영리하게 비겁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그저 경이로웠던 시간이었다.
열 일곱을 지나며 꽤 많은 것들을 보고 들었다. 어떤 건 단순했고 어떤 건 복잡했다. 어떤 건 쉬웠고 어떤 건 어려웠다. 어떤 건 짧았고 어떤 건 길었다. 정신없이 흘러들어오는 각양각색의 파편들을 한 데 모아 압축하자 하나의 진실이 도출됐다. 호모사피엔스는 야만에 가까울수록 단순해지며 인간다움에 가까울수록 복잡해 진다는 사실이었다. 폭력과 혐오, 힘과 지배, 그리고 비굴하지만 속 편한 복종. 동물의 논리는 단순하고 머리 아플 일이 없다.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할 땐 야만의 수식인 ‘아무튼’이 나타나 모든 걸 치유한다.
그러나 인간의 논리에는 모든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마법의 수식인 ‘아무튼’이 적용되지 않는다. 인간의 사회에선, 적어도 ’아무튼 사람을 죽인 건 둘 다 똑같’으니 과실치사와 계획살인에 같은 형량을 매기지는 않는다. ‘아무튼 성매매한 건 똑같’으니 미성년자 성매매범과 성인 성매매범에게 같은 벌이 주어지지도 않는다.
인간사회에서 무언가를 판단할 땐 접시를 고를 때 처럼 요리조리 살펴봐야 한다. 여러 정상들도 참작해야 한다. 귀찮은 과정들을 실꿰듯 거치고 나면 이제 토론 시간이다. 길고 긴 토론까지 끝마치고 나서야 드디어 내리는 결론이란 건 고작 ‘무엇인것 같은’ 결론이다. ‘아무튼 국가를 발전 시켰으니 옳은 것.’ 혹은 ‘아무튼 성추행하고 자살한 건 팩트’ 따위의 손쉬운 견해들은 내눈에 그저 성급한 야만으로 비추어진다. ‘아무튼’은 우주를 담는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만 쏙 빠진, 나머지 우주를 모두 담는다. 아무튼 그렇다.
나는 지금도 아무튼같은 사람들을 싫어한다. 자신에게 불리한 맥락은 의도적으로 외면하며 말을 전하는 사람을 볼 때면 내적 구역질이 눈빛으로 드러날까봐 경계한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을 볼 때는 더 위태롭다. 호이지기악 오이지기미는 구역질나는 그들과 나를 구분짓기 위한 필수적인 도구였다. 이젠 내 세계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구조물로 자리잡았다. 그 문구가 결국 나를 혼자로 만들긴 했지만 이제와서 돌이키기엔 너무 늦었다. 화이부동을 부동화이로 바꿔보려고도 했지만 그 역시 때를 놓쳤다. 겨울에 피는 꽃은 있어도 겨울에 돋는 새싹은 없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열일곱에서 스물 일곱 까지 십여년 동안은 선악에 관한 인상적인 기억이 없다. 그 시절은 말그대로 흘렀다.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하여 정치 사상을 주로 들여다보긴 했지만 모든 게 모호했다. 책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성급하게 문과로 결정한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적성은 이과였다. 명쾌한 답이 없는 이 문과놈의 세계에선 아무런 텍스쳐도 느낄 수 없었다. 크림위에 크림과 크림을 덧바른 크림으로 크림 바른 크림을 위아래도 뒤덮어 만든 듯한 크림빵을 먹는 기분이었다. 씹었는데 씹지 않은 기분이었다. 정치학 교재에 적혀 있는 말들은 이말도 맞고 저말도 맞았다. 틀린 건 내 시험답안 밖에 없었다. 서로 상반된 주장이 둘다 맞아 보이는 알쏭달쏭한 세계속에서 나는 그냥 술 마시고 담배 피고 연애 하며 몇 년을 보냈다.
스물 일곱엔 대학내일 편집부 에디터에 지원하여 100대 1인지 200대 1인지 경쟁을 뚫고 합격했다. 나를 합격으로 이끈 건 뛰어난 문장력도, 사회를 들여다보는 예리한 통찰도, 토익 점수도, 학점도, 인턴 경험도 아니었다. 미친 사람을 찾는 것 같길래 미친 소리를 정성스럽게 늘어놓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갖은 미친소리들 중에서 내 미친소리가 인사담당자의 취향과 가장 가깝게 맞닿아 있었을 것이다. 운이 좋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착하다고 믿고 있었다. 물론 가끔씩 내 안의 악이 솟구쳐 오를 때도 있었지만 나는 그것들이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오작동 비슷한 것이라 여겼다. 정상 가동 중인 내 기본 세팅값은 선이라 믿었다.그런 내 알량한 믿음은 대학내일이란 기묘한 공간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차츰 금이 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