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이 기분 모르지?
둘째를 혼자 보는 날이면 꼭 한 번씩 튀어나오는 말버릇이다.
이제 7개월차에 막 접어든 둘째는 아직 말이 없다.
정확히는 말로 꺼낼 생각 자체가 없는 것 같다.
분유나 이유식, 스틱 과자를 볼 때 우에우에우에- 흐힝- 하는 것 말고는 소리도 잘 안 낸다.
말없이 장난감을 꼼지락 거리는 둘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문득 '너무 조용한데' 싶은 순간이 찾아온다.
이윽고 고요다.
고요한 순간을 돈 받고 판다면 산다는 사람 천지겠지.
가격만 적당하면 여기저기서 저요저요 하겠지.
하지만 육아휴직 4개월 차에 접어든 나는 이 고요한 순간들이 물려버렸다.
한 점에 7,900원 하는 초밥도 세 점이면 물려버리던데. 고요라고 별 수 있겠나.
나는 이제 안다.
어디보자~ 지히갑이히~
하고 콧노래를 부르는 아저씨 아줌마들은 외로워서 그랬었다는 걸.
주변이 조용했을테지.
딸이 말 걸어 주지 않으니 아들이 대답 하지 않으니 스스로와 대화하기 시작했던 거였어.
나도 아저씨 흉내를 내본다.
흣쌰, 읏쌰, 기저귀를 갈아야 하나?
똥을 ~ 언제 싸려나아아~~
그러다 깨달아 버리는 거지.
내가 이미 아저씨라 더이상은 아저씨 흉내를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이수지씨가 이수지씨 성대모사를 할 순 없는 거잖아.
인생 개같은거
아기 앞에서 혼잣말을 중얼거리다 보면 꼭 내 기분을 말하게 된다.
가을 벤치에 앉아가지고선 이제 막 200일 살아 낸 아이 앞에서 우쭐 대는 거다.
넌 이 기분 모르지?
나는 안단다.
가을에 바스락 바스락 낙엽 밟는 기분
오랜만에 공원 벤치에 앉아 햇빛 쬐는 기분
한가로운 척 앉아 한가로운 사람들을 구경하는 기분
귀여운 아기 볼살을 조물조물 하는 기분
씁쓸한 척 하며 폼도 잡는다.
넌 이 기분 모르지?
몰라도 된단다.
숱한 오해, 엉뚱한 소문,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사람이 하는 내 험담.
같은. 진부하고 흔한 그런 것들.
염따 가사처럼 내가 싫은 나 같은 것들.
개인의 특수 불편을 만인에 의한 보편 부당과 동치시키는 세상이 참 병신같다는 생각을 많이도 했지만.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지만.
나도 가끔은 다 세상탓을 하고 싶어질때가 있다.
결국엔 모두 내 탓이란 걸 알게 되지만.
인젠가부터 세상 사람들이 내 기분을 신경쓰리라는 기대는 접어버렸다.
기분 나쁘니 그러지 마세요, 해봤자 나 없는데서 또 그러니까.
술자리에선 왜들 지랄인지.
근데 무리를 지어버리면 나도 그래버린다.
오해와 소문과 험담과 가십을 좆같아 하면서도 그 좆같은 걸 나도 하고 앉았다.
그게 또 좆같아서
그래서 혼자가 되었다.
그래서 혼자가 되었다.
진짜 허세 오지는 아홉자네.
자의인듯 굴지만 실은 타의다.
원인은 내가 맞긴 한데요
내가 원한 건 아니었다고요.
나는 혼자가 좋아 스스로 혼자가 됐다는 사람을 보면 구라치지말라면서 딱밤 개쎄게 때리는 상상을 한다.
무튼 혼자가 되었고.
오해와 소문이 오히려 배가 되었다.
혼자가 되어서.
이제는 이골이 나 그냥 븅신들, 좆밥들. 하고 말지만.
혼자인 내가 제일 븅신 좆밥인 거고.
청첩장 돌리다 화장실에서 점심 게워낸 내가 진짜 개쪼다같았고. 아 누가 원한다고 3층 4층 5층 6층 다 돌아야 하나. 음음 쉽지 않은 법이지 수요없는 공급자의 생은.
혼자가 되는 건 쉽지만. 다시 무리가 되는 건 어렵지.
그러니 혼자 기분 좋아지는 법을 알아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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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실!
이제 나는 혼자가 아니다.
예쁘고, 예쁜가? 음 귀엽고, 맨날 좋은 냄새가 나는 여자 셋이랑 같이 산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나 인간은 이성을 한 번에 한 명씩만 좋아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진짜 개충격 먹었었는데.
그때도 동시에 세 명 좋아하고 있었거든.
박정아랑 박혜리랑 송명아? 였던 것 같다.
다른 인간들은 감정에 스위치가 달린 거야?
온오프가 자유롭나? 하나 켜지면 나머진 꺼지는 거야?
믿을 수가 없네. 또 나만 솔직한 걸로 쳐야지.
나는 열 두살 때도 쓸데없는 물음표 살인마였고 남의 말을 잘 믿지 않았고 내 말이 맞다고 여겼었다네.
아무튼 지금 나는 여자 셋을 동시에 좋아하면서 살고 있다.
위에 혼자인 척 청승떨었는데 아 나 혼자가 아니었구나.
사실 가끔 밥 먹고 술 마시는 좋은 사람들도 몇 있는데.
에고 패션 우울증이 몸에 배어가지고.
그나저나 아기와의 혼잣말이라니.
이제보니 뜨거운 아아 같은 소리네.
근데 무슨 소리 하다 여기까지 왔나?
분명 글을 쓰고 있었는데 또 혼잣말을 해버렸네.
아아아아 아아아아침 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 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되기에
https://youtu.be/u5CVsCnxyXg?si=5aq6Err2MGeq_Oy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