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쁠 것 같군요
세월은 많은 것들을 앗아가지만
구석 빈 자리에 같은 무게를 지닌 무언가를 잊지 않고 남기고 간다. 시간은 나를 빈손으로 두지 않는다. 이번만큼은 깜빡잊은 게 틀림 없어, 아 - 이새끼 이번엔 진짜 그냥 갔어, 하며 실의에 잠겼던 그 순간에도 '무언가'는 어김없이 곁에 있었다. 단지 내가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다. 혹은 알아채기가 싫었거나. 어쨌든 가져간만큼 돌려준다는 세월의 거래철칙엔 예외가 없다. 그 강압적인 장사꾼과의 거래를 마치고 나면 대체로 잃은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진다. 잃었다는 것은 익숙했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가끔은 새로 맞이한 쪽이 더 좋을 때도 있다. 이를테면 시절을 보내고 계절을 맞이한 일. 나는 그 상실과 채움이 마음에 든다.
학창시절의 나는 주로 학년과 학기를 살았다. 1학년 1학기 혹은 3학년 2학기. 방학인 여름이 아니라 여름인 방학, 마찬가지로 방학인 겨울이 아니라 겨울인 방학. 3월은 새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 숙제같은 달이었고 11월은 기껏 완성한 숙제를 도로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떠는 달이었다. 사고의 기준점은 늘 학교였다. 지금도 학창시절을 회상할 때는 연도보다 학년이 수월하다. 친구가 "2006년에 우리 근린공원에서.." 하면 그게 언제였더라? 하며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고2때 우리 구사거리에서.." 하면 어 그때, 하고 바로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근 20년 동안 사용 해 온 세월의 주판은 학년과 학기라는 알들로 구성돼 있었다.
그시절 내게 계절은 단지 온도였다. 더워서 좆같은게 여름, 추워서 좆같은 게 겨울. 18도로 설정한 에어컨 날개에 코를 박고 쿰쿰한 냉매 냄새에 취하는 게 여름, 주머니 속에서 미리 데운 핫팩을 좋아하는 애한테 건네주는 게 겨울. 봄과 가을은 언제나 성급하게 맞이한 탓에 한동안은 '생각보다 춥다'는 이미지로 굳어졌었다. 아마 어느 4월에 티셔츠 한 장만 걸치고 나섰던 남산 데이트에서 봄바람의 테토력을 온몸으로 느끼고 난 다음부터였을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 나 역시 여름엔 차라리 추운 겨울을 그렸고 겨울엔 그마나 더운 여름을 기다렸다. 그땐 5월의 미풍과 10월의 미풍이 어떻게 다른지 몰라 달력을 봐야 했다.
학년이 무의미해진 뒤부터는 연도와 계절로 기억을 새겼다. 대학내일 6년차 상반기 - 같은 걸로 시절을 기억하는 게 가능할리가 없으므로. 많이 웃었던 시기는 2019년 늦여름에서 겨울 사이, 가장 깊이 가라앉았던 순간은 2017년 여름,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2023년 봄. 이런 식으로 장면을 기록했다. 과거를 헤아리는 기준에 계절이 등장하기까지 거의 30년이 필요했던 셈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내게 계절은 여전히 온도였다. 즐거웠을 때 추웠지. 슬펐을 때 더웠지. 생의 어떤 구간을 떠올릴 때면 당시의 볕의 세기와 구름의 모양, 피부에 닿았던 바람의 종류, 밤의 냄새같은 것들만이 뒤이어 장면에 스며든다. 구라다. 사실은 “그때 반팔 입었던 것 같은데."라든가 ”우리 그날 잠바 입고 있었어.“ 같은 말들이 그보다 앞서 튀어 나온다.
변화는 작은 계기에서 시작했다. 2019년 겨울이었이다. 당시 나는 주류회사의 SNS채널을 운영하고 있었다. 당사의 술의 제철음식과 엮어 페어링을 강조하는 콘텐츠를 만들어달라는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난생 처음으로 '12월 제철 음식', '겨울 제철 생선' 따위의 키워드를 검색했다. 겨울엔 방어(라는 물고기가 있는지도 몰랐다)가 살에 기름을 채워 전혀 다른 맛이 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별안간 팔자에도 없는 '방어 맛집'을 찾아 헤메던 나는 몇 시간을 인스타와 씨름한 끝에 적당한 맛집을 골라내는데 성공했다. 그 가게가 겨울마다 승우선배가 아무생각 없이 찾는 단골집이었다는 사실은 모르는 게 나았을 지도 모른다. 갑자기 힘이 쏙 빠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후로는 제철음식 맛집은 승우선배에게 물었고 선배의 대답은 항상 만족스러웠다. 선배는 진작부터 계절의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타인에게 멋대로 라벨지를 붙여버리는 고약한 습관을 아직도 버리지 못한 나는 그때부터 라벨지의 종류를 하나 늘렸다. 계절의 얼굴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나는 후자였고, 또 나만 후자였다. 대부분의 사람은 계절과 안면 정도는 튼 사이였다. 그러니까, 사무실 맞은편 누구에게 겨울은 잠바를 입는 계절이 아니라 방어를 먹어야 하는 계절이었다. 건너편 아무개에게 봄은 생각보다 추운 계절이 아니라 냉이와 달래가 가장 맛있어지는 계절이었다. 어떤이에게 여름은 방학맞이 경험치 2배 이벤트를 하는 계절이 아닌 수국을 찾아 떠나야 하는 계절이었으며 가을은 땀이 안 나는 계절이 아니라 다 익은 벼들의 색을 오래 보기 위해 걸음을 늦춰야 하는 계절이었다. 다들 그랬고 나만 안 그랬다.
지후와 가까워지기 시작한 건 겨울이었다. 지후는 내게 목도리나 장갑이 아닌 과메기를 선물했다. 선물로, 그것도 첫 선물로 과메기를 주는 여자는 처음봤다. 유리로 만들어진 밀폐용기에 곱게도 담긴 과메기는 단정한 빛을 내고 있었다. 함께 딸려 온 싸구려 플라스틱 통에는 깨끗이 씻은 상추, 부추, 고추(지금 보니 다 추로 끝나는 게 신기하다)가 지후의 패시브 표정처럼 가지런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제철 특산물을 선물하는 건 꽤 괜찮은 플러팅 방법인 것 같다. 내가 과메기플러팅에 넘어가서가 아니라 진짜로. 아무튼 그날은 내가 처음으로 계절의 얼굴을 선물 받은 날이었다. 가을의 뒷모습, 혹은 겨울의 앞모습이었다.
지후는 내가 모르던 계절의 몇몇 얼굴들을 더 소개해줬다. 고작 이틀 늦었다고 고사리를 먹지 못할만큼 성장시켜 버리는 봄의 엄격한 표정도, 봄의 문턱까지 봄동을 붙잡아두는 늦겨울의 너그러운 옆모습도. 모두 지후가 알려주었다. 같이 알아간 얼굴들도 있다. 가을에만 볼 수 있는 장릉의 하늘, 초여름 아주 잠깐 즐길 수 있는 초당옥수수의 단맛, 한 여름 수영을 마치고 먹는 피맥이 주는 해방감 같은 것들. 서른 번의 계절을 함께 건너며 새로 알게된 계절의 생김새들이다. 지후와 함께 걷다 보니 어느새 나도 계절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재작년 쯤 내 이마에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라벨지를 붙였다. 좋았던 그 시절들은 세월이 멀리 들고 가버렸지만 이젠 계절이 있으니 괜찮다. 고 이마를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익힌 얼굴이 많아진만큼 기다림도 늘었다. 지금 내가 기다리는 건 4월의 애니시다다. 얼른 세 달이 지나 애니시다 화분이 농원에 진열되기만을 바라고 있다. 우리 가족이 잠든 밤에 싱그러운 향으로 거실을 가득 채워두는 기특한 애니시다. 진하지도 옅지도 않은, 내눈에 딱 적당한 그 노란 빛. 이번에도 3주 예쁘고 나머지 30주는 비듬같은 마른 잎 떨구며 죽어가겠지. 이번에도 지후가 나 없는 사이 바깥에 내다 버리겠지. 이번엔 6주만에 내다버릴지도 몰라. 그래도 난 매년 4월이면 애니시다를 들여 놓겠지. 내가 좋아하는 봄의 얼굴이니까.
바람이 있다. 하로와 이로가 계절마다 바쁜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계절 때문에 맨날 바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겨울이 오면 둘이서 만나 과메기 먹어야 한다고 호들갑 떨었으면 좋겠다. 여름엔 친구들이랑 꼭 캐리비안베이 가야한다고 용돈 모았으면 좋겠다. 봄에는 벚꽃 봐야 한다고 거실에서 소란 피우다가 나한테 시끄럽다고 혼났으면 좋겠다. 봄에는 봄꽃 봐야 해서, 여름엔 여름꽃 봐야 해서, 가을엔 뭐시기 물고기 먹어야 해서, 겨울엔 뭐시기 물고기 먹어야 해서, 항상 바빴으면 좋겠다. 욕심을 조금 더 낸다면 봄의 바람과 가을의 바람이 어떻게 다른지 아는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 온도 너머의 것들을 느끼고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이몸의 역할이 중요하시겠지. 방학숙제 때문에 바빴던 여름이 아니라 갓 피어난 수국이 예뻤던 여름을 줘야겠지. 중간고사를 잘 봤던 중학교 2학년 1학기가 아니라 지리산 자락에서 먹었던 두릎전이 기가막혔던 열 다섯 봄을 주어야겠지.
"오늘 계절이잖아, 나 바빠. 못 봐."
오랜만에 얼굴좀 보자는 내 전화에 하로와 이로가 매몰차게 거절했으면 좋겠다. 퇴근하고 방어 먹으러 가야 해서. 과메기 먹으러 가야 해서. 그래서 바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