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가운 볕과 신 커피와
육아휴직 기간동안 잘 쉬다 오라는 주변의 말이 어색했다. 하로를 키우면서 '육아'라는 단어는 '쉬다'라는 단어와 나란히 설 수 없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반응은 용어 탓인 듯 했다. 휴직이라는 단어가 뒤에 오니 무의식 중에 휴식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이리라. 아무래도 감귤은 귤이고 밤고구마는 고구마니깐. 회사의 입장에서야 육아휴직이 맞겠지만 내 입장에선 육아이직에 더 가까웠다. 머리와 글 써서 콘텐츠 만드는 일에서 팔다리허리손목 갈아서 사람 만드는 일로, 직무와 일터가 바뀌는 일이었다.
하로로 맞아 본 매라 아픔을 알았다. 고통을 복기했고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이제 눕고 싶을 때 못 눕고 자고 싶을 때 못 자고 먹고 싶을 때 못 먹을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벌고 싶을 때 못 벌 것이다. 옛날처럼 버거킹 시키기 전에 잔액 확인을 먼저 해야할 지도 모른다. 이 대목에서 잠깐 현기증이 났다. 그래도 하나 자유로운 게 있다면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다는 것 정도겠지. 못눕고 못자고 못먹고 못벌지만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삶이라. 그래 보고 싶을 때 방문 열고 볼 수 있는 것만으로 마진 남는 삶이지. 많이 남는 생이지.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며 휴직 첫 날을 맞이했다.
휴직 한 달 째. 모든 게 예상 밖이다. 딱 하나, 벌고 싶을 때 못 버는 것 빼고 나의 미래시는 모두 빗나갔다. 나는 지금 자고 싶을 때 잘 자고 먹고 싶을 때 잘 먹고 눕고 싶을 때 잘 눕고 물론 보고 싶을 때 잘도 본다. 심지어 쓰고 싶을 때 쓴다. 지금처럼. 초반의 각오가 무색할 만큼 낮밤이 평화롭다. 이정도면 육아이직이 아니라 육아휴직이 맞겠다, 멎쩍게 분유를 탈 때가 많다.
이로는 신이다. 인내의 신이자 잠의 신이다. 배만 불려 주면 잘도 방긋방긋. 눕혀 엎어만 주면 쌔근쌔근. 저녁 아홉 시면 잠들어 여섯 시까지 낑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내리 잔다. (물론 하로는 여전히 두 세번 깨어 드잡이질 한다. 애미야 방이 덥다, 애비야 자리가 좁다, 코고는 소리가 시끄럽다 등등..) 낮에도 갓기 모드다. 정욱님이 준 모빌을 틀면 30분은 자유다. 인자하신 아기이로님. 오늘도 고맙습니다. 토실토실한 볼에 코를 부비며 하루에도 몇 번이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신에게는 이정도의 예의가 필요하다.
물론 귀찮은 일들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밥 달라 똥 닦아라 침 닦아라 어여 와서 날 도로 뒤집어라. 신의 요구사항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하지만 하로 때를 생각해보면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어느날 집 앞에 삼신할매가 찾아와 순한 아기 줬으니 돈 내놓으라 칼을 겨누면 퇴직금까진 줄 수 있다. 둘째가 이런 것인지 둘째라 이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우리집 둘째는 이렇다.
이런 이로가 태어나고 백일 넘도록 지후는 잘 웃지 못했다. 부정 탈까봐. 또는 믿기지가 않아서. 좋은 패를 손에 쥔 포커플레이어처럼 굴었다. 말버릇처럼 아직 몰라, 했다. 위기의 순간도 많았다. 스스로 잠들어(!) 세 시간 넘도록 낮잠 자고(!!) 스륵 깨어나 울지도 않고(!!!) 꼼지락 거리며 노는(!!!!) 이로 앞에서 지후는 비실비실 새어나오는 미소를 겨우 주워 담았다. 상대가 올인하고 턴을 넘길 때 까지, 판돈이 확실하게 내 것이 되기 전까지는 섣불리 기뻐하지 않겠다는 진지한 각오가 돋보였다.
*이제 지후는 웃는다. 이 갓기가 내 아이라니! 하면서.
순한 이로 덕에 하로가 어린이집에 가있는 낮시간 동안은 지후와 번갈아가며 개인 시간을 보낸다. 나는 작은 정원이 있는 카페를 주로 찾았었다. 왜 과거형이냐면 이제 안 가기 때문이다. 네 번째로 방문했던 날 빈 잔을 반납하다 실수로 잔을 터트리는 바람에 다시 찾지 못하고 있다. 정말로 잔이 터졌다. 잔은 보통 깨지지 않나? 나는 바닥에서 그렇게 터지는 잔은 처음봤다. 폭발에 넋이 나간 사장님이 영혼 없는 표정으로 괜찮으니 가시라 했고 역시 넋 나간 나는 가장 죄송한 표정을 지으며 뒷걸음질로 문밖을 나섰다. 다시는 가지 못하는 장소가 하나 늘었다. 2층 구석자리가 평화로웠던 카페였다.
폭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대안으로 지혜의 숲에 정착했다. 파주 거주의 장점이다. 차로 10분 거리다. 11시 전에는 사람이 없다가 오후에 사람이 찬다. 나는 10시에 와 창가 자리를 맡는다. 서남서향의 널찍한 창가엔 오후 세 시 쯤부터 본격적으로 해가 든다. 해가 들기 시작하면 양 옆은 블라인드를 내리느라 분주하지만 나는 잠자코 앉아 빛의 온도를 느낀다. 나는 오후의 볕을 좋아한다. 지후가 옆에 있었다면 자외선이니 기미니 하면서 뭘로 뭘로 얼굴과 팔을 끈적하게 만들었을 볕이다. 따사롭다고 우기고 싶지만 솔직히 쫌 따가운.. 볕을 쬐면서, 은희경을 읽었다. 제목만 읽었다. 오늘은 쓰고 싶었고 원신도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오 년 만에 브런치에 글을 썼다. 오 년 사이에 많은 것이 변했다. 우선 상구가 아진이 되었고.. 나머진 뭐 기타 등등의 변함이다. 첫 글은 편지를 썼다. 나는 편지를 쓰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에겐력이 정신을 지배하는 탓에 잘 쓰지 않는다. 겉티속엪 혹은 낮티밤엪. 별 그지같이도 태어났다. 사람이 일관성이 없다. 아무튼, 대상이 없는 편지라면 괜찮지 않을까 스스로와 타협하면서 펜을 꾹꾹 눌러 적어 담았다. 오래 참던 똥을 눈 기분이다. 누구는 내가 오글거리는 글을 적어 내놓을때마다 '똥 싸고 있네'라고 했었다. 그 말에 기분이 똥같아지는 것과는 별개로 말 자체는 옳다고 생각했다. 나는 똥 오줌 땀 방귀 트름 말고도 주기적으로 감성의 노폐물을 배출해야 하는 체질이다. 물론 내 오글거림이 똥이라면 굳이 남들 보는 데에서 눌 필요는 없겠지만 똥 까지는 아니고 땀 정도는 되지 않을까, 땀 정도는 남들 앞에서 흘려도 되는 거 아닌가, 남의 땀에 너그러운 이들도 제법 있으니깐.. 쩝.
나까지 다섯 명이 있는 단톡방에 용기내어 지리산에 같이 가달라 했다. 한 명만 좋다 하고 나머지는 답이 없다. 다들 또 이상한 소문을 들은 것 아니야? 지병이 도진다. 머리가 뜨거워진다. 말하지 말 걸. 괜히 나댔어. 둘이 가긴 좀 그런데. 은희경 씨도 셋이 좋댔잖아. 올해도 둘레길은 못 갈 것 같다. 책이나 읽자. 글이나 쓰자. 나무위키를 보자. 레고를 조립하자. 하로 하원 시간이다. 하로는 나를 믿지. 김하로 쫄래쫄래길이나 뒤쫓아야 할, 싫지 않은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