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박 느린 내 착함

세상이랑 씽크가 안 맞네

by 김아진

이틀 째 단수다. 그리고 난 이틀 사이에 세 명의 목숨을 살려주었다. 파주 시장, 수자원공사 사장, 그리고 송수관을 터트린 인부의 현장 총 책임자까지. 깊은 고민 끝에 세 명 모두 용서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 그들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겠지. 예정돼 있던 일정을 미루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대처가 좀 늦을 수도 있지. 아까 잠깐 나왔던 그 물이 마시면 안 되는 물이었다는 [긴급 문자]가 물이 나온 지 [2시간이나 지난 후]에 올 수도 있는 것이지. 이미 그 물로 라면 끓여 먹었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인생에서 늦게 오는 게 어디 문자 뿐인가? 정글만 안 늦으면 되는 거지. 송수관도 뭐 일부러 터트린 건 아니겠지. 피치못할 이유가 있었겠지.


그들을 좀 더 빨리 용서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내 몸 어디에선가부터 올라오는 불쾌한 냄새가 인중에 닿을 때마다 그들이 미워서 견딜 수 없었다. 사실 정말로 미운 건 고작 이틀 안 씻어줬다고 이만큼이나 시위하는 괘씸한 내 몸뚱이였지만. 사실 진짜 진짜 정말로 미운 건 단수 이틀 전부터 안 씻은, 그래서 실은 도합 나흘 째 샤워 안 한 사람이 된 나 자신이었지만. 사실 진짜 최종 마지막의 파이날로 미운 건, 나흘 동안이나 못 씻어서 느껴지는 이 찝찝함이 딱히? 낯설지만은 않은? 내 인생?이었지만.




“이따가 단수 될 거래.”


단수가 처음으로 예고 된 건 어제 오후였다. 바깥에서 볼일을 보고 돌아오니 지후가 소식을 전해주었다. 지후는 저렇게 안 괜찮은 소식을 이렇게 괜찮은 말투로 전해도 되는 건가 싶은 차분함을 곧잘 유지한다. ‘단수’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심장이 요동치는 나와 달리 지후는 평온한 태도로 그릇닦기를 계속 했다.


- 단수? 언제부터? 언제까지? 욕조에 물 받고 있어? 정수기 물은 받아 놨어?

"몰라, 송수관 문제래. 그리고 안내 방송 나왔는데 욕조에 물 받지 말래. 다들 욕조에 물 받고 세탁기 돌리고 하는 것만 자제해 주면 지금 저장되어 있는 양으로 밤까진 괜찮을 거래."


맙소사. 많이 많이 맙소사. 이 답답아. 이 순진아. 주님, 정말로 존재하신다면 지후만큼은 진짜 아묻따 천국 자유이용권 끊어 주셔야 합니다. 보셔요. 정말로 착하잖아요.


- 아니 여보, 그래도 받아 놔야지. 지금 우리 빼고 다 받고 있을 걸? 지금 그 뭐냐, 그래, '의심의 사슬'이 발생한 거라고. 비상이야 비상! 자연선택호가 망설이다가 어떻게 됐는지 기억 안 나? 아 자기 삼체 안 읽었댔나? 내가 삼국지 초한지 삼체는 꼭 읽어야한다고 말 안 했었나?


속사포처럼 내뱉는 말이 지후 귀에 닿기도 전에 나는 이미 욕실에 도착해 있었다. 블루스페이스호는 못 될 지언정 무한법칙호 정도는 돼야 덜 억울하지.


"아 안돼! 그러면 물 금방 끊긴 댔어! 다른 사람들은 어떡해!"


안타까운 말투로 다그치는 지후의 목소리엔 어딘지 모르게 자신감이 없었다. 그마저도 이내 최고 수압으로 쏟아지는 물소리에 잠겨 사라졌다. 여보, 세상엔 모조리 개새끼들 뿐이야. 다들 욕조에 콸콸콸 물 받고 있을 걸? 개새끼들. 개새끼들 무리에서 살아남으려면 우리 가족 중에도 개새끼가 하나 있어야 해. 왈왈.


얼굴도 모르는 불특정 다수의 이웃들을 멋대로 개새끼로 치부하며 혼자 씩씩 거리는 꼴이라니. 아. 내 인성엔 확실히 문제가 많다. 이웃이 사촌이었던 90년대였다면 난 패륜아였겠지. 근데 뭐 어쩔건가. 지금은 2025년이고 이웃사촌 같은 건 다 옛말인데. 무심코 고개를 돌리자 그새 불그스레 상기된 내 얼굴이 거울에 비친다. 와 정말 못났다. 심술궂은 것 좀 봐. 콧구멍은 왜 커졌대? 저런 표정 지으면서 살면 마흔 쯤엔 관상 개썩을 것 같은데. 나레기, 괜찮아?


미래의 관상 걱정은 당장의 단수 걱정에 자리를 내줬다. 마음이 급하다. 최소한 욕조의 반은 받아야 한다. 하로 손발 씻기고, 물 끓여서 이로 목욕 시키고, 지후랑 나 세수 양치하고- 하는 데에는 그렇게 많은 물이 필요 없지만. 까짓거 여차하면 안씻으면 그만이지만. 변기 물. 이거 진짜 좆된다.


똥은 마치 사랑과도 같아서 만남은 쉽지만 이별은 어렵다. 변기 물을 한 번 내리는 데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양의 물(최소 삼다수 큰거 세 통)이 필요하며 변기 물을 못 내리는 상황이 되면 괜히 똥이 더 마려워진다. 막 갑자기 변비가 낫고 그런다. 그리고 변기 물 못내리는 상황 반나절이면 중세유럽 길거리 체험 페이즈로 강제 진입하는데 이게 꽤나 고역이다. 어른 둘에 애 둘, 도합 넷의 쉬야끙아를 기약없이 변기에 적립하는 생을 사느니 그냥 인성 빻은 사람 되는 게 나은 선택이다. 참고로 이건 견해가 아니라 공리다. 곱게 자라신 여러분들은 그냥 외우시라.


끊기지 마라 끊기지 마라. 거센 물줄기를 지켜보며 초조하게 물멍 때리는 와중에 머릿속에선 잡생각이 몰아친다. 물을 쎄게 틀면 왜 불투명해질까? 속도 문젠가? 투명한 페트병도 존나 빨리 흔들면 불투명하게 보이려나? 이건 잔상입니다만, 뭐 그런 건가? 이따 한 번 해봐야겠다. 아 맞다, 끊기지 마라 끊기지 마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염불을 외다 보니 어느덧 욕조의 반이 찼다. 해냈다. 우리집은 이제 완연한 19세기에 접어들었다. 나만의 작은 산업혁명이 눈 앞에 넘실넘실 일렁이고 있다. 이정도면 적어도 나흘 정도는 중세유럽으로 퇴보할 일은 없을 거다.


콸콸콸-에서 두두두-로, 물받는 소리가 제법 중후해지자 마음이 살살 너그러워진다. 맑게 찰랑이는 욕조물을 바라보는 내 표정이 이완제를 맞은 것 처럼 사르르 풀린다. 이제서야 양심 한 구석에서 딴청 피우던 측은지심이 슬쩍 고개를 내민다. 아이구 다른 사람들은 어쩌나. 우리야 집에 있었으니 다행이다만 이따 저녁에 퇴근하는 사람들은 완전 날벼락일텐데. 에구 가여워라. 음 그래, 욕조를 가득 채우진 말고 좀만 더 받고 끄자. 아껴쓰면 되니까. 나머지는 양보하자. 퇴근하고 똥 누는 게 루틴인 이웃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누구나 자기 전에 똥 한 번은 눌 권리가 있지. 기분이다. 이쯤 할게요. 모두들 물 한번 시원하게 내리세요.


욕심을 더 부릴수도 있었지만 딱 열까지만 더 세고 물을 껐다. 아니 열 다섯이었나? 스물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스물 하고도 둘셋 더..? 음음.


언제나 그랬듯 결과적으론 내 판단이 옳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떡해!"에서 내가 그 '다른 사람'이 될 뻔했다. 물은 단수 방송 한 시간 만에 동이 나버렸다. 아껴서 쓰면 예닐곱 시간은 거뜬하다는 관리사무소의 독려 방송이 본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예닐곱 시간 안에 물 안 받아두면 큰일납니다.'라는 뜻의 경고 방송 역할을 해버린 것이렸다. 방송이 끝나자마자 수백 세대의 수도에서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겠지. 욕조 가득 물을 받은 사람들도 많겠지? 쯪쯪. 양심도 없는 사람들.


- 나는 그래도 반 조금 넘게만 채우고 딱 껐는데. 욕조 가득 채운 집들도 있을 거야 그치? 아주 그냥 욕심만 그득그득 해가지고. 그 사람들보단 내가 덜 못됐다. 맞지?


지후는 왜? 대답이 없는지.





나의 착함은 언제나 반박자가 늦는다. 그래서 세상과 싱크가 맞지 않는다. 계산은 진작에 다 끝났는데 뒤늦게 자기가 쏘겠다며 허둥지둥 카드를 내미는 사람처럼. 세상에 착함이 필요할 땐 내 몫을 챙기는데 몰두하다가 착한 사람들이 제때제때 착함을 제출해서 이젠 딱히 착함이 필요 없을 때, 그제서야 기어나온 착함을 슬며시 내민다. 정박에 딱딱 맞춰 착해야 착한 사람인건 나도 압니다만. 반박자, 어쩔 땐 한박자까지도 꾸물거리는 나라는 인간. 아아 그래요 나는 못된 사람입니다.


나의 착함에는 욕조 반 만큼의 물이 필요하다. 어쩔 땐 내가 먼저 쓸 돈 십만 원이 필요했다. 또 어쩔 땐 일단 내가 먹을 치킨 세 조각이 필요했다. 어쩔 땐 늦잠이 필요했다. 나의 이타심엔 늘 조건이 붙었다. 내 몫이 충분할 것. 일단 내가 충분히 여유롭고 만족스러울 것. 내 컨디션이 좋을 것.

- 한 달에 오 만원 씩 기부하라구요? 일단 한 달에 오 만 원씩 넷플릭스랑 유튜브 프리미엄이랑 티빙이랑 디즈니 구독하고 돈이 남으면 그때 하겠습니다. 돈 남았냐구요? 남긴 남았는데 이 돈은 저녁에 초밥 시켜 먹어야 해서요. 잘 먹었냐구요? 잘 먹었구요, 돈.. 남아 있죠. 근데 다음달에 느비예트가 복각하는데... 아휴 그럼 이렇게 합시다. 삼 만 원씩만 자동이체 하겠습니다.


한 달에 삼 만 원. 사실 통장에서 슬며시 사라져도 모를 돈이다. 나는 부자이기 때문이다.

뻥이고 그냥 씀씀이가 헤퍼서 여기저기 돈이 슝슝 새어나가는 마당에 같이 휩쓸려서 새어나가도 모를 거란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을 돕는 삼 만원'은 '나를 돕는 삼 만원'을 수차례, 수십 차례 반복하고 나서야 제 순번이 돌아온다. 내가 쓸 물을 충분히 확보하고 나서야 다른 사람 쓸 물이 걱정되고 내가 배부르고 나서야 배곯는 이들이 신경쓰이고 워크샵에선 일단 잘 수 있을 때 까지 자고 나서야 뒷정리고 자시고 할 의욕이 생기는 나라는 인간.


이런 내 모습이 한심할 때도 많았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한심한 내 모습보다도 더욱 한심했던 건 이런 내 태도를 고쳐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이다. 이정도 착함이 내 최선이라고 그냥 못 박아버렸다. 착하긴 글렀고 덜 못되게 사는 게 나의 최선이라고. 언제였던가 눈 내리던 날, 다이제를 우걱우걱 씹으면서 인정해 버렸다.


세상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욕조에 물을 받기 전부터 착한 사람(정박자), 욕조에 물을 반쯤 받았을 때부터 슬슬 착해지는 사람(반 박자 늦음), 욕조에 물을 다 받고도 안 착해가지고 아주 그냥 냄비랑 대야까지 꽉꽉 채우는, 결국 그 물 다 쓰지도 못하고 배수구에 흘려 보낼 사람(그냥 박자 맞출 생각 자체가 없음). 나는 이 중 박반자 늦게 착하는 부류에 속하는 셈이다. 메트로놈이 백 번째 왔다갔다 했는데도 아직도 안 착한 저기 저거 저 자식 보다는 그래도 내가 낫다고 위로하면서, 나는 그래도 반 박자만 늦는다고 합리화 하면서 착한 사람들에 기생해서 살아가는.


안타깝게도 하로가 이런 나를 꼭 닮았다. 제 손과 접시에 과자를 가득 채우고 나서야 엄마에게 겨우 한 조각 양보한다. 그것도 아까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하나도 안 안타깝다. 적어도 남 좋은 일만 하면서 살진 않겠구나, 그래 네 몫은 야무지게 챙기고 살아가렴, 내심 안심이 되면서 심지어 흐뭇하기까지 하다. 이게 흐뭇까지 할 일인가? 그 틈을 못 참고 못돼쳐먹은 나레기여. 아 근데 하로가 날 닮은 게 아닌가? 그냥 모든 아이들이 하로 같은 거고, 내가 그냥 덜 자란 채로 덩치만 커져버린 건가?


그래도 하로(4세)보다 내(37세)가 살짝 나은 건, 나는 '우리' 라는 범주 안에서는 꽤 너그럽다는 거다. 밥은 항상 내가 사주고 싶고 술값은 항상 내가 내고 싶고 인턴분 커피도 내가 사주고 싶고 맛있는 안주엔 젓가락질 좀 덜하기도 하고 다들 슬금슬금 꺼리는 귀찮은 일 까짓거 그냥 내가 해버리면 그만이고. 근데 문제는 그 '우리'가 좀 좁다는 거... 딱 우리 가족이랑 우리 팀, 나랑 갠톡 했던 사람, 단톡방 있던 사람, 같은 프로젝트 했던 사람 정도가 내가 생각하는 '우리 같은 우리'다. 그 외에는 그닥 관심이 없다. 우리 팀원이 밥을 못 먹었다면 내 밥 반 떼서 나눠주겠지만 다른 층에 있는 우리 회사 사람이 밥을 못 먹었다면 아이구 안타깝네요.(쩝쩝) 우리 나라 사람 중에 굶는 사람이 많다구요? 아이고 가여워라.(우걱우걱) 얼굴 맞댈 일 없는 사람에게 내 이타심은 매몰차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어딘가엔 있겠지. 생각보다 많을지도 모른다. 착하지도 못되지도 못한 어중띤 사람들. 착한 것 같다가도 어쩔 땐 또 심보가 고약하고, 못돼 쳐먹었네 싶다가도 어쩔 땐 웬일로 본인이 희생하는 그런 사람들. 이름 모를 여러분, 우리는 앞으로도 이모양이겠지요. 우리 이번생에 착하기는 글렀으니 덜 못되게만 살아갑시다. 착한 시늉이라도 하면서 살아갑시다. 가급적 착한 사람들이랑 붙어 지내면서 그 착함들이 내게 이염되길 기도하면서 살아갑시다. 우리 욕조는 꼭 반만 채워요. 그렇게 살아갑시다. 아멘.




아파트너 앱 속은 소리 있는 아우성들로 가득이다. 이제 막 퇴근한 사람들, 맞벌이 부부, 여행갔다 온 사람, 저녁 약속이 있던 사람들- 집에 돌아 오니 물이 안 나오는 거다. 씻는 건 고사하고 변기 물 내리는 것도 곤란한 처지를 맞딱드린데에서 오는 분노가 느껴진다. 무엇보다 ‘한발 늦었다’는 사실에 대한 탄식. 그들의 공통된 탄식이 내게는 들린다.


"조금만 더 빨리 집에 왔었더라면!"


조금 더 빨리 집에 있었던 나는 오늘도 조금 더 늦게 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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