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밀물처럼 눈 뜨고 썰물처럼 눈 감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건 바다의 생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풍경처럼 살고 있는 것이지요. 걸음 바쁜 이들이 모래 위에 남기고 간 발자국이나 가만 구경하면서, 기꺼이 그들의 배경이 되고자 합니다. 하지만 파도를 철썩이는 일만큼은 멈추지 않지요.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내 파도의 모양이 제각각 다르다는 것을요. 무심한 자들은 지나며 생각할 겁니다. 아 지루한 파도, 똑같은 파도, 철썩이기만 하네...
이왕이면 서쪽 바다가 좋겠습니다. 동쪽에는 아주 커다랗고 커다란, 산이 있을 겁니다. 그 산이 나무가 잎사귀가 그 다정한 초록들이.. 한낮의 쨍한 해를 가려줄 겁니다. 해가 서서히 힘을 잃어가는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모래 알갱이에 연약한 빛이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한낮의 뙤약볕과 달리 늦은 오후의 햇살은 인자합니다. 그래서 나는 서쪽이 좋습니다. 나는 주황색 노을이 좋습니다. 언젠간 작은 정원이 있는 북서향의 내 집에서 꾸벅꾸벅 졸고 싶습니다.
나는 아이를 안고 서있습니다. 아내의 말을 빌리자면 '깐 계란'처럼 귀여운 아이입니다. (아내는 때로 감탄이 잘로 나오는 비유를 하곤 합니다.) 아이의 숨에선 왜인지 빵 굽는 냄새가 납니다. 아이는 종종 하품을 합니다. 아이가 하암 하고 숨을 들이마실 때, 나는 금방이면 나올 그 작은 날숨을 애타게 기다리며 코를 가까이합니다. 그 순간이 나는 무척 초조하고 행복합니다. *냄새가 귀여울 수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머리 위엔 구름이 흐릅니다. 가본 적 없는 곳에서 온 구름입니다. 그 구름은 가볼일 없는 곳으로 영영 흐릅니다. 가본 적 없는 곳에서 와 가볼일 없는 곳으로 흐르는 구름을 볼 때 나는 태어난 적 없는 당신의 본 적 없는 얼굴이 그리워집니다. 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써내려 갑니다. 부치지도 않을 편지를요.
나는 이제 띠꺼운 새끼가 아닙니다.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듣다보면 기분이 좆같아지게 말을 하는 재주가 있는 새끼가 아닙니다. 어어, 돌려 말하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대신 말을 좀 더듬게 되었습니다. 음, 어, 그러니까, 뭐랄까- 스흡 - 어, 따위의 추임새로 보다 부드러운 어휘를 골라낼 시간을 법니다. 어쩔 땐 이런 내 모습에 존 오셰이가 겹쳐 보입니다. 어떤 하루에 존 오셰이는 그럭저럭 골키퍼 역할을 잘 수행해냈습니다. 그러나 내 기억에 존 오셰이는 뭐랄까요, 음, 이도저도 아니었던 선수로 남아 있습니다. 나는 존 오셰이의 하루를 여러 개 살고 있는 셈이지요. 가끔은 하나의 생을 통째로 살아볼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 지금은 좆같지 않은 새끼이고 싶은 마음이 더 큽니다.
여전히 아무도 감탄하지 않을 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하늘의 모양을 좋아합니다. 나는 누구도 배경으로 두지 않는 불상의 뒷면을 찍습니다. 모두가 스쳐 지나는 낡은 간판을 오래도록 쳐다봅니다. 개미의 걸음 수를 세어 봅니다. 하얀 도화지 귀퉁이를 마저 색칠하는 기분으로 그 모든 걸 찬찬히 훑습니다. 나라도 기억해야 할 것 같아서요. 나 같아서요. 어쩌면 당신 같아서요. 혹시 나는 그것들이 부러운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직 몇 사람만이 온 힘을 다해 기억해주는 생이라니..
마음에 부슬비가 내리는 날이면 산기슭에 올라 작은 바위 뒤에 숨어 앉습니다. 연필을 손에 쥡니다. 눅눅한 초콜릿 한 입을 베어 뭅니다. 단맛은 눈앞의 안개처럼 모호합니다. 주변의 경관은 회색일까요 녹색일까요? 마을 사람들은 내가 사라진 줄도 모릅니다. 몇몇은 알지요. 나는 그들을 위해 다시 산을 내려갑니다. 몇 자 적힌 초콜릿 은박을 구겨 주머니에 넣는 일은 잊지 않습니다.
창밖의 빗소리가 줄어듭니다. 서랍에 있던 라디오를 꺼내 주파수를 맞춥니다. 켠 라디오를 다시 서랍에 넣습니다. 신호를 잡지 못한 라디오가 내는 이 소리를 당신도 좋아하게 될까요? 치직- 지익- 칫칫, 지저분한 잡음이 섞인 웅웅거림에 나는 곧잘 안도합니다. 라디오 속 세상과 나의 거리가 느껴져서요. 얼마간의 고립은 나를 안도하게 합니다. 우리는 떨어져 있다, 닿을 수 없다, 어긋나있다.. 엿들을 사람 하나 남지 않았으면서도 잔뜩 소리 줄여 낮게 되뇌입니다. 그러나.
고립이 주는 안도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나는 금세 애닳파집니다. 닿지 못해 지직 거리는 목소리가 점점 더 궁금해집니다.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입니다. 그래도 잘 들리지 않아 더이상 참을 수 없게 된 나는 발을 동동 구를 겁니다. 이윽고 서랍을 열고 안테나를 이렇게 해보고 길게 뽑아보고 라디오를 창가에 놓아도 보고.. 그러면 마침내.. 나는 이 과정이 참 마음에 듭니다. 엽서가 그랬을 것 같아요. 아, 내가 그 시절을 살았어야 했습니다.
(여기는 안테나 달린 라디오가 귀한 세상입니다. 디지털이란 도둑이 세상의 모든 잡음을, 어긋남을, 고립을 훔쳐갔습니다. 이 도난사건에 관심을 갖는 경찰관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니 자동차로 이동하는 날엔 잠시동안 93.8에 머무는 것이 좋겠습니다. 원한다면 107.6도 상관 없습니다.)
여전히 서로의 표정을 볼 수 없는 동시성을, 서로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동시성을 견디지 못 합니다. 나는 카카오톡을 잘 읽지 못합니다. 답장도 잘 하지 못 합니다. DM도요. 늘 미안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이메일과 문자 메세지와 방명록을 주고받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나에겐 약간의 시차가 필요합니다. 아, 내가 그런 시절을 살았었죠.
시대와 나의 이격은 너와 나의 이격이기도 합니다. 나로서는 누구와도 관계를 지속하기 어려운 세상입니다. 침묵은 오해를 낳고 오해는 나도 모르는 나를 그려내는 탓입니다. 목소리와 표정이 없는 연결은 도대체 무엇인가요? 사람들은 왜 아무렇지도 않나요? 말보다 무거운 글을 어찌 그리도 당장에 술술 써내려 가나요? 영영 다시 읽을 수 있는 그 글들을..
세상의 모든 흔적과 자국이 사라집니다. 이 실종사건에 관심을 두는 경찰관은 아무도 없습니다. 연필로 쓰고, 지우고, 썼던 자국이 남고, 연필로 쓰고, 직직 긋고, 직직 그어 가린 무언가가 남고.. 종이를 구기고, 구겨진 종이가 남고.. 여하튼 무언가가 남겨지던 시절이 분명 있었지요. 나는 압니다. 지우고 가리고 구겼던 것들이 우리의 진심이었다는 것을요. 키보드 앞에서 혹은 바쁜 엄지 앞에서. 당신은 얼마나 많은 진심을 소멸시켰을까요? 그 진심들은 흔적조차 남기지 못 했습니다..
어느날엔가는 단단한 집게를 들고 유랑하면서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백스페이스를 뽑아버리는 상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세상의 대화가 제 속도를 되찾겠지요. 당신과 나의 대화는 아주 느려지겠지요. 만약 당신에게 답장이 영영 오지 않는다면.. 아니요, 나를 그렇게까지 사랑할 필요는 없습니다.
집게를 든 그 유랑에 당신도 동행해 주시려나요? 내 말에 모두처럼, 비웃어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비가 그쳤습니다. 마을로 내려갈 시간입니다. 여기 하늘은 파랑. 눈 앞은 초록.
태어난 적 없는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