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들 4

노트에서 일부를

by 김아진



물이 밉지는 않았습니까?

내가 좋아 잠긴 탓이겠습니다


- 無名 익사자와의 一答






발자국이 깊이 찍히지 않는 것은 체중이 적게 나가는 탓이라며 투덜거리는 그의 몇 마디 불평은 철썩이는 파도 소리에 묻혀 벙긋 거리는 묵음으로 허공에 흩어져 지나던 갈매기의 겨우 한 입 거리 먹이로 소멸하였습니다


오기인지 심술인지 거듭 발길질 하며 제힘껏 모래를 찍어 눌러 흔적을 남기려는 그의 모습이 하도 미천하여 망령스럽다가 그 위태로운 발길질의 성과가 고작 영점몇센티를 파고 들어간 깊이라서 우스꽝스럽다가 묵묵한 파도가 그 영점몇센티마저 무심하게 쓸어 내려가 아무일도 없던 것이 되어버리는 광경을 보고 나서는 가슴이 찬 공기처럼 서늘해져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내가 본 것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바다였고 모래사장은 매끄런히 가지런하였습니다


시든 강아지풀처럼 나풀이는 그의 옷깃 너머 시야에 닿은 바다가 그야말로 평온한 망망대해였으므로 마음은 회색 연기가 가득한 것처럼 먹먹인지 막막인지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다


해묵은 말이라도 건네며 한겻 쯤 기다려줄까 하는 생각이 일순 들었지만 일정한 주기로 오가는 파도의 일과가 무척이나 무심하게 성실한 탓에 젖은 마음 가로저었습니다


흔적 남겨 무엇 하겠느냐 그저 트인 바다를 본 것으로 되었다는 그의 목소리는 이번엔 저음의 뱃고동 소리에 짓눌려 마치 울음처럼 들리고 갈매기 울음처럼 들리고 하찮은 포유류의 사소한 짖음처럼 들리기도 하고...

- 파도의 일과






건물을 청소 하시는

아주머니에게

고개를 푹 숙여

인사를 합니다


꺾어 내린 고개의 각도만큼

올라간 목소리의 옥타브만큼

환해진 표정의 밝기만큼


우리는

오늘도 착했습니다


- 멋진 교양인들





피해자는 있는데

용의자가 없는

기묘한 사건을 의뢰 받았다


스물 몇 살 쯤의 여인은

자신이 입은 피해를

가장 처량한 자세로 비밀처럼 속삭였다


누가 당신을 그리 만들었냐고 묻자

진흙같은 눈물을 쥐어 짜내던 여인은

갑자기 울음을 그치더니

누구도 자신을 해한적 없다 했다


매일 저녁께 찾아 오는 바람이
창밖을 스쳐 지나

노을에 닿을 때면


철지난 옛기억의 마찰음이

굉음처럼 마음에 번지는데


그 질퍽한 메아리가

타인이 빚어낸 소리가 아님을

본인도 안다고 했다


아, 그것은 말이지요

나 같은 탐정이 아니라

의사를 찾아 가시라


도장을 찍어 돌려 보냈다


- 탐정 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