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에서 일부를
나는 오늘 저녁에
무한의 크기를 알아버렸습니다
그것은 두렵고도 놀라운 발견이었습니다
당신과 세 번 째로 눈이 마주친 직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 束縛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카페로 모여 들었다
그들은 서로를 알지 못하였으므로
각자의 눈가에 고인 사연을
꺼내 놓지 못 하였다
바깥은 볕 내리는 여름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리에 앉아
마시지도 않을 음악을 틀어 놓거나
듣지도 않을 책을 펼쳐 놓거나
읽지도 않을 음료를 앞에 두었다
바깥은 아직 볕 내리는 낮이었으므로
누구도 카페를 나서지 못하였다
몇몇 사람들은 너무나 골똘한 나머지
저의 사연마저 잊어 버렸다
안의 공기는 차츰 무거운 날숨들로 채워지더니
바깥은 영영 볕 내리는 낮이었다
- 밤을 기다리는 사람들
마른 목소리를 내던 당신은 말이 없다가
라디오를 끄더니 문득
실망은 날씨처럼 찾아오는 법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당신에게 까닭없는 먹구름이 드리우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당신이 말했던 날씨 안에서 축축히 젖어 걷는 요즘엔
부러 우산을 잊어보곤 합니다
어차피 우리는 시리고 타는 날씨를
내내 견디며 살아오지 않았던가요
어떤 에스키모인은 불멸의 미소마저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오늘처럼 바람에 마음이 베이는 겨울 날씨가 날씨처럼 찾아 올 때
쬐일 모닥불 장작에 쓰라며
세상에서 가장 작은 성냥 한 개비 던져 준다면
나는 족하겠습니다
던져져 나울거리는 가시랭이의 궤적이
두 계절을 건너 닿아
그것으로 내 마음은 여름이겠습니다
- 에스키모의 미소
나는 겨울이 좋아. 다가가지 않아도 어느샌가 내 곁으로 와주는 그런.
있잖아 A. 그건 다른 계절도 마찬가지인데.
그런긴 해. 하지만 난 어렸을 때부터 사계절 중 겨울을 가장 좋아했는 걸
왜 겨울이 제일 좋은데?
말했잖아. 다가가려 애쓰지 않아도 내 곁에 와주는 계절이니까.
그러니까, 그건 다른 계절도 마찬가지잖아.
그렇지만 난 다른 계절보다 겨울이 유난히 좋단 말이지.
왜지?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 듣겠어? 다가가지 않아도 내 곁으로 와주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했잖아.
나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해할 수 없군.
A는 토끼처럼 동그랗게 뜬 눈으로 물었다.
이해할 수 없다니?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다는 뜻이야.
그녀는 오히려 내 말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리야. 나는 겨울이 좋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잖아.
나는 점점 답답해졌다.
T는 항상 너무 깊게 생각하는 것이 탈이야.
내가 방금 깊게 생각한 건가?
물론. 답답할 정도로.
나는 그만 실없이 웃어버렸다.
- A와 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