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긴 감정들
살아가면서 누구나 대화라는 걸 하면서 살아간다.
“밥 먹었어요?”, “요새 연애해?!” 이런 말들 참 흔한 말들이지만 관심이란 마음에서 파생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관심이 없다면 질문조차 오지 않겠지만. 반대로 관심 없어도 물어볼 수 있다. ‘소통’이란 걸 마음 말고 머리로도 배웠기에 빈말이란 것도 말할 수 있다.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쓰면서 대화를 나누지만
주로 머리로 대화를 하는 사람들은 이성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다. 즉 비즈니스적인 관계라고 흔히들 말한다.
반대로
주로 마음으로 대화를 하는 사람들은 감성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다. 즉 친한 관계라고 흔히들 말한다.
내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의아했던 것은 24시간 중 직장에 있는 시간이 못 해도 8시간
한 공간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을 헤쳐나가며 잠깐 웃고 떠들고 밥도 같이 먹는다. 이 정도면 가깝다면 가깝고 가족보다 더 오래 보는 것 같은데 대부분 사람들은 퇴근시간만 되면 남이었다는 듯 형식적인 인사를 하고 쌩하고 가버린다. 헤어짐은 타 업체와 미팅이 끝나고 났을 때랑 다른 점이 없었다. 팀원들에게 직장사람들과 사적으로 만날 수 있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날아오는 말은 “어휴 싫어요 직장사람은 직장에서만”라는 말로 되돌아왔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대화라는 것도 참 단순했던 것 같다.
뒷담, 재미나게 본 거 대화, 점심 메뉴 공유..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대화를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대부분 답변은 “굳이.. 왜?, 친구들한테 하는 걸”
직장동료가 친한 친구(절친)가 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걸 느꼈다.
직장동료가 친한 친구가 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는 이유를 두 가지로 정도로 추측해 보았다.
1
사람마다 마음이란 곳에 평수가 다른 것 같다.
마음에 들어올 수 있는 정원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누구는 감정적인 공유를 더 많이 할 수 있는 펜트하우스 같은 평수를 좋아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렇지 않게 원룸 같은 평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2
친하다는 말은 내가 가지고 있는 상처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에게 붙이는 말 같다.
직장이란 곳에서 상처를 보이면 그게 곧 약점이 될 것 같아 오히려 보이지 않고 숨기는 곳이다.
나의 상처를 숨긴다는 건 친해질 수 없다는 말과 같다.
상처의 흔적까지 보여줄 수 있는 사람, 아픔을 공유하는 사람을 친하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표현하는 것 같다.
이처럼
지나온 일생을 쭈욱 함께 했던 사람, 즉 어린 시절부터 시간을 보내온 사람이 친한 친구가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만큼 슬픔과 행복을 같이 공유했던 시간들이 많았을 테니.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땐 사람도 인간이기 전 동물처럼 경계를 한다. 그것이 본능적인 거리감이고 감정적인 방어이다.
차갑고 쓸쓸해져 가는있을 거라고 일상에서 사람들의 숨겨진 따듯한 내면을 보고 따듯한 말 한마디로 먼저 다가가보면 어떨까. 그 한마디가 삶의 하루와 사람의 대한 두려움을 깨줄 수 있는 말이 될 수도 있기에. 인간관계가 지쳤다고 하지만 혼자인 삶은 괴롭다는 걸 잘 안다. 누군가는, 아니 대부분 먼저 다가와주길 내심 기대하고 있을거라고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