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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젤라또 Mar 19. 2020

행보관들은 왜 그렇게 잡초를 뽑게 했을까?

Prologue



 나는 주특기 번호가 3421로 시작하는 흔히들 말하는 목관악기병으로 복무를 했지만, 실상 군대에서 가장 많이 했던 일이라면 부대 화단에 무성히 자란 잡초를 뽑는 일이었다. 우리 군악대장이 연습실을 잠깐 비우면 행보관은 연습실까지 쫓아와 잡초를 뽑는데 우리들을 동원시켰다. 한 여름 때악볕에서 잡초를 뽑고 있노라면, 잡생각은 사라지고 [시간과 정신의 방]에 들어간 손오공처럼 끝나지 않는 일과시간 속에서 간절하게 이 모든 것이 끝나기만을 기원하는 정신만이 남게 된다.





 워라밸이라는 유일한 자랑거리이자 모자란 급여를 그래도 인정하게 해주는 직장에 다니면서, 요즘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이 하나둘 마음 속에서 자라난다. 트렌드에 한창 민감할 나이인 삼십대중반(?)에 맞게 요즘은 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ment Early)에 꽂혀서 '그래 결론은 Money'라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이제서야 알고 여기저기 기웃기웃거리지만, 아직 여린 마음은 선뜻 자신이 없다. 오늘 하루 아무 생산적인 일을 한 것이 없어 마음 먹고 시작한 글쓰기 조차도 역시 중간에 몇 번을 썼다 지우다를 반복하다 이마저도 마무리를 짓는 것이 너무 힘들어, 수십분째 애꿎은 모니터와 대치 중이다. 비록 어느 하나 제대로 한 것은 없지만 오랜만에 쓸데 없는 미소가 자꾸 지어진다.




 행보관들은 왜 그렇게 잡초를 뽑게 했을까? 시간의 여유는 인간으로 하여금 딴 생각을 하게한다. 딴 생각은 괜한 현실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들기도, 안정감마저도 권태로 느껴지게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딴 생각을 하니...겨우 살 것 같다.

 


2020.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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