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그랬을 거야
by
이영희
Dec 4. 2024
불꽃이 보고 싶다
마당 귀퉁이에 화덕이 있었지
거기 엄마 계시던 친정집
온갖 것 다 태우셨지
북북 찢은 두꺼운 종이 상자들
쓸모없이 옹이 진 제법
굵은 통나무가 있었고
음식 쓰레기와
비닐봉지까지
부지깽이로 가만가만
더 잘 타라고 공기 층을 만들며 뒤적이던 엄마
나는 옆에 쪼그리고 앉아
삶을 어떻게 태워야 할지
화끈화끈한 얼굴로
불꽃에 묻고 물었지만
불길만 높이 솟았던
그래
마당 있는 집이면 좋겠어
작더라도 거기에
밤새 눈 쌓이면 쓸어 낼
빗자루와 큰 삽이 한편에 있고
그리고
화덕을 만들고 싶어
한 번씩 불 피우고
불꽃을 보면서 내 안의
쓰레기 같은 울분
서글픔을 태우는 거야
엄마도 그랬을 거야
집안의 온갖 쓰레기 걷어
태웠듯 쌓이고 쌓인
누군가를 향한 설움과 분노를
불꽃과 함께 훌훌 재로 날렸겠지
결국
엄마 따라
화장터로 가야 할 시간은
다가오는데
너는 꼭 천년만년 살 것처럼
세상 일을 떠드는구나
노벨상이 어떻고
이재명이 어떻고
윤석열이 어떻고
한동훈이 어떻고
김여사가 어떻고
테슬라가 어떻고
태워질 것들
언제쯤 마당 있는 집에서
오래된 성냥불을 그어볼까
.
.
keyword
심리
마당
엄마
29
댓글
댓글
0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작가에게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새 댓글을 쓸 수 없는 글입니다.
이영희
직업
에세이스트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있습니다. 그림을 즐깁니다. 수필집 <자궁아, 미안해> 2022년 봄, 출간했습니다
구독자
308
제안하기
구독
작가의 이전글
말일
작별하지 않는다
작가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