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나는 창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오늘은 또 얼마나 바쁘려나.’
‘출근’이라는 행위를 머리가 인식하자 반사적으로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했다.
그 답답함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자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했다.
“하아.”
그리고 습관처럼 뒤따르는 말을 마른침과 함께 삼켰다.
‘출근하기 싫다…….’
비 내리는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벌써 피곤함이 몰려왔다. 코 끝에는 눅눅하고 시큼한 비옷의 냄새가 스치는 환각까지 일었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건 고등학교 졸업 직후였다. 경력으로 치자면 정규직인 지금까지 피자얌에 몸 담은 지 어언 십 년이다.
좋고 싫음을 떠나서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한데 참 꾸준히 싫은 걸 보면 이 일은 정말 나와 맞지 않는 모양이다.
“아아, 오늘은 진짜, 진짜 출근하기 싫다.”
준비를 끝낸 나는 신발에 발을 욱여넣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작은 신발장 옆에 놓인, 애꿎은 우산꽂이를 노려 보았다. 우산꽂이에는 큰 마음먹고 산 알록달록 귀여운 장우산과 편의점에서 산 까만 비닐우산, 투명 비닐우산이 꽂혀 있었다.
나는 그날의 기분에 따라 우산을 골랐는데, 출근하는 날은 여지없이 까만 비닐우산이었다.
오늘도 역시 까만 비닐우산을 뽑아 들고 현관을 나섰다.
*
빠앙-!
빗길을 달리는 버스 앞으로 승용차가 끼어들었다. 버스는 크게 휘청였지만 곧바로 균형을 되찾았다.
하지만 갑자기 끼어든 승용차로 인해 큰 사고가 날 뻔한 버스의 기사는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기사가 승용차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그 소리가 이어폰의 노이즈 캔슬링을 뚫고 들려왔다.
그 순간, 한숨처럼 지나간 마음의 소리.
‘아쉽다.’
무엇이?
그대로 사고가 났으면 좋았을 텐데.
문득 이런 불경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일은 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당히 다칠 만한 그런 사고.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도 이런 생각을 하다니.
나는 스스로도 기가 막혀 실소했다.
사실 이런 불경한 생각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출근’이라는 행위에 유난히 거부감이 드는 날이면 이따금 떠올리곤 했다.
오늘처럼 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도로를 통제하고 교통이 마비되어, 대중교통은 물론 보행도 불가능한 상황이 생기기를.
그러나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국가적인 재난이 아니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니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태풍이 오나.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정해진 시간에 출근을 해야 했다.
죽어도 매장에서 죽어라.
이는 직속 상사인 점장이 내게 한 말이다.
물론 피자 가게에는 목숨을 잃을 만한 사고가 없다는 전제 하에, 산재 처리를 해 주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죽고 나면 그게 무슨 소용이지.
어차피 나는 보상받을 가족도 없는데 말이다.
비가 내려서인지 자꾸만 기분이 가라앉았다.
‘노래라도 신나는 걸 듣자.’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어 ‘신나는 출근길’ 애니메이션 플레이리스트를 골라 재생시켰다. 시작부터 강렬한 비트가 귀를 때렸다. 그럼에도 창 밖으로 흐르는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와 기분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플레이리스트의 네 번째 곡이 시작될 때였다. 지긋지긋한 정류장에 버스가 도착했다.
야속한 버스는 빗길에도 정체 없이 출근 시간을 지켜 주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버스에서 내렸다.
마침 하늘에 구멍이라도 났는지 비가 더 억수같이 쏟아졌다.
그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을 걸으며 그만, 또 생각을 하고 말았다.
‘출근하기 싫다.’
물 먹은 운동화가 납덩이처럼 무겁다.
버스 정류장에서 매장까지는 단 삼 분 거리.
그 짧은 거리를 걷는 동안 나는 온몸으로 비와 맞섰다.
‘우산은 왜 쓴 거지.’
나는 비에 젖은 옷을 허망하게 내려다보며 횡단보도 앞에 섰다.
고개를 들자 정면에 피자얌 간판이 보였다.
이제 횡단보도만 건너면 출근이다.
가슴이 답답하다. 이제 버릇이 되어 버린 한숨을 또 내쉬었다.
머지않아 보행자 신호로 바뀌었다. 신호라도 천천히 바뀌기를 바랐건만.
나는 도로 양쪽을 살피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중앙선을 지나고,
일차선을 지나고,
이차선만 지나면 출근이다.
그런데 내 두 발이 이차선에 들어선 순간이었다.
뇌까지 울리는 강렬한 비트가 사라지고 등골에 서늘함이 스쳐 지나갔다. 섬뜩한 느낌에 무심코 고개를 돌려 빈 이차선에 시선을 던지자, 승용차 한 대가 나를 향해 맹렬히 달려오고 있었다.
분명 빈 차선이었는데.
너무 놀란 탓인지 두 발이 땅에 박혀 떨어지지 않았다.
빵! 빠앙!
도로 위의 어떤 차량이 경적을 울렸다. 그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피해야 해!
무거운 다리를 들어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무사히 인도로 올라오는 데 성공했다.
“하아.”
나는 안도하며 밭은 숨을 내쉬고 차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끼익! 쿵!!
내 몸이 허공을 날았다.
승용차는 마치 강한 자력에 이끌린 듯 인도로 돌진해 나를 들이받았다.
***
“병자년 유월 삼십일 염화인은 들어라.”
벼락같은 음성이 나를 호명했다. 나는 경련을 일으키며 눈을 떴다.
“흐어억, 흐억.”
밭은 숨이 터지자 온몸에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다리가 부러진 것 같았다. 떨어지면서 머리를 부딪혔는지 머리도 깨질 듯이 아팠다. 그리고 요란한 심장 박동은 귀전을 마구 때렸다.
쿵! … 쿵! ……쿵!
“병자년 유월 삼십일 염화인, 을사년 유월 이십구일 열두 시 사망.”
다시 벼락같은 음성이 울렸다. 그러자 귓전을 때리던 심장 박동이 싹 걷히고, 극심한 통증도 일시에 사라졌다. 그제야 겨우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요! 저기요!”
쪼그리고 앉아 나를 부르는 사람, 119에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선 사람, 흘끔 보고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 그리고 매장의 유리문 너머로 구경하다 내 얼굴을 확인하고 황급히 밖으로 나온 점장.
그나저나 사망이라고? 그렇다면 내가 정말로 죽었다는 말인가.
“화인아! 염화인!!”
나를 부르짖는 점장의 목소리 위로 벼락같은 음성이 겹쳤다.
“병자년 유월 삼십일 염화인, 망자는 속히 육신에서 벗어나 사자를 따르라.”
그러자 나의 혼이 푸른빛을 발하며 육신이라는 속박에서 벗어났다.
어쩐지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발아래에 누워 있는 내 육신이 마치 허물처럼 보여 헛웃음이 났다.
“큼, 큼.”
그때 누가 헛기침으로 내 주의를 끌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사람들 사이에 끼여 서 있는 유난히 이질적인 존재.
바로 나를 호명한 저승사자였다.
한쪽은 키가 크고 다부진 남자였고, 다른 한쪽은 어린 남자아이의 외양을 한 저승사자였다.
키가 큰 남자는 머리에 튼 상투와 한쪽 눈에 낀 검은 안대가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백색 바지와 저고리를 입고 그 위에 한산모시 겹두루마기까지 걸친 것으로 보아 현대인 출신은 아닌 듯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선 남자아이는 알록달록한 줄무늬 티셔츠에 베이지색 반바지를 입었는데, 큰 눈을 느리게 깜박이는 모습이 아주 귀여웠다.
“음, 안녕하세요.”
나는 둘을 번갈아 보고 어떻게 말을 꺼낼까 고민하다 인사를 건넸다.
“우린 안녕하오만, 그쪽이 안녕하지 못해 어쩌나.”
키가 큰 남자가 성량을 줄이고 낮게 울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쩔 수 없죠, 뭐.”
내가 어깨를 으쓱하자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이름을 호명할 때처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웃음소리였다.
“그대에게는 갑작스럽겠지만, 그렇게 되었소.”
남자는 이내 웃음을 거두고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나는 독안이라 하오. 그리고 이쪽은.”
독안이 아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는 서도. 정서도.”
아이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뭐, 아시겠지만, 염화인입니다.”
문득 저승사자에게 나를 소개하고 있는 이 상황이 비현실적이면서도 더없이 현실적으로 느껴져 기분이 묘했다.
“정화부터 할 테니 손 내밀어 보시오.”
나는 독안의 지시에 순순히 따랐다.
“서도야.”
독안이 다정하게 부르자 서도가 한 발짝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이어 내가 내민 두 손을 꼭 잡았다. 작고 보드라운 손이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꼭 맞잡은 두 손을 통해 내게 노랗고 따스한 빛을 흘려보내는 서도.
그 빛은 내 혼을 따스하게 감싸 안았다가 이내 스러졌다.
이로써 육신의 마지막 모습을 그대로 본떠 빠져나온 혼이 깔끔하게 씻겼다.
서도의 정화가 끝나자 독안은 손에 들었던 적배지를 품에 넣고, 허리에 달린 붉은 오랏줄을 꺼내어 내 왼쪽 손목에 묶었다.
“이건 규정이니 갑갑해도 참으시오. 원래는 양손에 묶어야 하는데, 한쪽만 묶은 거니.”
독안이 웃으며 생색을 냈다.
“자, 갑시다!”
그렇게 스물아홉의 여름, 나는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