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사 염화인 02

by 아무



“염 차사!”

화인이 염라국 본청 3층 복도를 지날 때였다. 회혼부의 수석 차사 독안이 화인을 불러 세웠다.

“정식으로 차사가 된 걸 축하하네.”

왼쪽 눈에 검은 안대를 하고 한산모시 겹두루마기를 걸친 독안의 굵은 목소리가 복도에 쩌렁쩌렁 울렸다. 그는 키가 크고 덩치가 큰 만큼 목소리도 컸다. 정수리에 튼 상투까지 치면 족히 2미터는 넘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수석님, 덕분이에요.”

화인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이날은 화인이 드디어 수습 딱지를 떼고 평차사로 첫 출근한 날이었다. 자신의 우려와 달리 차사로 정식 채용되어 기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심란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

오십여 일 전, 명계(冥界)에 발을 들인 화인.

“우와, 이승이랑 별반 다르지 않네요.”

명부 심사대를 지나 강을 건넌 화인은 눈앞에 펼쳐진 저승의 풍경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당연한 것 아니겠소. 이승에 살던 인간이 고스란히 오는 곳이니.”

독안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

그런데 그때, 그들 앞에 웬 영현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더니 화인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이 아닌가.

“반갑습니다.”

포마드로 깔끔하게 넘긴 머리에 역 반무테 안경을 쓰고, 몸에 꼭 맞는 정장을 입은 그는 딱 봐도 전형적인 회사원의 모습이었다.

“저는 염라국 등용부 책임 차사 유경이라고 합니다.”

그가 적배지와 비슷하게 생긴 명함을 건네며 자신을 소개했다.

‘역시.’

화인은 명함을 받아 들고 떨떠름한 미소를 지었다.

“오! 유경 책임. 오랜만이오.”

독안이 반갑게 그를 향해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수석님, 그리고 정 선임.”

독안은 싱긋 웃고, 서도는 그를 뾰로통하게 올려보았다.

“염화인 영현, 맞으시죠?”

유경이 화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반짝이는 안경알 너머로 그와 눈이 마주친 화인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잠시 시간을 내어 주시겠습니까.”

유경이 정중한 말 끝에 슬쩍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화인은 습관적으로 그의 요청을 거절하려다가 금세 생각을 고쳐 먹었다.

“좋아요.”

이미 죽은 몸인데 뭔 일이 더 생기기야 하겠어, 하고 말이다.

“따라오시죠.”

유경이 앞서 걸으며 자주 가는 찻집으로 화인을 안내했다. 멀지 않은 한옥 찻집이었다.

그런데 찻집의 대문에 막 들어설 때였다. 유경이 문득 뒤돌아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볼 일이라도?”

독안과 서도가 티 나게 뒤따라왔기 때문이다.

“여기 파르페를 서도가 좋아해서 온 것뿐이네. 따라온 게 절대로 아니네. 그렇지?”

독안의 말에 서도가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파르페? 그런 것도 팔아?’

화인은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메뉴를 듣고 찻집의 전경을 쭉 살펴보았다.

“그렇군요.”

유경은 관심 없다는 듯 다시 돌아섰다.

“그런데 왜 하필 같은 방으로 들어오셨죠?”

안경알 너머로 유경의 눈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넓고 넓은 기와집은 집채만 해도 십수 채에, 방은 수십 개였는데, 하필이면 독안과 서도가 같은 방으로 들어온 것이다.

“우리는 신경 쓰지 말고 이야기 나누게.”

독안이 싱긋 웃으며 바로 옆에 앉았다. 누가 봐도 따라온 것이 티가 나는 모양새였다.

“비밀도 아니니, 그럼.”

유경이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염화인 영현, 당신에게는 차사로서의 큰 잠재력이 있습니다. 그 능력을 염라국을 위해 써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순간 유경의 안경알이 번쩍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제게 잠재력이 있다고요? 무슨 잠재력이요?”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언제나 어중간한 위치, 어중간한 지능, 어중간한 성격으로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 중 하나였을 뿐인 화인이었기에 유경의 말이 조금 놀라웠다.

“인간은 육신과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화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죽은 뒤 육신도 없이 제가 이렇게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는 걸 보면 영혼이라는 것이 정말로 있기는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인간의 영혼에는 영기(靈氣)라는 것이 있죠.”

유경의 설명이 길게 이어졌다.

모든 영은 저마다 지닌 기운인 ‘영기’가 있다.

이 영기에서 비롯한 힘과 능력을 영력(靈力)이라고 하는데, 영기의 성질에 따라 가진 능력이 달라지고, 밀도에 따라 힘의 크기가 달라진다.

그러므로 영력은 차사에게 매우 중요한 능력치다. 그 능력을 기반으로 차사들의 부서가 배정되고 승진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평차사부터 주임, 선임, 책임, 수석까지 경력에 비례해 승진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영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뜻이며, 영기의 밀도가 천장의 높이를 결정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검사를 해 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만, 염화인 영현의 영력은 특급에 준할 걸로 예상됩니다. 정상적으로 발현이 된다면 말이죠.”

“특급이요?”

화인이 놀라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다. 등급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지만 특급이면 보통 제일 좋은 것이 아닌가.

마침 유경이 화인의 생각을 읽은 듯이 설명을 덧붙였다.

“그렇습니다. 영력의 등급에는 특, 상, 중, 하가 있고, 각 등급을 다시 상, 중, 하로 나눕니다. 그러니까 총 열두 개의 등급으로 나뉘는 셈이죠.”

설명을 들을수록 놀라운지 화인의 떡 벌어진 입은 한참 동안이나 다물어지지 않았다.

‘내게 그렇게나 큰 영력이 있다고?’

어안이 벙벙했다.

“그런 잠재력을 썩히는 건 무척이나 아까운 일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아깝긴 하네요.”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는 화인을 보고 유경이 금테 안경을 슬쩍 밀어 올렸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차사가 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제가 차사요…….”

화인이 고개를 돌려 바로 옆 자리에 앉은 독안과 서도를 보았다. 화인과 눈이 마주친 독안은 맥주 거품을, 서도는 초코 아이스크림을 입가에 잔뜩 묻힌 채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렸다.

화인이 손가락으로 둘을 가리키자 유경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습니다. 저 둘은 조금 예외적인 경우이니 차사가 다 저럴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유경이 말하는 ‘저렇다’가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화인은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바로 눈앞에 다른 비교 대상이 앉아 있기도 하고, 어딜 가나 온갖 군상이 모이기 마련이니까.

“어이, 유경. 우리가 뭐 어떻다는 건가.”

아무리 작게 말해도 들릴 수밖에 없는 옆자리에서 불만이 날아왔다. 웃음을 싹 지운 독안은 제법 험상궂은 인상이었다. 맞은편 서도도 덩달아 팔짱을 끼고 미간을 찌푸렸는데, 귀엽기만 했다.

“들으셨습니까? 작게 말했는데 들렸다니 유감입니다.”

목소리를 줄이지 않은 유경이 태연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제가 묻고 싶은 건 제가 차사가 되면 하는 일이 저 둘처럼 망자를 인도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일인지가 궁금해요.”

괜히 곤란한 일이 생기기 전에 화인이 끼어들었다.

“아, 그런 의미였군요.”

헛기침을 하며 흐트러진 자세를 바르게 고친 유경의 얼굴에 난감함이 스쳤다.

“죄송하지만 그 부분에 대한 답은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군요.”

화인이 가만히 턱을 쓸었다.

“앞서 능력에 따라 배정 부서가 달라진다고 말씀드렸죠.”

화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능력은 영력이 발현되어야 알 수 있습니다. 또 같은 성질이라 해도 각자 두드러지는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그때가 되어 봐야 안다고 밖에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잠재된 영력이 특급이라는 말에 동요하던 화인의 마음이 다시 잠잠해졌다.

‘발현이 끝이 아니라 훈련을 해야 하는구나. 역시 그냥 얻어지는 게 없네. 거기나 여기나.’

그때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아! 제일 중요한 걸 잊을 뻔했네요.”

“무엇을 말입니까?”

“차사가 되면 제가 얻는 게 뭐죠?”

능력이니 뭐니 하는 건 이제 대충 알겠다. 그런데 차사가 된다는 건 결국 염라국에 고용된다는 의미 아닌가. 이승에서는 일을 하면 돈을 받으니까 저승에도 뭐가 있지 않을까. 설마 무급으로 부려먹는다던가, 열정 페이 같은 소리를 한다면, 그대로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리라.

“얻는 것 말이죠?”

유경이 밀어 올리는 안경알이 반짝 빛났다. 안경과 더불어 그의 입꼬리도 같이 올라갔다.

다시 시작된 유경의 설명.

이승에서도 익히 들어 아는 열시왕의 심판에 대한 이야기였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망자는 죽은 지 7일째 되는 날부터 7일에 한 번씩 열시왕에게 십악업을 심판받고, 죄업의 경중에 따라 열지옥에서 처벌받는다.

모든 죄업을 다 씻고 나면 저승 살이가 시작되는데, 이는 이승과 다를 바 없다. 돈을 벌어먹고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돈을 벌지 않아도 먹고살 방법이 있는데, 이는 십선업을 쌓아 선업 연금을 받는 것이다.

여기까지 설명을 마친 유경은 적당히 식은 차로 목을 축였다.

“다음으로 차사의 혜택에 대한 설명입니다. 딱 두 가지만 설명해 드리죠.”

“네에.”

듣기만 하는데도 지쳐 버린 화인은 슬슬 집중력이 바닥을 드러냈다.

“첫 번째로 차사는 이승에서의 삶을 심판받지 않습니다.”

흠, 그렇군, 하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다 순간 멈칫한 화인이 유경을 향해 시선을 올렸다.

“아니, 그럼 나쁜 놈들이 다 차사를 하려고 들면요?”

“애초에 그런 놈들은 명부 심사 때 다 걸러집니다. 염라국의 공무를 집행하는 차사로 그런 치들을 고용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유경은 걱정 말라며 슬며시 미소 지었다.

“두 번째 혜택은 선업을 쌓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십선업과 별개로 차사들은 직무 수행에 따라 선업 점수가 쌓입니다. 점수가 높아지면 선업 연금이 높아지고, 또 점수에 따라 당신의 염원도 이룰 수 있습니다.”

화인의 귀에 ‘염원’이라는 단어가 들어와 박혔다.

“염원이요?”

“그렇습니다.”

유경이 입꼬리를 미세하게 더 끌어올리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게 무엇이든.”


**작중 설정은 아래와 같습니다만 몰라도 됩니다.

*열시왕과 십악업

1. 진광대왕 : 망어 - 도산지옥

2. 초강대왕 : 살생 - 화탕지옥

3. 송제대왕 : 기어 - 한빙지옥

4. 오관대왕 : 사견 - 검수지옥

5. 염라대왕 : 양설 - 발설지옥

6. 변성대왕 : 진에 - 독사지옥

7. 태산대왕 : 사음 - 거해지옥

8. 평등대왕 : 투도 - 철상지옥

9. 도시대왕 : 악구 - 풍도지옥

10. 전륜대왕 : 탐욕 - 흑암지옥

*십선업

불망어 :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진실된 말을 한다.

불살생 : 생명을 죽이지 않는다.

불기어 : 무의미하거나 꾸며진 말 대신 사실대로 말한다.

불사견 : 어리석음에서 기인한 그릇된 견해를 버린다.

불양설 : 이간질하는 말 대신 화합하는 말을 한다.

불진에 : 일이 어긋나도 노여워하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불사음 : 부정한 성적 행위를 삼가고 행실을 맑고 깨끗하게 한다.

불투도 :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고 베푼다.

불악구 : 험담을 하거나 욕을 하는 대신 부드럽게 말한다.

불탐욕 :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탐욕스러운 짓을 하지 않는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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