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인이 폭발시킨 영기에 그 누구보다 놀란 이는 바로 신요였다.
검은 영기가 피할 새도 없이 그의 몸을 휘감아 결박해 버렸으니 말이다.
아홉 신요가 발버둥 쳤다.
“무슨 짓을 한 거야!!”
그중 한 신요가 소리쳤으나 화인은 대꾸하지 않았다.
한시바삐 마지막 신요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발현에 대한 감상도 뒤로 미뤘다.
네 번째인 탓일까. 그다지 놀랍지도 않았다.
그저 서둘러 눈과 귀에 영기를 집중시켜 시력과 청력을 높였을 뿐이다.
화인은 월등해진 감각으로 무헌이 만든 가상공간 속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운동장 구석구석, 교실 하나하나, 건물 뒤편 주차장과 쓰레기장까지.
그리고 머지않아,
‘찾았다.’
슬며시 화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거기에 숨었어?’
화인은 재빨리 열 번째 신요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검은 영기에 결박된 아홉 신요가 알아채기 전에.
그렇게 몰래 화인이 이동해 온 곳은 학교 건물 3층, 오른쪽 제일 끝에 있는 교실이었다.
그 교실은 미닫이문이 달린 다른 교실과 달리 쌍여닫이문이 달렸고, 당연하게도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특별실이 대개 그러하듯.
철제문 앞에 선 화인은 자꾸만 새어 나오려는 영기를 갈무리해 숨겼다.
이어 문 위에 달린 팻말을 올려다보았다.
역시나 팻말에는 ‘과학실’이라고 적혀 있다.
그때, 신요들이 술렁이는 소리가 화인의 귀에 어렴풋이 닿았다.
“뭐야?”
“어디로 사라진 거야?”
“어디 갔어?”
“들킨 거야?”
“빨리 찾아!”
“어서 잡아!”
“안 돼!”
“숨어!”
“도망가!!”
검은 영기에 결박된 채 운동장에 남은 신요들의 초조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흥.’
화인은 속으로 코웃음 쳤다.
‘당해 보니 어때?’
언제나 우위에 섰을 신요가 초조해하는 기색이 썩 기꺼웠던 화인은 이 기분을 조금 더 만끽하고 싶었다.
그래서 화인은 조금 뜸을 들였다가 과학실 안으로 들어갔다.
제 모든 기척을 숨기고서.
너른 책상 여섯 개가 정렬된 과학실 안은 삼면이 온갖 장비로 가득했다. 한 면은 실험 도구가, 다른 한 면은 각종 표본이 빼곡한 유리장이, 또 한 면은 여러 종류의 인체 모형이 줄지어 있었다.
전신 골격 모형, 전신 근육 모형, 몸통 장기 모형, 태아와 소아의 모형까지 다양하게 구비된 모형.
“안녕.”
화인이 한 모형에게 다가가 속삭이듯 인사했다.
“히이익!”
기겁한 신요가 저도 모르게 경탄성을 내질렀다.
“뒤를 좋아하길래.”
구태여 소아의 모형 뒤로 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화인이었다.
“놀랐잖아!”
신요는 제가 숨었다는 사실을 잊은 건지 도리어 화를 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몰라?”
화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신요의 영체는 어느새 화인의 검은 영기에 의해 결박되었다.
“으으으.”
신요가 두 주먹을 꼭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고작 신입 차사인 화인에게 당한 것이 억울한 모양이었다.
“그러게 적당히 나대지 그랬어.”
화인이 마지막 신요를 이끌고 다시 운동장으로 이동했다.
이제 운동장에 열 신요가 모두 모였다.
“흐음, 어떡할까.”
화인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내가 이겼으니까 내 맘대로 해도 되지?”
신요가 황급히 대답했다.
“그런 말은 없었잖아.”
“무슨 말?”
“네가 이기면 네 맘대로 한다는 말!”
화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네가 미리 조건을 걸지 않았잖아.”
“네가 이기는 결과는 없었단 말이야.”
“그건 예상 못한 네 잘못이지.”
화인이 옥상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옥상 위에서 화인의 싸움을 지켜보았을 무헌과 선율, 착착귀와 지박령에게 신호를 보낸 것이다.
곧바로 옥상에 드리워진 장막이 걷혔다.
“이 녀석, 어떡하죠? 없앨까요?”
화인이 들으라는 듯이 옥상을 향해 크게 외쳤다.
“너! 너!”
열 신요가 동시에 바둥거렸다
“왜 갑자기 이렇게 영력이 세진 거야!!”
그때, 무헌과 선율, 착착귀와 지박령이 운동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또 발현했군요! 정말 잘 됐어요.”
선율이 환하게 웃으며 화인에게 축하했다.
“헤헤, 그러게요.”
쑥스럽게 웃으며 뒷목을 쓸어내리는 화인.
“색과 성질을 보아하니 나무 속성이네요. 돌아가면 또 한바탕 훈련에 매진해야겠는걸요.”
해사한 표정과 달리 무시무시한 뒷말을 듣는 순간 느슨해지려던 화인의 정신이 퍼뜩 돌아왔다.
“그나저나 저 녀석은 어떡하죠?”
화인의 물음에 무헌이 지긋이 한 신요를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쓸모가 있을까.”
옆에 선 화인도 무헌을 따라 턱을 괴고 지긋이 신요를 바라봤다.
“일단, 정신 사나우니 결박을 풀어라.”
무헌이 허공에 둥실둥실 떠 있는 아홉 신요를 흘끔 보고 명했다.
“네!”
씩씩하게 대답한 화인이 곧장 영기를 거두어들였다.
그러자 결박에서 풀려난 신요들이 한데 모여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으아아앙!”
“무사해서 다행이야.”
“죽는 줄 알았어!”
하고 네댓이 시끄럽게 구는 동안 나머지는 소곤소곤 도망칠 방법을 모색했다.
그러나 그것이 숨겨질 리가 없었다.
이에 무헌의 고개가 삐딱해졌다.
“시끄럽다. 빨리 본체로 돌아와라.”
무헌의 음성에 신요가 흠칫 놀랐다.
머뭇대는 것도 잠시, 이내 신요들이 원래의 모습, 동강동강 토막 난 모습으로 바뀌더니 열 개의 토막이 하나로 이어져 본체가 되었다.
“저, 무헌 님…….”
신요가 몸을 비비 꼬며 처연한 얼굴로 무헌을 불렀다.
무헌은 대답하지 않고 시선만 던졌다.
그 꼴을 눈앞에서 지켜보던 화인은 어쩐지 못마땅하여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리고 무헌과 선율을 향해 작게 속삭였다.
“잠시 회의 좀 하시죠.”
신요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아직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들어보니 정귀의 직속 부하랍니다. 어딘가 쓸 데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화인이 행여 들릴세라 한 손으로 입까지 가리고 소곤거렸다.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자는 거죠?”
선율의 속삭임에 화인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배신이라도 하면요?”
선율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수석 님의 얼굴을 좋아하니, 수석님의 얼굴이 변하지 않는 한 쉽게 배신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화인이 비장하게 답했다.
“첩자로 이용하자는 말인가?”
무헌이 한심하다는 듯이 보며 물었다.
“네. 정귀의 직속 부하라니까 내부 정보를 잘 알지 않을까요?”
두 주먹을 꽉 쥐어 보이며 대답하는 화인.
“이중 첩자가 될 가능성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모양이군.”
무헌이 팔짱을 끼고 내려다보았다.
“아아.”
화인이 맹한 소리를 냈다.
“하지만 정보가 필요한 건 사실이다.”
무헌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용해 볼만한 가치가 있겠어.”
“그럼, 배신 못하게 속박이라도 걸까요?”
화인이 신난 듯이 물었다.
“아니, 속박은 금세 들킨다. …….”
무헌이 말을 이으려던 때에, 뒤에서 지박령이 외쳤다.
“어! 어! 도망간다!!”
“흐음.”
무헌이 낮게 목을 울렸다.
그리고 연기처럼 사라졌다가 곧바로 다시 나타난 무헌.
“정말 이용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
무헌이 턱을 쓸며 한 발로 짓밟은 신요를 내려다보았다.
“야, 내가 나대지 말랬잖아.”
화인이 신요 옆에 쪼그리고 앉아 놀렸다.
“네가 언제!”
“내가 말 안 했던가? 그럼 지금 말할게.”
키득거리던 화인이 웃음기를 지우고 경고했다.
“사멸당하고 싶지 않으면 나대지 마.”
순간 움찔한 신요가 입을 우물거리더니 씩씩거린다.
“짜증 나! 짜증 나!!”
화인이 다시 키득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봐.”
발을 치우며 무헌이 부르자 신요가 잠잠해졌다.
“정귀의 부하라고.”
무헌이 자세를 낮추고 신요와 눈을 맞추었다.
“널 살려 주마.”
무릎을 꿇고 앉은 신요와 한쪽 무릎을 세우고 쪼그려 앉은 무헌이 마주 보았다.
“대신 조건이 있다.”
“무슨 조건이요?”
살려 준다는 말에 일순 환해졌던 신요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
“하나는 우리에게 두억시니와 정귀, 아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것. 단, 그 정보가 거짓일 경우, 곧 사멸이다.”
첫 번째 조건을 들은 신요가 경악하며 입을 열었지만 무헌의 날카로운 눈빛에 도로 입을 다물었다.
“다른 하나는 내 수하를 건드리지 말 것. 저기 있는 착착귀와 지박령도 내 수하이니 혹 괴롭히다가 걸리면 그때도 사멸이다.”
신요의 고개가 푹 수그러들었다.
“뭐, 다 사멸이래.”
입속말로 꿍얼거리는 신요에게 선율이 웃으며 다가갔다.
“침울해하지 말아요. 거짓 정보만 흘리지 않으면 계속 연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잖아요.”
신요는 위로인지 아닌지 모를 말에 울컥 화가 치솟았으나 선율의 얼굴을 본 순간 멈칫했다.
“착착귀와 지박령도 이제 친하게 지내야 하니까 먼저 사과하는 게 어때요?”
선율의 환한 미소에 신요가 홀린 듯 답했다.
“좋아요. 까짓 거.”
대답이 끝남과 동시에 신요를 붙잡아 착착귀와 지박령 앞으로 이끈 선율.
선율이 작게 고개를 끄덕여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우물쭈물하던 신요가 입을 열였다.
“미, 미안해. 앞으로 너희를 위협하는 일은 없을 거야.”
사과의 말은 했지만 시선은 어긋나 있다.
“흥! 그게 사과하는 태도냐!”
지박령이 허리에 손을 얹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지박아…….”
도리어 착착귀가 둘 사이에서 난감해졌다.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는 거, 정말이지?”
착착귀가 되물었다.
신요는 착착귀를 흘끔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그랬다가는 사멸이라는데!”
“알겠어. 그럼 사과는 받을게.”
착착귀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어휴, 착해빠져 가지고.”
지박령은 여전히 못마땅한 눈치다.
“너도 이거 받아라.”
그때, 무헌이 신요를 향해 동그란 것을 하나 던졌다.
착착귀와 지박령에게 주었던 임시 패였다.
“그 정도 타력은 숨길 수 있겠지.”
“당연하죠!”
신요가 기쁘게 받아 들었다.
“이만, 가도 좋다.”
무헌이 만든 가상의 공간이 사라지고 학교에 드리워졌던 장막도 걷혔다.
“그러고 보니 호출을 안 했는데 좌표가 어떻게 떴죠?”
저승으로 복귀하는 길, 화인이 무헌을 향해 물었다.
“임시 패마다 내 도깨비불이 심어져 있기 때문이다.”
안녕하십니까.
직접 인사를 드리는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많이 부족한 데다 느리게 진행되는 이야기를 읽어 주시고 라이킷을 눌러 주시는 분들에게 언젠가 꼭 감사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이야기를 이어나갈 힘을 얻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차사 염화인’을 쓰면서 처음으로 단행본이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려면 역시 대대적인 수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여 이번 회차를 끝으로 잠시 정비의 시간을 가지기로 하였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좋은 소식 가져올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저는 비교적 따듯한 남쪽에 살고 있습니다만, 날씨가 춥습니다.
모두 감기 조심하시고, 몸과 마음이 건강하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