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사 염화인 25

by 아무



“네?”

미간에 주름이 잡힌 화인은 순간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그러니까 화인은 신요의 본체를 찾았다는 말에 무헌을 따라 이동했고,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지박령의 터이자,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어느 여고의 운동장이었다.

‘치사하게 본체는 영역 밖에 있었어?’

화인은 떨떠름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신요는 보이지 않는다.

“그 녀석은요?”

화인의 물음에 무헌이 대답 대신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운동장 한쪽 구석에 드리워진 장막 안에서 신요의 모습이 드러났다.

“잡았으면 처리를 하시지……, 왜?”

화인이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리자 무헌이 하는 말.

“잡으면 원하는 대로 해도 좋다고 했으니.”

무헌이 턱을 쓸며 지그시 화인을 바라보았다.

“음?”

불길한 예감이 화인의 뇌리를 스쳤다.

‘나보고 뭐 어쩌라고……? 설마…….’

잠시 뜸을 들이던 무헌이 다시 입을 열었다.

“훈련의 성과는 봐야지.”

“네?”

화인의 미간이 저절로 찡그려졌다. 그리고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는지 확인했다.

“저 녀석을 혼자 처리하라고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는 무헌을 보고 화인의 입이 떡 벌어졌다.

분신보다 본체가 강한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다.

사패의 도움이 없었다면 분신을 처리하는 데도 시간과 기력이 몇 배는 더 들었을 터.

그런데 훈련의 성과를 보자고 저 악귀를 혼자서 처리하라니!

화인은 순간 부아가 치미는 것을 겨우 짓눌렀다.

‘이거 교육 맞아?’

수습 기간은 끝났어도 교육과 훈련은 끝이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승에서도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그렇지, 이건 교육이 너무 가혹하다.

자칫 잘못하면 영원히 소멸인데, 물론 제 상관들이 그렇게 두지는 않겠지만.

찰나에 이런 생각이 스친 화인의 표정이 샐쭉해졌다.

이를 본 무헌이 짧게 목을 울리고 입을 열었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실력을 시험하는 일은 없도록 하지.”

불완전 발현 상태인 차사가 자신의 능력을 더 이상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이것은 일종의 특혜였다.

상관이 수석 태무헌이라 가능한 특혜이자 영기의 등급이 특급이라 가능한 특혜.

화인이 흘긋 무헌을 보았다.

무헌이 거짓을 말하는 성격도 아니거니와 사탕발림할 이도 아니었으니 저 말은 틀림없이 지켜질 것이다.

그럼에도 화인은 조금 의아했다.

어쨌거나 자신은 아직 신입이고 불완전 발현 상태이니 말이다.

그때, 화인의 의중을 읽은 듯이 무헌이 말을 이었다.

“이미 신입의 실력은 뛰어넘었고, 임무 중에는 나나 선율이 항상 근처에 있을 텐데, 더 증명할 필요가 있을까?”

“없습니다!”

화인이 기운차게 대답하자 무헌이 학교 전체에 장막을 드리웠다.

그런데 장막 안의 풍경이 묘하게 이질적이다.

‘가상의 공간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심상 속?’

화인이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살폈다.

그러자 무헌이 설명했다.

“이곳은 내가 구축한 가상의 공간이다. 현실에 영향을 끼치지 않으니 마음껏 겨루어 보아라.”

이어 신요를 가두었던 장막을 걷었다.

“그럼, 부디 극복하길.”

무헌이 모습을 감추었다.

화인은 즉시 외피를 강화하고 영기로 얇은 막을 만들어 영체를 보호했다.

신요가 언제 공격을 해 올지 모르니 말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째서인지 신요가 꼼짝도 하지 않는다.

화인은 얼마간 유지하던 공격 태세를 풀고 신요와의 거리를 좁혔다.

“이봐! 어떻게 된 거야?”

말을 걸어 보아도 대답이 없다.

‘안 들리나? 이 정도 거리면 들릴 텐데.’

화인은 조금 더 거리를 좁혔다.

‘이렇게 작았나?’

신요를 슬쩍 내려다보며 화인이 고개를 갸웃하고 다시 불렀다.

“이봐!”

그제야 고개를 드는 신요.

그런데 신요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공포에 질린 것인지, 환희에 찬 것인지.

“뭐야, 너 쫄았냐?”

화인이 놀리듯 물었다.

“…… 처음이야. 이런 느낌.”

신요가 웅얼거렸다.

“뭐?”

화인이 한 발 더 다가서며 귀를 기울였다.

“나도 어디 가서 영기라면 빠지지 않는데, 정귀 님보다 강한 영기를 가진 영을 본 건 처음이야. 어쩌면 두억시니 님보다 강할지도 몰라. 아니, 이 말은 취소야. 제 아무리 태무헌이라도 차사는 차사일뿐이지. 그러니 두억시니 님보다 강할 수가 없어. 두억시니 님은 거의 신과 같다고 했는 걸. 아니, 그런데 어쩌면 더 강할지도…….”

신요가 끝도 없이 중얼거렸다.

“그건 그렇고 정귀 님보다 잘생긴 영은 처음 봤어. 어쩌지, 나 무헌 님한테 반한 것 같아. 아아, 안 돼. 중음의 지조는 지켜야지. 그렇지만 너무 잘생겼는 걸. 아아.”

신요는 발그레 붉힌 두 뺨을 붙잡고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무헌 니임? 어이가 없네.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그새 무헌 님이래. 아까는 그렇게 까불더니.’

화인은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다.

‘선율 얼굴 보면 까무러치겠네.’

신요가 몸을 비비꼬기 시작한다.

“아아, 정귀 님을 배신할 것만 같아. 무헌 님께 복종하고 싶어!”

그런 신요를 눈앞에서 보던 화인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새어 나온 말.

“정말 가관이군.”

화인은 인상을 찌푸리고 은근슬쩍 영기를 방출했다.

“이봐.”

“이봐, 라니. 내 이름은 신요야.”

이어 붉은 영력을 장검으로 형상화하며 말했다.

“그래, 신요. 너, 태무헌 수석이 그렇게 좋아? 왜?”

“너 같은 애송이가 뭘 알겠어.”

화인이 헛웃음을 삼키며 내기를 걸었다.

“이번에는 이쪽에서 제안하지.”

“무슨 제안?”

뾰로통하게 대답하는 신요.

“나랑 겨뤄서 네가 이기면 ‘무헌 님’한테 너를 고용하라고 할게.”

“고용이라니? 난 중음의 고혼이야. 정귀 님의 부하라고!”

“그래? 정귀 님보다 영기도 강하고 잘생긴 ‘무헌 님’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가 봐?”

“……으으. 그렇지만 중음을 배신할 순 없어.”

“그건 네가 나를 이기고 나서의 일이지.”

화인이 비죽 웃었다.

“이 애송이가 감히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눈에 콩깍지가 씌었던 신요의 눈에 드디어 화인이 비쳤다.

“글쎄, 중음의 고혼?”

“난 그냥 고혼이 아니야. 정귀 님의 직속 부하라고.”

“그래? 정귀가 누군지 내가 알 게 뭐야.”

“너, 너!”

이어지는 화인의 도발에 신요가 드디어 격분했다.

“고작 한 입 거리도 안 되는 게!”

“한 입일지, 두 입일지, 싸워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내가 지금 이렇게 잡혔다고 해서 너 따위에게 당할 것 같아?”

그 순간 신요의 영체가 동강동강 토막이 났다.

그러니까 머리, 팔, 다리, 몸통이 열 토막으로 말이다.

이어 토막들은 각각 신요의 영체로 변해 화인을 에워쌌다.

영기만으로 만들었던 분신과는 격이 다른 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렇게 합의도 않고 시작하다니, 예의가 없네.”

화인이 손에 쥔 장검에 더욱 힘을 주고 칼날에 기를 실었다.

“그런 게 어딨어. 더럽게 싸워도 이기기만 하면 그만이야.”

“그래?”

화인이 장검을 휘둘러 원을 그렸다.

그러자 신요들이 펄쩍 뛰어 뒤로 피했다.

“애송이, 아주 찍 소리도 못하게 해 주마.”

한 신요가 말했다.

그러나 거리를 벌린 화인은 대꾸도 않고 가만히 신요들을 관찰했다.

‘왜 아홉 뿐이지?’

화인은 시야를 넓혔다. 남은 하나의 기척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다른 아홉의 신요가 잇달아 공격하며 방해를 하는 바람에 마지막 신요의 기적이 전혀 읽히지 않았다.

가상의 공간이라도 학교를 그대로 본떠 만들었으니 숨을 곳이 많을 테지.

화인은 마치 칼춤을 추는 듯 화려하면서도 부드럽게 장검을 휘둘렀다.

그러면서도 빠르게 흐르는 시야 속에서 마지막 신요의 기척을 빠뜨리지 않고 찾아 헤맸다.

‘전면에 나선 아홉 신요가 이렇게 나를 방해하는 걸 보면, 분명 거기에 영핵이 있는 거야.’

화인은 확신했지만 아홉 신요에게 둘러싸여 뜻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차츰 아홉 신요의 공격이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시간을 끌수록 내가 불리해져.’

신요는 각각 다른 무기를 들고 화인을 공격했다.

한 신요는 긴 채찍으로 화인의 움직임을 방해했고, 다른 신요는 곤봉으로, 또 다른 신요는 창으로, 어떤 신요는 못을 뿌리는 부채로, 또 어떤 신요는 작은 공으로, 장검으로, 단검으로, 철퇴로, 부메랑으로.

정말 갖가지 무기로 공격했다.

게다가 영체가 변한 분신은 벤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베도 베도 아홉 신요가 계속해서 달려들었다는 말이다.

또 동시에 공격이 들어오니 화인의 반격도 정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영핵을 없애지 않는 한 계속 달려들 거야. 저것들을 다 묶어둘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화인은 싸우면서도 계속 생각했다.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려니 머리에 과부하가 걸린 모양이다.

뾰족한 방법도, 마지막 신요의 기척도 전혀 찾지 못하고 있었다.

“으아아악!”

순간 답답한 마음에 화인이 괴성을 질렀다.

또 동시에 영기를 폭발시키며 장검에 대량의 기를 주입해 마구 휘둘렀다.

그러자 검기처럼 뻗어나간 영기가 넘실넘실 굽이쳤다.

‘잔상인가?’

화인은 순간 멍하니 제 영기를 바라봤다.

굽이치며 뻗어나간 흑색의 영기가 아홉 신요를 휘감고 꼼짝도 못 하게 붙잡아 버렸다.

‘아, 발현인가.’

제가 알던 힘이 아닌 다른 힘을 보고 순간 깨달았다.

나무 속성 영력이 발현된 것이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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