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사 염화인 24

by 아무



“아슬아슬했어요.”

영기를 빼앗겨 스러져가는 착착귀의 영체를 붙잡으며 선율이 말했다.

“뭐야!”

신요가 놀란 모양이다.

한 신요가 소리 높여 외쳤고, 다른 신요는 주춤 한 발 뒤로 물러섰으며, 또 다른 신요는 공격 태세를 갖추었다. 그리고 마지막 신요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삼차사를 번갈아 보았다.

“분신인가.”

흐음, 무헌이 낮게 목을 울리고 네 신요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어째서 저승의 차사가 끼어드는 거야? 중음의 일이잖아.”

신요가 무헌을 향해 불평했다.

“차사의 간섭을 원치 않는다면, 명부를 어기는 일은 피했어야지.”

무헌이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난 명부를 어기지 않았어.”

신요가 불퉁하게 대꾸했다.

“지금은, 그랬겠지.”

무헌은 마침 시야에 들어온 착착귀의 상태를 살피고 선율에게 시선을 옮겼다.

무헌의 시선을 느낀 선율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늦지 않았다는 신호였다.

“무슨 일이 있으면 호출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무헌이 착착귀를 내려다보며 나무랐다.

그렇지 않아도 영기를 빼앗겨 기력도 없고 정신도 없는 착착귀였건만, 더욱 풀이 죽어 고개가 푹 수그러들었다.

“약속, 했어.”

착착귀가 간신히 입을 열어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먹히면, 더 이상 이 영역의 누구도 건들지 않기로……. 그런데…….”

그 순간 바닥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착착귀의 눈물이었다.

그걸 본 무헌과 화인의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생겼다.

“잊었나. 넌 미끼일 뿐이었단 걸.”

“그렇지만…….”

착착귀가 말을 잇지 못했다.

자꾸만 눈물이 넘쳐흐른 탓이다.

“어쨌든 네 역할은 다 했으니, 됐다.”

무헌이 다시 선율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선율.”

이름만 불렀을 뿐인데, 선율이 미소 짓는다.

“맡겨 주세요.”

그리고 드리워지는 거대 장막.

장막은 착착귀의 영역 전체를 에둘렀다.

“이런다고 날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희미하게 빛나는 장막을 보고도 신요는 자신만만했다.

“어리석은 귀로구나.”

나지막이 울리는 무헌의 음성이 골목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자신 있거든 본체를 드러내라.”

무헌의 영체에서 옅은 빛이 발했다.

그 사이 선율은 착착귀를 둘러메고 유유히 장막을 빠져나갔다.

“벌써 그렇게 닦달하지 마. 그럼 더 나오기 싫어진단 말이야.”

신요가 불퉁하게 말했다.

“오래 어울릴 생각 없다. 지금 나오면 사멸은 면해주지.”

무헌이 팔짱을 끼고 시선을 들어 바로 옆 건물 옥상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시선 끝에는 옥상 난간에 걸터앉아 다리를 달랑달랑 흔드는 다섯 번째 신요가 먼 데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대고 있었다.

“그러지 말고 우리 내기할래?”

신요 중 하나가 불시에 다가와 화인의 귀에 속삭였다.

화인의 미간에 잡힌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예상치 못한 접근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언짢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내 본체를 찾으면.”

이번에는 뒷짐을 지고 무헌 앞을 서성이던 신요가 입을 열었다.

“사멸이든 뭐든, 원하는 대로 해도 좋아.”

그렇지 않아도 착착귀의 눈물을 보고 심기가 불편했던 화인은 망설임 없이 내기를 받아들였다.

“후회하지 마.”

이 말과 동시에 화인이 손을 들어 제게 귀엣말을 속삭인 신요의 머리통을 터뜨려 버렸다.

“글쎄, 후회는 누가 하게 될까.”

다른 신요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때, 무헌 앞을 서성이던 신요가 화들짝 놀라는 시늉을 하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아! 당신, 태무헌이구나.”

이어 손으로 턱을 쓸며 난처한 기색을 보이는 신요.

“으음, 이거 곤란한 걸.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되겠어.”

후후, 하고 웃더니 갑자기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전력으로 도망가야지!”

그런 신요의 행동에 기가 막힌 무헌이 헛웃음을 흘렸다.

“나는 본체를 찾겠다. 그동안 분신들을 처리해라.”

“네!”

화인이 의욕을 가득 담아 대답했다.

“킥킥, 나 잡아 봐라~!”

한 신요가 화인의 머리채를 잡아당기고 반대로 달려갔다.

“잡히면 죽는다~.”

화인이 거친 말과 달리 입꼬리를 올리며 씩 웃었다.

그리고 도망가는 신요의 앞을 가로막기까지는 불과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앗!”

작게 탄성을 흘린 신요와 눈을 맞추고 화인이 싱긋 웃었다.

그러나 그런 화인을 비웃기라도 하듯 신요가 마주 웃으며 안개로 화해 그 자리를 벗어났다.

“쯧.”

화인이 작게 혀를 차고 영력을 형상화해 재빨리 활을 만들어 손에 쥐었다.

‘일단 보이는 놈부터 해치우자.’

그리고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분신을 향해 붉은 화살을 쏘았다.

화살이 분신에 적중했다.

“으아아악!”

골목을 울리는 과장된 비명 소리가,

“아하하하하.”

이내 웃음소리로 바뀌었다.

그러나 분신의 웃음소리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적중한 화살 깃에서 영력으로 얽은 그물이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일순 분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와 동시에 분신을 옭아매는 그물.

그 모습을 바라보던 화인이 분신을 향해 눈썹을 실룩해 보였다.

그러자 상대도 화인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치사해. 무기를 쓰다니.”

그 순간 뒤에서 들리는 신요의 목소리.

휘익.

화인은 반사적으로 손에 쥔 활을 휘둘렀다.

신요의 목을 노린 것이다.

그러나 활이 신요의 목에 닿기 직전, 신요가 잽싸게 안개로 화해 도망쳤다.

“쯧.”

화인이 저도 모르게 또 혀를 차고 곧바로 활을 쥔 반대 손을 오므렸다.

그러자 그물이 빠르게 수축하기 시작했다.

포획된 분신의 영체가 그물 모양대로 울룩불룩 튀어나왔다.

이윽고 압력을 이기지 못한 영체가 펑하고 터졌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그렇다는 건 여기 있는 저 분신들은 그저 영기 덩어리일 뿐이라는 뜻이다.

또 그렇다는 건 신요 본체의 영기가 다 소모되지 않는 한 분신은 언제든지,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의미였다.

“어디 한 번 해보자고.”

화인은 불타올랐다. 이토록 의욕이 솟구치는 이유도 모르고서.

휘익, 푹! 휘익, 푹!

처음 보았던 분신의 수는 다섯, 화인이 지금까지 활로 없앤 분신의 수는 아홉.

‘이래서는 끝이 안 나겠는 걸.’

화인은 활을 쏘며 대책을 강구했다.

“야, 사패!”

“… 설마, 나 부른 거야?”

차사패 속에서 자고 있던 도깨비불이 홀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 너.”

“어감이 별론데?”

“뭐가?”

“이름 말이야.”

“이름?”

급해서 부른다고 부른 것이 이름이 되어 버렸나.

화인이 조금 당황하여 도깨비불과 눈을 맞추었다.

그런데 별로라는 말과는 달리 얼굴이 밝다.

“사패, 사패? 사패? 사패!”

자꾸만 되뇌는 도깨비불을 보니 어쩐지 미안해지는 화인이었다.

뜻하지 않게 다른 말이 연상되는 이름을 붙여준 탓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네 도움이 필요해.”

“말만 해!”

이름이 생겼기 때문일까, 기분이 좋아 보인다.

“저 분신들을 한꺼번에 잡을 거야.”

“좋아.”

“여기.”

화인이 활을 넘겼다.

그러자 활을 넘겨받은 사패가 다섯으로 나뉘었다.

“멀미, 조심해.”

다섯 사패가 합창하며 날아올랐다.

“그때와는 달라.”

나지막이 혼잣말하는 화인.

짧지만 지옥과도 같았던 훈련으로 화인은 지금 어느 신입보다 전투력이 향상된 상태였다.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화인이 영기의 흐름에 집중하며 영체 외피의 강도를 높였다.

그리고 가만히 눈을 감고 사패와 시야를 공유했다.

다섯 개의 시야가 동시에 밀려들어도 처음처럼 어지러운 감각은 없었다.

머지않아 신요의 분신들이 처리되는 광경이 속속 들어왔다.

그런데 다섯 개의 시야 중 하나가 어쩐지 수상하다.

그 시야를 골라 확대하자 신요의 분신 중 하나가 어딘가로 빠르게 달려들고 있었다.

화인은 시야를 조금 더 확대했다.

그러자 분신 너머로 자신의 뒤통수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너 정말 뒤를 좋아하는구나.”

어느새 화인이 손에 단검을 움켜쥐었다.

이어 무릎을 굽혀 중심을 낮추고, 오른 다리를 뒤로 물리며 빠르게 회전했다.

단검이 아래에서 위로 호를 그리자 신요의 영체가 반으로 갈라졌다.

휘이이.

분신을 맹추격하던 사패가 경쾌하게 휘파람을 불며 성원을 보냈다.

화인은 별 것 아니라는 듯 입꼬리만 슬쩍 올리고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남아 있던 네 개의 시야가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사패가 할 일을 다 했다는 뜻이다.

이윽고 흩어졌던 사패가 모두 돌아왔다.

다섯이 모두 모이자 사패는 다시 하나가 되었다.

이로써 분신은 다 해치운 건가.

화인이 주변을 살폈다.

신요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번엔 영기를 눈에 집중시켜 영역 안을 모두 살폈다.

더 이상 신요의 기척은 보이지 않았다.

휴우.

화인은 땀도 흐르지 않는 이마를 훔치며 잠시 안도했다.

‘잠깐, 그럼 본체는?’

불현듯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제법이군.”

그때, 어디선가 무헌이 나타났다.

“본체를 찾았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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