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괴이한 존재가 낮게 속삭였다.
“널 기다렸어.”
그의 부드러운 음성이 착착귀의 귀를 파고들었다.
“그날은 우리가 통성명도 안 했더라.”
하필이면 그때 착착귀의 발아래에서 골목을 밝히던 가로등이 느닷없이 깜박거렸다.
“난 신요야. 넌 착착귀지?”
이윽고 빛을 잃은 골목길을 여자가, 그 뒤로 남자가, 또 그 뒤로 괴이한 존재가 걸었다.
“왜 도망쳤어? 그런 줄도 모르고 내가 널 얼마나 찾아다닌 줄 알아?”
착착귀는 기가 질려 손끝과 발끝이 저려왔다.
‘… 날 기다려?’
착착귀가 뻣뻣하게 굳은 목을 간신히 움직여 뒤를 돌아보았다.
‘나를 왜?’
그곳엔 괴이한 존재가, 신요가 그날처럼 미소 짓고 저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착착귀는 시선을 피했다. 차마 눈을 마주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 나를 왜, 찾아……?”
착착귀가 억지로 용기를 짜내어 입을 열었다.
사정없이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짓눌러 보았지만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이거, 조금 섭섭한 걸.”
신요가 뒷짐을 지며 말했다.
“뭐, 뭐가.”
“그날 너도 느꼈잖아.”
“그러니까 뭘.”
영문을 알 수 없는 신요의 말에 착착귀는 다시 한번 용기를 짜내어야만 했다.
“너와 나의 기류 말이야. 정말 최고의 상성이었지.”
신요는 황홀했던 기억을 되새기는 듯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래서 줄곧 찾아 헤맸어, 너를.”
이내 눈을 뜬 신요가 생긋 웃는다.
“너와 하나가 되기 위해.”
착착귀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나, 나를 잡아먹겠다는 말이잖아.’
그리고 저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역시, 돌아오는 게 아니었어.’
소멸까지 각오하고 돌아왔지만, 막상 그러한 상황이 닥치자 겁이 나고 후회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넌 다른 친구의 터에 숨어서 꼼짝도 안 하더라.”
그 순간 착착귀의 눈에 지박령의 얼굴이 어른거리고 뒷골이 주뼛 섰다.
낮에는 양기 가득한 학생들의 영기로, 밤에는 자신의 영기로 착착귀를 숨겨 주고, 빼앗긴 영기도 회복할 수 있게 도와준 친구가 바로 지박령이었다.
더 이상 폐를 끼칠 수 없어 영역으로 돌아왔건만, 착착귀는 당장이라도 지박령의 품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신요는 그런 착착귀의 마음을 아는 듯이 구태여 눈을 맞추기 위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래서 기다렸어. 네가 날 찾아올 때까지. 물론 그게 한 달이나 걸릴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신요가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말을 이었다.
“뭐, 됐어. 결국엔 네가 나를 찾았고, 우리가 이렇게 만났으니까.”
말을 마친 신요가 착착귀를 향해 슬그머니 손을 뻗었다.
움찔.
다가오는 손을 보고 놀란 착착귀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물렸다.
그러나 신요는 아랑곳하지 않고 팔을 더 내뻗었다.
곧이어 신요의 손에 의해 벗겨진 착착귀의 검은 후드.
커다란 후드에 가려 보이지 않던 눈이 그제야 모습을 드러냈다.
퀭한 눈가와 달리 반짝이는 눈동자.
그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신요는 그런 착착귀의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으음, 뭐지?”
돌연 코가 닿을 듯이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중얼거리는 신요.
“… 뭐, 뭐가?”
착착귀가 눈을 피했다.
“다른 게 섞여 있네.”
제 눈을 피하는 착착귀를 보고 신요가 미소를 지웠다.
“누구야? 아, 그 친구?”
나지막이 묻는 목소리.
“무, 무슨 소리야!”
조마조마한 마음을 숨기려 제 딴에는 큰 소리를 내었지만 신요 눈에는 그게 귀여운 모양이다.
피식. 신요가 다시 얼굴에 미소를 그렸다.
“뭐, 상관없어. 넌 이제 내 거니까.”
착착귀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울음을 겨우 참아냈다.
정말이지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어째서, 어째서…….’
신요라는 귀는 어째서 이토록 저를 원하는 걸까.
서로의 기가 상성이 좋아서?
착착귀는 모르는 일이다.
처음 만났던 날, 대량의 기를 빼앗기기만 했으니 상성 따위 알 턱이 없지 않은가.
그 일로 착착귀는 영기를 회복하는 데만 한 달이 걸렸다.
그러니 그때나 지금이나 저 신요라는 귀가 그저 무섭고 두려울 따름이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
공포에 절여진 머리는 뾰족한 수를 내놓을 생각은 않고 그저 빙글빙글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그때였다.
골목에서 비명 소리가 울렸다.
“끼아아악!”
여자의 비명 소리를 듣는 순간, 착착귀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그러자 흐린 줄도 몰랐던 시야가 일시에 맑아졌다.
‘… 내가, 책임지기로 했잖아. 겁먹고 울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착착귀는 찰나에 생각을 고쳐 먹고 재빠르게 영체를 안개로 화했다.
발아래 골목으로 내려가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착착귀의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신요가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안개로 완전히 화하기 직전, 신요가 영기로 옭아매 방해한 것이다.
“비켜!”
“인간들을 구하고 싶어?”
착착귀가 처음으로 신요와 눈을 똑바로 맞추었다.
“그럼 내기할래? 누가 먼저 저 인간들을 차지하는지.”
“싫어. 비켜.”
착착귀가 단호하게 거절했다.
“네가 먼저 저 둘을 구하면, 널 포기하고 이 영역에서 물러날게.”
신요가 제 멋대로 내기 조건을 나불거렸다.
거절의 말 따위는 듣지 못했다는 듯이.
“대신 내가 먼저 저 둘을 차지하면, 너도 나랑 같이 가는 거야.”
착착귀는 대답하지 않았다.
“시이.”
그러나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작되어 버린 내기.
“… 작!”
착착귀는 이를 악물고 여자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그녀만이라도 사수하기 위하여.
그러나 실패했다.
착착귀가 여자의 곁에 이른 순간, 그 자리가 텅 비어 버렸기 때문이다.
남자는 말할 것도 없었다.
착착귀는 남자는 물론이고, 여자도 지키지 못했다.
“안 돼….”
망연자실한 착착귀가 고개를 들어 신요를 바라봤다.
의식을 잃은 두 사람은 이미 신요의 양손에 붙들려 있었다.
아니, 신요가 둘이 되어 각각 한 사람씩 붙잡고 있었다.
착착귀의 눈이 더 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가 이내 돌아왔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처음 나타난 순간에도 신요는 둘이었다.
남자의 뒤를 쫓던 신요, 저를 노리던 신요.
‘왜 그걸 잊고 있었을까.’
그러면서도 착착귀의 시선은 저절로 건물의 옥상으로 향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이럴 수가.’
거긴엔 정말로 아래를 관망 중인 또 하나의 신요가 서 있었다.
“어떻게……?”
착착귀가 뒷걸음질 치며 세 신요를 번갈아보았다.
“놀랐어?”
그때 뒤에서 들리는 신요의 목소리.
네 번째 신요가 나타나 물었다.
획 돌아선 착착귀가 네 번째 신요와 마주했다.
“저 인간들, 살리고 싶어?”
신요가 착착귀를 맴돌며 말했다.
“그 방법, 내가 알려줄까?”
방법이야 뻔했다.
“너.”
이제껏 저를 노리던 신요였으니.
“그럼 약속해.”
착착귀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뜬 다음, 입을 열었다.
그의 노림수를 알고도 순순히 걸려든 것이다.
“이 영역 안의 인간과 고혼은 더 이상 건드리지 않기로.”
“으음.”
신요가 고민하는 척 턱을 쓸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좋아!”
이내 활짝 웃으며 대답하는 신요.
때마침 인질로 잡혔던 여자의 의식이 돌아왔다.
“사, 살려, … 주세요.”
여자는 안간힘을 다해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가느다란 그녀의 목소리는 누구에게도 닿지 못하고 흩어져 버렸다.
“뭐야, 벌써 깬 거야?”
신요가 먼저 깬 여자를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쳤다.
“뭐 하는 거야!”
갑작스러운 신요의 행동을 보고 착착귀가 놀라 소리쳤다.
“이 정도로는 안 죽어.”
바닥에 나동그라진 여자의 신음 소리가 골목에 희미하게 울려 퍼졌다.
“아, 이 건 더 세게 던져도 되지?”
큭큭. 신요가 말하자 다른 신요가 키득거렸고, 또 다른 신요가 동조했다.
“음흉한 놈이니까.”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긍정도 할 수 없었던 착착귀는 고개를 돌려 신요들의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마치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남자를 반대편으로 멀리 내던져 버렸다.
“이제야 우리 둘만 남았네.”
착착귀를 둘러싼 신요 중 하나가 말했다.
“약속 지켜!”
떨림을 숨기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하나와 눈을 맞춘 착착귀.
“봤잖아. 저 인간들 놓아주는 거.”
다른 신요가 대답했다.
“앞으로도 계속 건들지 말라고.”
착착귀의 시선이 움직이지 않는다.
“알아, 알아.”
신요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착착귀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의심이 더욱 깊어졌기 때문이다.
‘정말 믿어도 되는 걸까. 속박이라도…….’
순간 머리가 멍해진 착착귀, 몸도 벌써 나른하다.
“언제부터…….”
진작부터 착착귀의 영기를 슬그머니 빼앗아 흡수하고 있던 신요는 그가 눈치채자 곧장 본색을 드러냈다.
“나를, 속였어?”
급속도로 빠져나가는 영기에 차츰 흐려지는 의식을 붙잡고 착착귀가 말했다.
“큭큭큭, 순진하긴. 네 친구도 곧 먹어 줄게.”
신요들이 한꺼번에 비웃었다.
‘…… 안 돼. 싫어…….’
착착귀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지박아……, 미안해.’
그 순간 착착귀의 영체를 감싸고 푸른빛이 번쩍 빛났다.
팟!
탁, 타닥, 탁.
“거기까지.”
착착귀를 호위하듯 둘러싸고 잠행부 흑조 삼차사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