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왜……?”
화인이 지금 있는 곳은 염라국 별관 진료소였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와 한 진료실 안에서 대기 중인 화인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검진하러 왔다.”
진료실 한쪽 벽에 기대어 팔짱을 끼고 무헌이 말했다.
“영력이 연이어 발현됐으니 영체에 무리가 가지는 않았는지 확인차 왔어요.”
무헌 옆에 곧게 선 선율이 덧붙였다.
그때, 문이 열리고 진료신의 주인이 들어왔다.
하얀 가운을 걸치고 중단발의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여자 차사였다.
“오랜만.”
무헌을 향한 인사는 무척이나 건조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그녀는 이미 이쪽의 용건을 아는지 화인에게 시선을 던지며 물었다.
“이 친구야?”
무헌이 가벼운 눈짓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반가워요. 난 정화부 수석 차사 마혜석이에요.”
혜석이 자기를 소개하며 등받이 의자에 몸을 내던지듯 풀썩 기대어 앉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잠행부 신입 차사 염화인입니다.”
수석 차사라는 말에 화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기를 소개했다.
그러자 혜석이 힘없이 손을 팔랑거리며 앉기를 권했다.
혜석의 손짓에 슬그머니 도로 자리에 앉은 화인.
“어디 보자.”
혜석이 화인의 턱 끝을 잡고 얼굴을 요리조리 살폈다.
“으음.”
목을 울리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뜬 혜석이 화인이 앉은 의자를 빙글 돌리더니 화인의 등에 살며시 손을 가져다 대었다.
혜석의 손이 닿은 곳으로 보드라운 영기가 스몄다.
이 보드라운 영기는 서서히 퍼져나가 화인의 영체를 모두 감싼 다음, 이내 스러졌다.
어쩐지 피곤이 싹 가신 느낌이다.
“동시 발현이 아니라 순차 발현이네. 남은 속성도 곧 발현되겠어.”
혜석이 화인의 의자를 원위치로 돌리며 말했다.
“발현 간격이 짧아서 영체에 조금 무리가 가긴 했지만 현재로선 전혀 문제없어.”
혜석이 무헌을 향해 던졌던 시선을 거두고 화인을 향해 말했다.
“아직은 발현으로 인한 각성의 여운이 남아 피로가 잘 느껴지지 않겠지만, 그 여파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몰려와 곤란한 일이 생기곤 하니까, 미리 치유해 뒀어요.”
화인은 혜석의 건조한 말투에서 철저한 직업의식과 더불어 약간의 다정함을 느꼈다.
“감사합니다.”
화인은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멋있어.’
언젠가 저도 흔히 ‘커리어우먼’이라 칭하는 멋진 여성이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눈앞의 혜석은 그때의 화인이 꿈꾸던 이상형을 그대로 본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꼭 같았다.
화인은 그런 혜석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런 일은 굳이 내가 아니어도 되잖아.”
혜석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맡기고 무헌을 흘긋 노려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바쁜데, 일 늘리지 말아 줘.”
이어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성가시다는 듯 말을 던지는 혜석.
아닌가.
화인은 잠시 혜석에 대한 감상을 수정해야 하나 망설였다.
“그리고 여기 올 게 아니라 양성소로 갔어야 하는 거 아니야?”
혜석이 지그시 눈을 감고 한층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양성소?’
화인이 뜨악하는 표정으로 무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양성소는 영기 운용과 영력, 체술을 훈련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그럴 참이다.”
무헌이 혜석의 말에 답한 뒤, 화인에게 들으라는 듯 말을 이었다.
“발현했으니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해야지.”
화인은 힘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는 말이었다.
현장에 투입되고 보니 차사는 강해야 했다.
특히 잠행부 차사는 더욱.
화인은 어깨가 축 쳐진 채로 혜석의 진료실을 나왔다.
*
“여어!”
무거운 문을 열고 훈련실 안으로 들어가자 한 차사가 먼저와 기다리고 있었다.
양성소의 수석 차사 양무화였다.
검은색 전투복에 가죽 하네스를 차고 긴 머리를 높이 말아 묶은 무화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으헥.”
화인의 몸이 저절로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으헥이 뭐야, 으헥이!”
수습 시절 몇 번 본 게 다지만 무화는 화인에게 친근하게 다가와 어깨동무를 했다.
“여어.”
무헌이 한 손을 들고 무화와 똑같이 인사했다.
“부탁하지.”
무헌은 이런저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
“맡겨만 줘!”
무화도 사정을 따져 묻지 않았다.
그저 화인을 향해 엄지를 펼쳐 보이며 윙크할 뿐이었다.
정말이지 활기찬 영현이었다.
‘다른 양성 차사들도 많을 텐데, 왜 하필…….’
무화의 어깨동무에 묶여 버린 화인이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선율을 올려다보았다.
선율이 움찔하고 무헌 뒤로 한 걸음 물러서더니 시선을 피했다.
“그럼, 수고.”
무헌이 화인을 흘끗 보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 뒤로 선율이 두 주먹을 쥐어 보이며 격려했지만 전혀 기운이 북돋워지지 않았다.
그렇게 지옥 훈련이 시작되었다.
잠행부의 수석 차사 태무헌을 상급자로 둔 덕인지, 탓인지, 무화는 직접 화인의 훈련을 전담했다.
그 까닭에 화인은 수많은 차사에게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정작 부러움의 대상인 화인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혹독한 훈련에 정말로 지옥을 맛보았다.
“어때?”
훈련실의 무거운 문이 열리고 화인을 두고 떠났던 상급 차사 둘이 들어왔다.
나흘만이었다.
‘데리러 온 건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화인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추가 발현은 없었지만 배우는 게 빨라.”
무화가 두 손을 허리에 얹고 상쾌하게 웃었다.
“그럼 이번 훈련은 이 정도로 하지.”
무헌이 화인을 향해 턱짓했다.
“따라와라.”
마치 이 말 한마디만을 기다렸던 것처럼 화인은 누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어 무화에게 정중하게 인사하고 헐레벌떡 훈련실을 벗어났다.
“고생했어요.”
선율의 미소에 미안함이 담겼다.
“고생은요, 뭘.”
화인도 따라 미소 지었다.
녹초가 되었어도 화인은 훈련실을 벗어났다는 사실에 마냥 기분이 좋았다.
그때, 무헌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것이 화인의 눈에 들어왔다.
‘뭐야? 뭔데?’
화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예상보다 빠르군.”
“뭐가요?”
불길한 예감이 밀려들었다.
“호출.”
무헌이 자신의 차사패를 꺼내어 보였다.
차사패 위로 붉은색의 좌표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
“신기해.”
무헌이 던져 준 동그란 패를 손에 꼭 쥐고 착착귀가 혼자 중얼거렸다.
착착귀는 세 차사를 만난 직후 자신이 버리고 도망친 영역으로 돌아왔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 공간으로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착착귀는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괴이한 존재가 당장이라도 나타나 저를 잡아먹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제 영역이니 제가 책임지겠다던 용기와 다짐은 벌써 휘발되어 사라졌다.
착착귀는 일단 은신처로 몸을 숨겼다.
은신처라면 괴이한 존재가 쫓아오지 못할 테니까.
그러나 은신처의 안락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에 대한 공포를 떨쳐내지 못한 채로 숨은 탓이다.
착착귀는 매 순간 공포에 사로잡혀 두려움에 떨었다.
“무서워. 도망치고 싶어.”
착착귀가 한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중얼거렸다.
“지박아, 나 무서워.”
그런데 그때, 주머니에서 무언가가 반짝 빛났다.
세 차사 중 크고 무섭게 생긴 차사가 던져 준 물건이었다.
착착귀는 그것을 꺼내어 두 손에 꼭 쥐었다.
-무슨 일이 생기거든 이걸로 연락하도록.
동시에 그의 말이 떠올랐다.
“연락할까. 무슨 일은 없지만…….”
역시 혼자서는 못하겠어.
“아니야, 내가 하기로 했잖아.”
착착귀는 작고 동그란 패를 두 손에 꼭 쥐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이제껏 사그라들지 않던 불안과 공포가 살그머니 가라앉았다.
“신기해.”
이것 덕분일까.
착착귀는 그것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래, 이럴 때가 아니야.”
착착귀는 제가 도망치고 숨어 있는 동안 괴이한 존재에게 잡아 먹혔을지도 모르는 고혼들을 떠올리며 용기를 내기로 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이걸로 연락하면 돼!”
하며 괴이한 존재를 찾아 나선 것이 이틀 전의 일이었다.
착착귀는 자신의 영역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샅샅이 뒤졌다.
물론 당당하게 드러내놓고 움직이지는 못했다.
살금살금 돌아다니며 고혼들에게 수소문하기도 하고, 제가 자주 머물던 곳에서 잠복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역 안을 아무리 뒤져도 괴이한 존재는 털끝 하나 보이지 않았다.
분명 제가 도망쳤을 때는 영역 안에서 고혼을 사냥하던 귀였다.
어째서 지금은 털 끝 하나 보이지 않는 걸까.
‘다른 곳으로 가버렸나.’
그랬으면, 하고 약간의 바람이 섞인 생각을 하며 착착귀가 마음을 조금 내려놓으려던 때였다.
그리고 그때, 착착귀는 익숙한 건물 옥상에 걸터앉아 발아래 골목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발아래 골목길은 괴이한 존재를 처음 만났던 그 길이었다.
어두운 골목길은 여전히 인적이 드물었다.
때마침 한 여자 골목길로 들어왔다.
이어 한 남자가 여자의 뒤를 쫓아 들어왔다.
기시감.
그때와 똑같은 상황에 묘한 불안감이 밀려온 착착귀.
서서히 남자 뒤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착착귀의 몸은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골목 끝에 있어야 할 괴이한 존재의 목소리가 제 뒤에서, 제 오른쪽 귓가에서 들렸기 때문이다.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