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착착귀는 분명 남자 외에 다른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저를 짓누르듯 밀려오는 강한 영기에 등줄기를 타고 두려움이 피어올랐다.
“아~, 아까워라.”
예쁘장하게 생긴 괴이한 존재가 느른하게 말했다.
“놓쳐 버렸네.”
괴이한 존재는 여자가 빠져나간 골목길 끝에서 시선을 거두고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남자 먼저 먹고 나서 여자도 먹으려고 했는데.”
그제야 그의 손아귀에 뒷덜미를 잡혀 꼼짝 않고 있는 남자가 착착귀의 눈에 들어왔다.
“난 맛있는 걸 마지막에 먹는 성격이란 말이야.”
괴이한 존재의 시선이 느리게 움직이더니 착착귀의 눈에 이르러 멈추었다.
그 순간 착착귀는 온몸이 얼어붙었다.
입도 벙긋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붙박였다.
괴이한 존재에게 압도되고 만 것이다.
“어쩔 수 없지. 대신 널 먹으면 되겠다.”
괴이한 존재가 생긋 웃었다.
“이 정도 영역을 가진 귀라면 인간의 영보다야 영양가가 높을 테니까.”
그 어떤 위협보다 무서운 미소였다.
“오히려 잘 된 건가. 후훗.”
그 순간이었다.
섬뜩한 미소가 착착귀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괴이한 존재가 성큼 다가온 것이다.
착착귀의 시야를 가득 채운 괴이한 존재의 눈코입.
그것은 착착귀가 놀랄 틈도 없이 곧바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차츰 속도가 더해지고 빙글빙글 어지럽게 회전하는 눈코입.
그것은 이내 빨라진 회전으로 착착귀의 시야 속에서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어라?’
시야가 일그러지자 착착귀는 차츰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탓에 영체에 긴장도 풀렸다. 영체가 나른해질 정도였다.
‘왜 이렇게 힘이 빠지지. 분명 기가 질릴 만큼 무서웠는데…….’
어느새 눈앞이 아득해진 착착귀.
그러다 의식이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 착착귀의 정신이 퍼뜩 돌아왔다.
‘안 돼! 어서…….’
이 나른함의 이유를 깨달은 탓이다.
착착귀의 영체에서는 이미 상당한 영기가 새어나간 뒤였다.
새어나간 영기는 당연하게도 괴이한 존재에게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여기서 빠져나가야 해. 얼른, 얼른 도망쳐야…….’
망설일 틈 따위는 없었다.
착착귀는 남은 영기를 끌어모아 재빨리 검은 안개로 화해 그 자리를 벗어났다.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아 아예 영역 밖으로 도망쳐 버렸다.
이것이 한 달쯤 전의 이야기라고 했다.
“그래서 나랑 같이 지내고 있어.”
지박령이 말했다.
“그 후로 영역에서 자꾸 영이 사라져서…….”
커다란 후드를 뒤집어쓴 착착귀가 우물쭈물 변명했다.
“얼마나 사라졌지?”
무헌이 물었다.
“… 적어도 열 명?”
“열 명이요?”
놀란 화인이 저도 모르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리 높여 되물었다.
반경 2킬로미터 내에서 한 달 동안 최소 열 명이 의문사를 당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화인의 목소리에 놀란 착착귀가 어깨를 움츠리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다 산 사람은 아닐 테죠?”
화인의 오해를 풀어주려는 듯이 선율이 나긋하게 물었다.
“아, 응. 산 사람은 다섯이야.”
눈 밑이 퀭한 착착귀는 풀 죽은 채 대답했다.
‘다섯도 많아.’
화인은 속으로만 생각했다.
“나머지는 중음을 떠돌던 고혼이었어. 아마 지금쯤이면 더 많은 고혼이 잡아먹혔을 거야.”
착착귀의 목소리에 물기가 스민다.
“내가 영역을 버리고 도망쳐서…….”
어느새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인 착착귀.
“야! 그게 왜 네 탓이야! 영을 잡아먹은 건 그 놈인데.”
지박령이 거칠게 위로했다.
“그렇지만…….”
“지박령의 말이 맞아요. 당신 탓이 아니에요.”
선율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달랬다.
화인도 그를 향해 고개를 강하게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아무래도 두억시니 패 같죠?”
“으음.”
선율의 예상에 무헌이 목을 울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최근 영이 소실되는 의문사가 늘었다.”
무헌이 정면의 착착귀와 눈을 맞추었다.
“착착귀, 네 영역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허업.”
착착귀는 놀라 벌어진 입을 손으로 막았지만 눈에는 두려움이 그대로 드러났다.
“쯧.”
그와 반대로 바로 옆 지박령은 인상을 구기고 혀를 찼다.
“수법은 다르지만 역시 두억시니 패와 연관되어 있을 거다. 현재 급히 세를 키우는 듯하니.”
“두억시니 패가 뭐죠?”
무헌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화인이 곧장 물었다.
“중음에는 ‘중음의 왕’이라 불리는 존재, 두억시니가 있다. 그를 중심으로 한 조직이 두억시니 패다.”
무헌이 짧게 설명했다.
“중음에는 아무것도 없다더니, 조직 같은 건 있나 봐요? 깡패 뭐 그런 조직인가요?”
“깡패라,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에요.”
후훗, 선율이 웃으며 설명을 이었다.
“사실 두억시니 패는 두억시니 추종자들의 모임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해요.”
중음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했지만, 영기를 가진 고혼들이 지내는 곳인 만큼 완전한 진공 상태라고는 할 수 없다.
이승이나 저승처럼 자연 회복이 될 정도는 아니기에 아무것도 없다고 표현하는 것이지, 희미하게나마 음기와 양기가 흐르긴 흐른다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존재가 두억시니예요.”
선율이 강조했다.
“두억시니는 아주 오랜 세월 중음을 지킨 귀신인데, 그런 만큼 신에 버금가는 영기를 지녔죠.”
때문에 두억시니의 영기가 미치는 영향권 안에 들어가면 고혼들의 영기가 일부 회복되어 자연 소멸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두억시니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 무척이나 치열하다고.
“추종자가 생길만하네요.”
화인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현재 두억시니 패는 두 갈래예요. 하나는 아귀 파, 다른 하나는 정귀 파.”
선율이 손가락을 펼쳐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아귀와 정귀는 두억시니의 심복과 같은 존재죠.”
“그럼 중음에는 두억시니의 세력뿐이라는 건데, 어째서 세를 키운다는 거죠?”
화인이 턱을 쓸며 물었다.
“같은 상관을 모신다고 해서 꼭 사이가 좋으란 법은 없으니까요.”
선율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 말은…….”
“아귀와 정귀의 세력 다툼이 아닐까, 하고 추정 중이에요. 물론 다른 가능성도 있지만요.”
“일이 커지는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심각해진 화인과 달리 선율의 미소는 산뜻하다.
‘설마, 이러다 선업 다 쌓기도 전에…….’
화인은 고개를 내저었다.
‘좋은 생각, 좋은 생각.’
그리고 선율의 얼굴을 바라봤다.
“당장 눈앞에 일어난 일을 해결하다 보면 뒤따르는 큰 일도 해결할 수 있어요.”
“그럼!”
먼저 지박령이 탁자를 쾅 내리치며 크게 동의했다.
“그, 그렇겠지?”
착착귀는 미심쩍어하면서도 용기를 내는 듯이 보였다.
‘함께 나설 생각인가?’
큰 일에 휘말리는 것이 탐탁지 않았던 화인은 그저 그들의 호응이 의아할 뿐이었다.
“그럼, 우선 착착귀의 영역을 침범한 귀부터 잡을까요?”
선율이 모두를 향해 말했다.
“응!”
“…응.”
둘의 대답을 들은 선율이 화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싱긋 웃으며 지그시 바라보는 선율.
“네.”
화인이 선율과 눈을 맞추고 대답한 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저는 차사니까 당연히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제 의사를 확인한 선율에게 화인이 물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에도 자신의 의지가 들어가는 건 또 다른 문제니까요. 그리고 아무리 차사라 해도 못하는 일을 억지로 할 수는 없잖아요.”
선율의 환한 미소가 날카롭게 벼려졌다.
‘못하는 일, 나한테 하는 소린가.’
화인은 다소 겸연쩍어 시선이 저절로 아래로 떨어졌다.
이마에 땀이 흐르는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발현이 늦은 데다 상급 차사들의 도움만 받고 있으니 제 부족함이 더욱 크게 느껴진 탓이다.
신입이니 당연한 일인데도.
그러나 선율은 사실 그런 의미로 한 말이 아니었다.
능력 밖의 일은 도움을 요청하거나 상급 차사에게 양도하라는 뜻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오해한 화인은 돌연 의욕을 불태웠다.
‘흥, 못하는 게 어딨어. 하면 하는 거지.’
기왕 하는 거 잘해보자던 다짐을 다시금 되새긴 화인이었다.
“음!”
화인이 시선을 들고 고개를 끄덕이며 혼자 납득했다.
짝!
그때, 선율이 박수로 주의를 끌었다.
“그럼 작전부터 짤까요?”
선율의 시선을 받고 무헌이 입을 열었다.
“오늘 사냥에 실패했으니 며칠 내로 또 나타날 거다.”
사냥, 무서운 단어 선택이다. 그러나 딱 맞는 표현이었다.
“우리의 목표는 우선 인간의 피해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고혼의 피해는 불가피해지겠지.”
무헌이 가만히 듣고 있던 착착귀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너도.”
착착귀가 아연한 표정 그대로 굳었다.
“뭐라는 거야!”
지박령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영역으로 돌아가라.”
무헌은 아랑곳 않고 말했다.
“미쳤어!”
지박령이 무헌에게 달려들었다.
“선택해. 네 영역 안에서 다른 고혼들이 잡아먹히도록 둘 건지, 네가 미끼가 될 건지.”
이토록 무심한 협박이라니.
화인도 기가 질렸다.
착착귀는 고개를 푹 숙이고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내가 할게!”
착착귀가 두 주먹을 꼭 쥐고 대답했다.
“착착아, 꼭 네가 안 가도 돼. 내가 갈까?”
지박령이 어깨를 붙잡고 말렸다.
“아니, 내 영역의 일이니까 내가 책임질래.”
착착귀가 지박령의 두 손을 붙잡았다.
“지박아, 그동안 고마웠어.”
그가 처음으로 웃었다.
“착착아….”
지박령이 울먹이다 무헌을 향해 거친 언행을 펼쳤다.
“저, 피도 눈물도 없는 자식!”
그러나 무헌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받아라.”
무헌이 착착귀와 지박령에게 차사패와 닮은 것을 하나씩 던져주었다.
“무슨 일이 생기거든 이걸로 연락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