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사 염화인 20

by 아무




“음…, 으음…….”

남자가 떨어진 낡은 건물의 옥상에 올라선 화인이 사방을 살폈다.

그리고 방법을 모색했다.

착착귀, 어떻게 찾을 것인가.

‘남성형, 검은 안개, 장난꾸러기, …….’

지금 가진 정보로는 시각과 청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으으음…….”

낮은 침음을 울리며 고민하는 화인의 미간에 川자가 새겨졌다.

‘어쩐다…….’

화인은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뭐라도 해 보자, 하는 생각으로 기척을 지우고 시력을 높였다.

이어 반경 2킬로미터 내에 있는 남성형 귀신을 추리고, 그들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그러나 어두운 탓인지, 관찰력이 부족한 탓인지, 그 많고 많은 남성형 귀신 중에는 검은 안개는커녕 검은 안개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다음으로는 청력을 높였다.

장난을 좋아한다고 했으니 사람들이 놀라는 소리를 찾으면 될 터이다.

그러나 이 방법도 별 다른 성과가 없었다.

소리가 너무 많이 섞여 들어 분간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역시 발로 뛰는 수밖에 없나…….’

화인은 터덜터덜 벽 난간이 부서진 낭떠러지로 다가가 섰다.

그리고 영역의 끝으로 이동하기 위해 차사패에 영기를 흘려보냈다.

그때였다.

“내 도움이 필요해?”

화인의 영체를 감싸고 웬 음성이 울렸다.

“우왁!”

놀란 화인이 소리를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뭐, 뭐야!”

고개를 두리번거리자 어디선가 연보랏빛 불꽃 하나가 나타나 화인 주위를 한 바퀴 휘 돌았다.

그리고 눈앞에 둥실 떠오르는 연보랏빛 불꽃.

“너, 뭐야!”

화인이 태세를 갖추고 소리쳤다.

“나?”

주먹만 한 불꽃이 눈을 반짝 떴다.

“그래, 너!”

“후후, 바보.”

“뭐? 바보?”

화인의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그래, 바보. 나를 모르다니.”

그 순간, 선율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그나저나 차사패가 아직 자고 있죠? 얼른 깨어나야 할 텐데 말이에요.

찻집에 앉아 진달래 화채를 마시며 말하던 선율.

화인은 의아했다.

차사패가 깨어난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아직 제가 모르는 기능이 많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일까.

화인이 사뭇 진지한 얼굴로 차사패를 만지작거리자 미소 띤 선율이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잠행부의 차사패에는 비밀이 있어요.

-비밀이요?

화인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게 말이죠.

선율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잠행부의 차사패에는 도깨비불이 잠들어 있어요. 그래서 잠행부의 차사패는 일정량 이상의 영기가 주입되면 그 속에 잠들어 있던 도깨비불이 깨어나요.

-도깨비불……?

화인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깨어난 도깨비불에는 그 차사의 영기가 깃들기 때문에, 일종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가 되죠.

“설마, 너 차사패야?”

화인이 얼빠진 표정으로 물었다.

“맞아, 나는 네 차사패 안에 잠들어 있던 도깨비불이야.”

연보랏빛 불꽃이 인간의 형상으로 변했다.

화인과 비슷한 키에 왜소한 체격을 가진, 언뜻 고등학교 시절 화인의 모습이 엿보이는 형상이었다.

형상은 변해도 여전히 온몸에 불꽃을 휘감고 있는 도깨비불.

“왜 이제야 깨운 거야. 답답해 죽는 줄 알았네.”

정식 차사가 된 지 이제 이틀인데…….

화인은 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뭐, 됐어.”

도깨비불이 기지개를 켰다.

“동트기 전까지 찾으려면 서둘러야겠어.”

이제 막 깨어나 의욕이 넘치는 도깨비불이 먼저 말을 꺼냈다.

제 영기가 깃들었기 때문일까.

화인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수행해야 할 임무를 알고 있었다.

“반경 2킬로미터랬지. 내가 둘러보고 올게. 넌 여기에 있어.”

“나는 여기 있으라고?”

화인이 의아하여 물었다.

“응, 수색은 내게 맡겨.”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한 도깨비불이 다시 불꽃으로 돌아갔다.

이어 불꽃이 반으로 쪼개지더니 둘로 나뉘고, 둘에서 넷으로, 넷에서 여덟으로, 점점 그 수가 늘어났다.

이윽고 화인을 둘러싼 수십 개의 도깨비불.

“다녀올게.”

“다녀올게.”

“다녀올게.”

도깨비불이 동시에 인사를 남기고 사방으로 흩어져 날아갔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아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의 시야가 화인의 눈앞에 동시에 펼쳐졌다.

시야가 공유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놀라움도 잠시.

빨리 감기를 한 듯 빠르게 재생되는 영상 수십 개가 한꺼번에 밀려드는 탓에 멀미가 일었다.

“윽, 어지러워.”

이래서 여기에 있으라고 한 건가.

게다가 화인은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데도 영력 소모가 상당했다.

수십 개의 도깨비불이 동시다발적으로 활동하기 때문인 듯했다.

“차…, 사패야. … 천천히. 멀미 나.”

화인이 비틀거리며 웅얼거렸다.

“아차차, 의욕이 넘쳐버렸네.”

장난스럽게 말하면서도 멈추지 않던 도깨비불은 어느새 영역 내의 수색을 끝냈다.

“영역 내에는 없는 것 같으니 수색 구역을 확장할게.”

그리고 화인을 배려한 것인지 도깨비불의 수를 반으로 줄였다.

그 덕에 어지럼증이 가라앉고, 밀려드는 정보를 처리할 여유가 생겼다.

화인은 지그시 눈을 감고 머릿속에 흐르는 영상에 집중했다.

“아!”

얼마 후, 화인의 입에서 외마디 소리가 흘러나왔다.

머릿속에 흐르는 영상 중 하나에 검은색 후드 망토를 뒤집어쓴 한 남자가 보였기 때문이다.

화인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낮게 울리는 화인의 음성.

“찾았다.”

건물 숲 너머로 동이 터 올랐다.

*

“제법이군.”

화인이 차사패가 지정해 준 좌표로 이동했을 때, 무헌이 한 말이다.

어째서 두 상급 차사, 무헌과 선율이 먼저 와 있는 걸까.

게다가 이 분위기는 뭐지.

건물 옥상에 왜 카페가 차려져 있어?

화인은 멀뚱히 서서 무헌과 선율을 바라보았다.

“우리도 지금 막 왔어요.”

선율이 달래듯 말했다.

그럴 테지.

도깨비불의 시야 속에서 그들을 보지 못했으니.

그런데 왜 묘하게 배신감이 드는지 모를 일이었다.

“드디어 차사패가 깨어났네요.”

선율의 말에 도깨비불이 화인 옆으로 와 서더니 정중히 인사하고 슬그머니 차사패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축하해요. 이제 잠행부의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선율은 축하했지만, 뒷말을 들으니 그게 과연 축하받을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어서 와서 앉아요.”

선율이 제 옆에 빈자리를 권했다.

둥근 테이블에는 무헌과 선율은 물론, 착착귀와 다른 영도 앉아 있었다.

화인이 조금 부루퉁한 얼굴로 다가가 선율 옆 자리에 털썩 쓰러지듯 앉았다.

단시간에 영력 소모가 컸던 탓도 있지만, 약간의 불만을 표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반응은 다른 데서 왔다.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착착귀가 화인과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랐다.

그러더니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교복 입은 여자 고혼 옆에 바짝 붙어 화인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아닌가.

‘장난치고 놀라게 하는 걸 좋아한다더니, 왜 자기가 더 겁을 먹지?’

화인이 저도 모르게 착착귀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교복 입은 여자 고혼이 사나운 눈으로 화인을 노려보았다.

시야 속 사나운 눈을 발견한 화인은 습관적으로 피하려다가 슬쩍 눈에 힘을 실었다.

이승에서야 굽히고 들어갔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으니.

이제 걸어오는 싸움은 피하지 않을 테다.

“다 모였으니 이야기를 들어 보도록 하지.”

날 선 분위기를 깨고 무헌이 말했다.

“크흠. 척척이 대신 내가 설명할게.”

교복 입은 여자 고혼이 헛기침을 하고 나섰다.

“지박아….”

착착귀가 울먹이며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고마움의 표시이리라.

“여기 지박령이에요.”

그녀의 존재에 대해 미처 묻지 못한 화인에게 선율이 귀속말로 알려주었다.

고혼은 지금 그들이 머무는 여자 고등학교의 지박령이었다.

“그 녀석이 나타난 건 한 달쯤 전이었어.”

*

야심한 밤, 착착귀는 인적이 드문 골목길 옆 낮은 건물 옥상 위에 올라앉아 오늘의 먹잇감을 물색했다.

장난칠 생각에 신이 난 착착귀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발아래 골목길을 내려다보았다.

“누구로 할까?”

때마침 한 여자가 골목길로 들어왔다.

그런데 여자의 거동이 수상하다.

종종걸음으로 걸으며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여자.

그것이 이상하여 착착귀는 여자의 뒤로 시선을 옮겼다.

한 남자가 여자의 뒤를 쫓아 골목길로 들어왔다.

언뜻 보기에는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음흉한 미소를 숨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먹이 발견.”

착착귀의 입에도 미소가 걸렸다.

휘릭.

착착귀가 어두운 골목길을 걷는 여자 옆으로 가 나란히 섰다.

그리고 얼마간 따라 걸었다.

이를 알리 없는 여자는 여전히 뒤를 살피며 불안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 사이 착착귀는 신나서 키득거리며 조금 더 따라 걸었다.

그리고 골목길이 끝날 무렵, 남자를 놀라게 하기 위해 뒤돌아선 순간이었다.

착착귀의 눈앞에는 남자 대신 다른 자가 서 있었다.

“누구?”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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