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에잇, 비이러머글!!”
술에 취한 중년의 남자가 비틀비틀 걸으며 홀로 분개했다.
그때,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여자가 갑작스러운 고성에 흠칫 놀랐다. 그러더니 뒤를 흘끔 돌아보고는 남자를 빠르게 지나쳤다.
“으엉?”
누가 남자의 길을 가로막았다.
“누구야?”
남자가 버럭 성을 내고는 눈을 꿈벅거렸다.
흐릿해진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속상한 일이 있었나 봐요.”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예쁘장한 사람이었다.
“있으면, 어쩔 건데! 어!!”
소리 지르는 남자의 상체가 이리저리 휘청였다.
“제가 위로해 드릴까요?”
흐린 시야를 뚫고 들어오는 상대의 생글생글한 얼굴.
남자의 음성이 차츰 누그러들었다.
“뭐? 위로…?”
“네, 위로해 드릴게요. 저랑 같이 가요.”
상대가 남자에게 팔짱을 끼며 말했다.
“크흠, 그, 그럴까.”
남자가 헤죽 웃었다.
“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야? 거, 대충 아무 데나…….”
비틀거리면서도 상대가 이끄는 대로 히죽대며 걷던 남자가 불평을 입에 올렸으나 끝을 맺지 못했다.
“다 왔어요.”
“여, 여기?”
남자가 두리번거리다 눈을 비비고 다시 주변을 살폈다.
다시 보아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곳은 폐건물이었다.
“올라가요, 어서.”
“내, 내가 이런 취미는 없는데…….”
말과는 다르게 남자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술기운 때문만은 아니었다.
상대의 미소에 홀려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는 남자.
계단을 오르는 사이 어느 정도 술기운이 가셨는지 남자의 비틀거림이 잦아들었다.
“어디까지 올라가?”
상대가 검지로 하늘을 가리켰다.
“끝까지요. 제일 높은 곳에서 해야 짜릿하죠.”
“그렇다면야, 뭐.”
이후 남자는 군말 없이 15층까지 계단을 올랐다.
드디어 건물 옥상에 도착한 둘.
“허억, 허억.”
가쁜 숨을 내쉬는 남자와 달리 상대는 평온하게 야경을 둘러보았다.
“이리 와 보세요. 야경이 정말 멋져요.”
“아이고, 잠깐만…….”
힘겨운 계단 등반으로 가쁜 숨을 몰아쉰 탓에 아직 혈액 속에 남은 술기운이 빠르게 증폭되어 남자는 지금 눈앞이 빙글 돌고 토기가 밀려왔다.
그러나 상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의 팔을 잡아끌었다.
“자, 잠깐.”
휘릭.
별안간 벽 난간이 무너진 낭떠러지를 등지고 서게 된 남자.
남자는 순간 모골이 송연해지고 밀려오던 토기도 가라앉았다.
서벅, 서벅.
남자는 얇게 모래가 깔린 바닥에 발을 끌며 찔끔찔끔 뒷걸음질 쳤다.
상대가 서서히 거리를 좁혀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더는 피할 곳이 없다.
“이, 이봐.”
남자가 상대를 부르며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상대가 서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었다.
남자는 당황하여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때, 남자 앞으로 밀려드는 검은 안개.
검은 안개는 순식간에 남자를 에워싸고 희롱했다.
앞으로 당겼다가 뒤로 밀었다가, 오른쪽으로 돌렸다가 왼쪽으로 돌렸다가, 이리 끌고 왔다가 저리 끌고 갔다가.
처음에는 낭떠러지가 신경이 쓰여 안절부절못하던 남자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정신이 혼미해지고 안개가 이끄는 대로 거리낌 없이 발을 움직였다.
“으헉!”
결국, 발을 헛디디고 만 남자.
남자는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한 발로 겨우 딛고 선 남자가 두 팔을 휘저으며 떨어지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검은 안개가 남자를 낭떠러지로 내몰았다.
“끄아아아악!!”
남자는 끝내 추락하고 말았다.
***
“먼저 가지.”
남자의 비명 소리를 들은 무헌이 양해를 구하고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우리도 가요.”
차사패를 꺼내어 화인을 향해 흔들어 보이는 선율.
때마침 차사패 위로 좌표 하나가 떠올랐다.
무헌이 보낸 것이었다.
‘어느새…….’
화인은 조금 놀랐지만 금세 그런 표정을 지우고 서둘러 자신의 차사패를 꺼냈다.
제 것에도 좌표가 떠올랐다.
화인이 시선을 들어 눈을 맞추자 선율이 고개를 한 번 까닥였다.
그것을 신호로 화인은 좌표에 영기를 실었다.
그러자 좌표는 연기로 화해 사라지고, 화인의 영체는 순식간에 지정된 장소로 이동했다.
좌표를 따라 이동한 곳은 어느 공사장이었다.
낡은 건물 외벽에 설치된 철재 구조물이 여기저기 흉물스럽게 무너진, 공사가 멈춘 지 족히 수년은 되어 보이는 그런 공사장이었다.
“선율!”
무헌이 선율을 발견하고 건물 위를 향해 턱짓했다.
선율이 지체 없이 땅을 박차고 건물 옥상을 향해 훌쩍 뛰어올랐다.
옥상까지 단숨에 도달한 선율.
선율을 눈으로 좇던 화인의 고개가 완전히 뒤로 꺾이고 입이 헤 벌어졌다.
죽은 지 오십여 일이 지났지만 아직 인간의 감각이 남은 걸까.
정말이지 차사의 능력은 놀랍기만 했다.
자신도 직전에 차사패로 순간 이동을 하고, 반나절 전에 고혼을 사멸했던 일은 벌써 잊은 듯하다.
화인이 잠시 넋을 놓은 사이, 무헌이 안고 있던 남자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중년의 남자에게선 짙은 술냄새가 풍겼다.
“아직 명부의 때가 아니다. 육신으로 돌아가라.”
무헌이 절반쯤 빠져나온 영을 붙잡아 육신에 밀어 넣었다.
그러자 남자의 육신에 일순 푸른 불꽃이 일렁였다.
푸른 불꽃이 완전히 사라지고, 남자는 밭은 숨을 토해내며 깨어나는 듯했지만 곧 다시 의식을 잃었다.
“이 남자를 지키고 있어라.”
화인에게 지시를 내리고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 무헌.
“네!”
네에, 네에, 네에.
아무도 없는 공사장에 화인의 대답이 메아리쳤다.
화인은 쓸쓸히 남자를 지켰다.
다행히 얼마 후, 선율이 화인의 곁으로 돌아왔다. 머지않아 무헌도 돌아왔다.
순식간에 헤쳐 모여를 두 번이나 한 잠행부 흑조.
선율이 먼저 무헌을 향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뒤이어 무헌도 가로저었다.
둘 다 현행범을 놓친 모양이다.
“여기가 착착귀의 영역이던가.”
무헌이 턱을 쓸며 물었다.
“네, 맞아요. 옥상에서 본 잔상도 착착귀와 비슷했어요.”
선율이 고개를 갸웃하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착착귀가 아니에요.”
“그래, 착착귀가 저지를만한 일은 아니지.”
선율의 의견에 무헌이 동의했다.
“하나 그의 영역인 이상 조사는 필수다.”
“역시 그렇겠죠.”
무헌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화인을 불렀다.
둘의 대화에 올라타지 못하고 번갈아 보며 듣고만 있던 화인을.
“염 차사.”
“네.”
“착착귀를 찾아와라.”
“네.”
무심결에 대답하고 돌아서는 화인.
그러나 이내 무헌과 선율을 향해 다시 돌아섰다.
“그런데 착착귀가 뭐죠?”
화인이 눈알을 도르륵 굴리며 물었다.
“알지도 못하면서 무턱대고 대답하다니.”
무헌이 한심하다는 듯 내려다보았다.
“하하.”
화인이 머쓱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었다.
“이제 알면 되죠.”
선율이 웃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착착귀는 남성형 귀신이에요. 주로 검은 안개 형태로 돌아다녀서 사람들 눈에는 잘 보이지 않죠. 그래서 그 점을 이용해 장난을 치곤 해요. 사람들이 놀라는 얼굴을 보는 게 재밌다고.”
마지막 말을 하며 선율이 어깨를 으쓱했다.
“짓궂은 장난을 치기도 하지만 인간에게 큰 해를 끼치는 귀신은 아니지.”
무헌이 말을 받았다.
“여기서부터 반경 2킬로미터가 착착귀의 영역이다. 동트기 전까지 혼자 수색해라. 선율과 난, 그 이후에 합류한다.”
팔짱을 끼고 내려다보는 무헌 뒤로 무시무시한 기운이 피어오르는 듯 보였다.
“알겠나?”
“…네.”
대답은 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수색해야 할지 막막했다.
“혹시, 사진이나 그림 같은 건 없나요?”
순간 수배 전단이 떠오른 화인이 물었다.
“생김새를 알면 찾기가 수월할 것 같아서요.”
“흐음.”
무헌이 목을 울리고 명했다.
“눈을 감아라.”
화인은 무헌이 시키는 대로 눈을 꼭 감았다.
딱.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가 울리고, 한 남자의 얼굴이 눈 안에 나타났다가 이내 검은 안개가 되어 흩어졌다.
“재차 확인이 필요할 때는 차사패를 이용하도록.”
“네!”
화인이 당차게 대답했다.
그와 동시에 무헌과 선율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언제쯤 익숙해지려나.”
혼자 남게 된 화인이 작게 중얼거렸다.
“후우.”
이어 경직된 몸을 이완하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도시의 밤하늘이 늘 그렇듯.
이따금 날아가는 고혼이 보일 뿐이었다.
그것이 화인에게 자신의 처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 주었다.
‘맞아, 난 이제 저승 차사야. 수습 때는 이직한 느낌이었는데…….’
정식 차사가 된 지금, 도리어 완전히 사회초년생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막연하지만 설레고, 두렵지만 희망차기도 하면서 아득하고 쓸쓸한.
그러면서도 지난 이틀간 겪은 일들을 떠올려보면 현실감이 부족해도 한참 부족했다.
독안과 서도와 함께 망자 이령을 인도한 일도, 사악한 고혼을 사멸한 일도, 뭐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로 얼떨결에 치른 일들이라 얼떨떨할 뿐이었다.
게다가 세 가지 속성의 영력도 연달아 발현됐으니.
도무지 제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기분도 오락가락했던 것 같고.
“으으아.”
화인은 있는 힘껏 팔을 뻗어 기지개를 켰다.
‘멍청히 서 있을 때가 아니야.’
무탈하고 다복한 다음 생을 위해 선업을 쌓으려면.
“이왕 시작한 거 잘해보자고.”
화인은 영기를 정비하며 마음도 다 잡았다.
“가 볼까.”
수색을 떠나려는 순간이었다.
“흐, 흐으.”
발 밑에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으앗!!”
화인이 놀라 큰 소리를 내고 제 입을 틀어막았다.
잊었던 존재, 남자가 차가운 바닥에 누워 신음을 흘렸다. 의식이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들었나? 어쩌지?’
하고 생각한 순간,
‘아니, 어차피 내가 안 보이잖아? 그럼 당연히 내 목소리도 안 들렸겠지.’
화인은 남자를 버려둔 채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착착귀의 수색을 시작한 화인은 동이 트기 직전, 소리 높여 외쳤다.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