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말로 해서는 안 되겠구먼.”
독안이 낮게 중얼거렸다.
도형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무슨 연유인지 고혼이 서도에게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서도를 볼모로 잡으려는 속셈인 듯했다.
그러나 고혼은 서도의 털 끝 하나도 건드리지 못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서도 주위로 독안이 특히 더 강력한 장막을 둘러놓은 탓이다.
장막에 부딪혀 튕겨져 나온 고혼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냥 속박을 풀어 주기만 하면 되는데, 왜 일을 키우는지 모르겠습니다.”
도형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게나 말이네.”
독안이 큰 손으로 양쪽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동의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고혼이 냅다 신당 밖으로 도망을 치는 것이 아닌가.
“매를 버는 성격인가 봅니다.”
도형이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저 혼자 살자고 도망치는 그 뒷모습은 정말이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무당도 어이가 없었던 모양이다.
“저런 것도 조상신이라고! 내가 들인 정성이 아깝다!! 아까워!!”
제 앞을 가로막은 장막을 두드리며 도망치는 고혼을 향해 소리쳤다.
‘약한 부적을 썼나 보군. 벌써 효력이 다 한 걸 보니.’
독안은 앙칼진 무당의 고성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어 도망친 고혼을 향해 한쪽 팔을 내뻗었다.
그러자 마치 자석이 끌어당긴 것처럼 독안의 손에 고혼이 날아와 달라붙었다.
그 광경을 본 무당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끼아아악!!”
무당의 비명 소리에 도형이 덩달아 놀랐다.
“어휴, 제발 조용히 좀 하십시오.”
도형이 이번에는 조금 더 강한 부적을 날려 무당의 입을 막아 버렸다.
“좋게 말로 해서는 들어 먹지를 않는구려.”
독안이 고혼의 머리통을 쥔 손아귀에 슬쩍 힘을 주었다.
그리고 고혼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속박을 푸는 방법 중에는 술사를 멸하는 방법도 있다는 걸 모르지는 않을 텐데.”
독안의 속삼임에 겁에 질린 고혼.
고혼의 영기가 심하게 요동쳤다.
그 탓에 고혼은 독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자마자 선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나 독안은 고혼에게 몸을 추스를 틈조차 주지 않았다.
곧바로 독안의 음성이 신당 안을 가득 채웠다.
“고혼은 속히 속박을 해제하라.”
강압적인 음성이었다.
고혼은 어쩔 수 없이 주저앉은 채로 두 손을 모으고 주문을 외웠다.
“천지신명 앞에 고하노니, 여기 아진 선녀 송아진과 어린 고혼 정서도에게 얽어 놓은 속박을 무탈하게 해제하옵니다.”
주문이 끝나자 서도를 옭아매던 속박의 끈이 형태를 드러냈다.
가느다란 새끼줄이었다.
그때, 고혼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겨우 한 걸음 내딛더니 다시 주저앉아 바닥의 새끼줄을 손에 쥐었다.
이어 고혼은 손에 쥔 새끼줄에 자신의 영기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이윽고 새끼줄에 불이 붙었다.
빠르게 타들어는 속박의 끈.
불은 머지않아 긴 새끼줄을 다 태우고, 서도와 무당의 손목에 묶여 있던 매듭까지 모두 태웠다.
이제 속박은 재가 되어 날아갔다.
서도는 한동안 가만히 앉아 제 손목을 이리 보고, 저리 보고, 만져도 보고, 흔들어도 보았다.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프지는 않으냐.”
어느새 제 앞으로 와 쪼그리고 앉은 독안과 눈이 마주쳤다.
서도는 얼떨떨하여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서도를 향해 손을 내미는 독안.
“우리와 함께 가자꾸나.”
이에 질세라 도형도 후다닥 바로 옆에 쪼그리고 앉아 서도에게 제 손을 내밀었다.
서도는 잠시 멍하니 둘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얼마 뒤 공평하게 둘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그렇게 셋은 사이좋게 손을 잡고 신당을 나섰다.
신당을 에워싼 모든 장막도 걷혔다.
“정말 이대로 가도 되는 겁니까?”
도형은 불만이었다.
무당과 고혼이 나쁜 짓을 하고도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도형의 물음에 독안이 씨익 웃었다.
독안의 미소를 본 도형은 어쩐지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때 독안이 뒤를 향해 턱짓했다.
도형의 고개는 마치 주문이라도 걸린 것처럼 저절로 돌아갔다.
“아니, 언제……?”
도형의 입술 사이로 얼빠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돌아본 신당 안에는 경악으로 물든 무당과 고혼의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둘은 너무 놀란 탓인지 서로 마주 보고 입만 벙긋거리고 있었다.
이를 본 독안이 그들을 향해 쾌활하게 외쳤다.
“둘이 한 번 잘 지내보시게.”
*
독안이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켜고 이야기를 이었다.
“그렇게 서도를 데리고 저승으로 왔더니, 입구에 등용부 유경 차사가 버선발로 나와 기다리고 있지 뭔가.”
그 유경 차사가?
화인은 고개를 갸웃하다가도 이내 수긍했다.
하긴, 그 방면으로 능력자니까.
“뭐, 잘 됐지. 보살피기에는 이 편이 낫겠다 싶어, 내가 보호자 겸 사수가 되었다는 이야기네.”
독안이 쑥스러운 듯이 웃으며 뒷목을 쓸어내렸다.
“그래서 남은 잠행부 차사들은 매일같이 쉬지도 못하고 혹사를 당하고 있지.”
여태껏 조용하던 무헌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수석님이 서도를 보살피는 거랑 잠행부가 혹사당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람. 그리고 뭐 그렇게까지 혹사를 당하는 것 같지도 않던데…….’
신참 차사 화인은 심드렁하게 생각하다 문득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지금 회혼부잖아요. 아까는 잠행부 황조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맞네.”
독안이 어째선지 겸연쩍게 대답했다.
“그게, 잠행부로 일하면서 아이를 돌보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더군. 해서 부서를 이동시켜 달라고 졸랐지.”
“그렇군요.”
화인은 새로 주문한 붕어빵을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간 휴식한 덕분인지 커피며 약과 같은 음식을 먹은 덕분인지 벌써 영기가 반 이상 회복되었다.
“근데 조직도에는 황조가 없던데요?”
“그게 말일세, 내가 이끌던 황조는 이제 없네.”
독안이 턱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무헌의 심기가 매우 언짢아 보였다.
“조장인 수석이 빠진 탓에 조가 와해되었지.”
“다른 조장을 데려오면 되는 거 아닌가요?”
화인이 무구하게 물었다.
“하아, 잠행부 조장은 아무나 할 수 없다.”
그렇게 된 것이었다.
“그러니까 원래 잠행부는 다섯 개 조였는데, 독안 수석님이 서도를 보살피기 위해 회혼부로 빠지면서 황조가 없어지고, 잠행부의 업무가 늘어나서 흑조 조장 태무헌 수석님이 토라지신 거군요.”
화인의 정리에 상급 차사들의 눈이 더 할 수 없이 크게 뜨였다.
그리고 짧은 정적이 흘렀다.
상급 차사들의 사정에 관심 없는 서도가 파르페를 먹는 소리만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얼마 후, 참다못한 독안이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학. 맞네, 맞아.”
“큭, 큭큭.”
선율도 소리 죽여 웃었다.
“뭐, 뭣! 토라지다니!”
드물게 격앙된 무헌의 음성이었다. 그러나 무헌은 곧 평정을 되찾았다.
“제 능력을 썩히는 게 안타까웠을 뿐이다.”
“네에.”
그러거나 말거나 화인의 관심은 어느새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나저나 그 둘, 무당이랑 조상신이라는 고혼은…….”
화인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독안과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설마.
독안이 상쾌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글쎄.”
아직도 진행 중이란 뜻이군.
화인은 조용히 커피를 마셨다.
그때 무헌이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말했다.
“정찰 나갈 시간이다.”
“예에?”
한 건 해결하고 돌아온 지 불과 반나절도 안 지났는데 정찰을 나가야 한다고?
“뭘 멍하니 앉아 있지.”
“그치만…….”
무헌 옆에 선율까지 일어섰다.
“아아.”
화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남은 붕어빵 한 마리를 입에 욱여넣었다.
***
어둠이 내린 도시.
도심의 초고층 빌딩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야경은 그야말로 화려했다.
잠행부 흑조 무헌과 선율, 그리고 화인은 화려한 도시의 야경을 발아래에 두고 정찰을 시작했다.
‘이런 것도 정찰이라고 할 수 있나?’
화인은 옥상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무헌과 선율을 흘끔 보며 생각했다.
“모든 기척을 죽이고 눈과 귀에 감각을 집중시켜라.”
무헌이 마치 화인의 잡생각을 들은 듯이 입을 열었다.
“네.”
화인은 이제 자연히 흐르는 영기를 먼저 숨겼다.
“중음이 어지러웠던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 들어 수상한 움직임이 여럿 포착되었다. 그러니 잘 살펴라.”
“네.”
무헌의 설명에 화인이 착실하게 대답한 뒤, 손을 귀 뒤에 대었다. 소리에 집중하고 싶을 때 나오는 습관 중 하나였다.
차츰 귀에 온갖 소리가 들어왔다.
자동차 경적 소리, 격하게 싸우는 소리, 취객이 주정 부리는 소리, 길거리 공연의 노랫소리, 달리는 발소리, 단체 구령 소리, 개 짖는 소리, 고양이 울음소리, 아기 울음소리, 삐걱이는 쇠문 소리,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 사각사각 연필 소리.
크고 작은 소리들이 화인의 귀로 밀려들었다.
그야말로 생동하는 이승의 소음이었다.
화인의 귀가 그 소리에 익숙해질 무렵,
“끄아아아아악!!!”
서쪽에서 남자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