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사 염화인 17

by 아무



“찾았습니다!”

도형이 환하게 웃으며 독안과 서도를 향해 달려왔다.

갑자기 나타나 빠르게 다가오는 기다란 형체와 큰소리에 놀란 서도는 얼른 독안 뒤로 몸을 숨겼다.

그러다 이내 눈만 빼꼼 내밀어 도형의 얼굴을 확인하는 서도.

어린 고혼 서도는 요 며칠 사이 잘 먹어 비교적 안색이 좋아지고 살도 조금 올랐다.

도형은 독안의 팔뚝 옆으로 봉긋 솟아난 동그란 머리를 보고 지금까지의 긴장이 풀어졌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실수를 인지했다.

“아! 이런. 내가 너무 예고 없이 큰 소리를 냈구나.”

도형이 반듯한 몸을 구부정하게 숙이며 서도와 눈을 맞추었다.

“놀라게 해서 미안.”

도형이 사과하자 서도가 살금살금 다가가 과자를 하나 건넨다.

“나 주는 거야?”

서도가 도형의 얼굴에서 동그란 눈을 떼지 않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도형은 웃는지 우는지 모를 표정으로 폭신하고 달콤한 과자를 입에 넣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포장지로 보아 서도는 이미 한 통을 해치우고 난 뒤지만, 입가에 잔뜩 묻은 부스러기로 보아 남은 걸 처리하는 듯했지만, 그럼 어떠랴.

도형은 기뻤다.

“그렇게 좋아?”

“그럼요, 돌보던 길 고양이가 처음으로 제 손을 핥아준 기분이랄까요?”

도형은 차사로 일하며 많은 보람을 느꼈다.

그중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선업과 자기만족이었다.

영력의 등급은 낮지만 영체가 다른 영현보다 몇 배로 강한 덕에 잠행부라는 정예 부대에 소속되어 많은 영현을 구하고 나쁜 고혼들을 처벌했다는 자부심도 강했다.

그런데 최근 보람이라는 감각에 감흥이 덜하다고 해야 할까, 십 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탓에 그 감각이 무뎌졌다고 해야 할까.

약간의 정신적 탈진 상태로 직무 태만에 빠진 도형이었다. 그래봐야 자신만 느낄 정도로 티 나지 않는 태만이었지만.

그런 시기를 보내던 도형 앞에 때마침 서도라는 어린 고혼이 나타났다.

제 도움이 필요한 가엾고 딱한 어린 고혼.

아이를 보는 순간 한동안 잔잔했던 마음에 바람이 불고 물결이 일었다.

때문에 이 아이가 웃었으면, 하는 일념으로 중음을 수소문하고 다른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독안과 교대로 신당을 지키며 보살폈다.

그 결과 지금, 여기 이 아기 고양이가 손을 타기 시작했다.

도형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아, 저승에 가면 예쁜 옷도 사 주고, 맛있는 것도 잔뜩 사 줄 거야.’

도형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서도를 바라봤다.

‘웃으면 얼마나 예쁠까.’

서도가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는 줄도 모르고.

“문 차사, 찾았다며.”

기다리다 못한 독안이 서도를 뒤로 숨기며 입을 열었다.

“아, 예!”

도형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시원하게 대답했다.

“어디 있나.”

“곧 도착할 겁니다.”

도형이 대답하고 뒤돌아 보았다.

“마침 저기 오네요.”

도형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상대도 슬쩍 손을 들어 인사하고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수고하셨습니다.”

도형이 어디서 났는지 모를 보퉁이를 그의 눈앞에 들어 보였다.

“여기, 오늘은 약속한 것보다 조금 더 넣어 두었습니다.”

도형이 한쪽 눈을 찡긋하고 앞으로 내밀었다.

나이가 지긋한 남자 고혼은 매듭 틈새로 안을 대충 확인하고 허리에 묶인 오랏줄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오랏줄 반대편에 묶인 중년의 여자 고혼이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럼, 나는 이만 가 보겠네.”

“네, 다음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불퉁하게 말한 남자 고혼은 도형에게 오랏줄을 넘기고 보수를 받자마자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문 차사. 자네, 제법이구먼.”

독안이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칭찬했다.

‘보는 눈도 있고, 부리는 법도 잘 아는 모양이군.’

도형이 중음의 고혼을 부린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네에?”

갑작스러운 칭찬에 당황한 도형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런데 저 보수로 나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다 사비로 쓰는 건가?”

독안의 물음에 도형의 표정이 돌아왔다.

“그럴 리가요. 전부 경비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독안의 눈이 크게 뜨였다가 반쯤 휘었다.

“그래, 잘했네.”

독안이 도형의 어깨를 툭툭 쳤다.

이어 무당의 조상신으로 추정되는 고혼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여기가 어딘지 아시오?”

여자 고혼이 눈을 게슴츠레 뜨고 독안을 노려보았다.

“그럼 여기 이 무당은 아시오?”

독안이 말함과 동시에 장막 속에 봉인된 무당의 모습이 드러났다.

장막 속에 갇힌 무당은 지난 며칠 사이에 얼굴이 많이 상하고 말았다.

처음에는 꺼내달라고 발악을 하더니 얼마 못 가 제 성미를 이기지 못하고 까무러쳤더랬다.

다행히 머지않아 정신이 돌아왔지만 무당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저승사자의 언령이었다.

“혹, 장막을 찢고 나와 또다시 어린 고혼을 괴롭힌다면, 신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기가 질릴 만큼 강압적인 목소리였다.

이는 독안과 도형 둘 다 자리를 비우게 될 경우를 대비한 것이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그 후 무당은 독안의 힘에 완전히 굴복했다.

얌전히 장막 속에 갇혀 주면 주는 대로 먹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낸 까닭인지 무당은 금세 무력감에 빠져 버렸다.

해가 떴는지 졌는지, 날짜가 가는 줄도 모르고 그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그러다 저를 둘러싼 장막이, 일부가 아닌 전체가, 투명해지고 반가운 조상신이 눈앞에 보이자 무당의 눈빛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 하, 할매?”

그러나 조상신은 무당의 얼굴을 보고 어깨를 움찔하더니 고개를 휙 돌려 버렸다.

“나, 난 모르는 이요.”

중년의 여자 고혼이 무당을 모른 체했다.

“할매? 할매!”

그 순간 무당의 눈에 이채가 번쩍였다.

“저 아이, 할매가 데려 왔잖아. 할매가 끌고 왔잖아!”

무당이 장막을 두드리며 고혼을 향해 소리쳤다.

“무슨 소리냐. 나는 오늘 너를 처음 본다. 그리고 아이라니! 무슨 아이를 말하는 것이냐.”

고혼이 시치미를 뗐다. 독안의 덩치에 가려 서도가 보이지 않은 탓이다.

“뭐?”

순간 무당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었다.

“할매가 나를 떠나기 전에 저 아이를 데려와 속박까지 걸었잖아!!”

무당의 이성이 끊어졌다.

“아아아아악!!!”

“저, 저, 저, 성질머리 하고는. 여전하구나, 여전해.”

고혼은 혼자 작게 중얼거렸다고 생각했겠지만 독안과 도형의 귀에도 똑똑히 들렸다.

“자, 이제 조용!”

무당이 또 까무러치기 전에 도형이 끼어들었다.

그 사이 독안은 서도에게 고혼의 얼굴을 확인했다. 이미 알고 있지만 거쳐야 하는 확인 절차였다.

“너를 여기로 데려온 이가 저 여인이 맞느냐.”

고혼의 얼굴을 본 서도의 눈에 다시 공포가 서렸다.

서도는 한참을 망설인 끝에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맙다.”

독안이 서도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고는 슬쩍 미소 지었다.

“자, 여기에 앉아 먹고 있거라.”

미소 지은 채 새로운 과자를 건네는 독안.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서도의 두 볼이 이내 발그레 물들었다.

“대화는 잘 들었네.”

독안이 우뚝 서서 말했다.

“이제 속박을 풀어야지.”

독안이 고혼에게 시선을 던졌다.

“차사님, 저는 정말로 아닙니다.”

고혼이 두 손을 내저으며 부인했다.

그러나 독안과 도형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을 보았기 때문이다. 서도의 기억 속에서.

“누가 핏줄 아니랄까 봐, 거짓을 입에 달고 있구나.”

확신하는 독안의 말에 고혼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그새를 못 참고 다 일러바친 것이냐.”

고혼이 제 처지를 잊고 무당을 나무랐다. 급한 성미도 꼭 닮았다.

“일러바치다니! 갇힌 거 안 보여?”

무당이 장막에 바짝 붙어 서서 받아쳤다.

“제 구실도 못하면서 욕심만 많아서는.”

서도의 능력을 모르는 고혼은 무당과 차사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모자란 너를 위해 불쌍한 아이를 데려다가 먹고살게 해 준 은혜도 모르고. 쯧.”

결국 실토하고 마는 고혼이었다.

“그건 할매가 나를 떠나려고 그런 거잖아.”

무당 역시 참지 않고 나불거렸다.

“그러는 할매야 말로 내 앞에서나 잘난 체하지 다른 데 가서는 힘도 못 쓰면서.”

“그만, 이제 그만하세요. 당신들 사정은 전혀 안 궁금하니까.”

도형이 부적을 날려 둘의 입을 막아 버렸다.

“잘했네.”

도형 옆을 지나 고혼 앞에 우뚝 선 독안.

“선택해라.”

그 순간 고혼의 눈에 비친 독안의 모습은 마치 야차와도 같았다.

“네 손으로 속박을 풀 것인지, 내가 강제로 끊어내게 만들 것인지.”

독안의 영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독할 정도로 강한 영기에 고혼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강제로 끊어내면 둘 중 하나는 사멸될 위험이 높다는 건 아시죠? 당연히 사멸될 위험에 처하게 될 쪽은 당신입니다.”

도형이 웃으며 덧붙였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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